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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공동훈련 마식령 스키장엔 ‘금수 사치품’ 천지

중앙일보 2018.01.18 15:49
2014년 1월1일 원산 마식령스키장을 시찰 중인 김정은 . [노동신문]

2014년 1월1일 원산 마식령스키장을 시찰 중인 김정은 . [노동신문]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4년 1월1일 김정은 당시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전날 개장한 마식령 스키장을 현지 시찰하는 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흐뭇한 김정은의 표정과 함께 눈이 쌓인 슬로프에서 스노모빌을 타고 달리는 이용객들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 스노모빌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으로 수출을 금지한 사치품목이었다.

안보리, '선물 통치' 수단 활용 사치품 대북 수출 전면 금지
건설 초기 감시망 허술 틈 타 유럽산 고가 장비 대거 들여와
마식령 훈련, "한국, 북한 제재 회피 눈감아" 오해 살 우려도

 
남북이 17일 차관급 실무 회담에서 남북 공동 스키훈련을 하기로 결정한 마식령 스키장은 이런 금수 사치품으로 가득 차 있다. 김정은이 역점을 둔 주요 치적 사업에 걸맞게 유럽 기업들의 고가 장비들을 다수 수입했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으로 사치품 유입을 금지한 것은 2013년 채택된 결의 2094호에서였다. 북한 지도부가 측근들에게 사치품을 나눠주며 충성을 유도하는 ‘선물 통치’ 행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결의 이행 지침서에서 ‘북한 일반 주민들이 해당 물품을 살 경제적 능력이 있는지’를 사치품 판단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2014년 유엔 통계상 북한 주민 1인당 연간 소득이 696달러(약 74만원)라고 명시했다. 이 정도 수익을 벌어들이는 북한 주민이 구매하기 힘들다면 사치품이란 뜻으로, 대부분 고가품은 여기 해당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안보리는 마식령 스키장이 건설될 때부터 주목해 왔다. 정부 당국자는 “마식령 스키장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현금 벌이를 하는 게 당초 계획이었기 때문에 제재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은 연례보고서를 통해 수차례 마식령 스키장에 있는 사치품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주로 북한이 선전을 위해 공개한 사진에서 덜미가 잡혔다.
 
북한이 공개한 마식령 스키장의 스노우모빌. 노란 원 안에 '스키두'라는 로고를 볼 수 있다. 캐나다 기업 제품으로, 금수 사치품이다.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공개한 마식령 스키장의 스노우모빌. 노란 원 안에 '스키두'라는 로고를 볼 수 있다. 캐나다 기업 제품으로, 금수 사치품이다. [조선중앙통신]

 
보고서에 등장한 마식령 스키장의 사치품 종류는 다양했다. 조선중앙통신이 2014년 1월1일 보도한 스노모빌에는 ‘스키두’라는 브랜드가 찍혀 있었는데, 북한 전문 매체 NK 뉴스 등에 따르면 이는 캐나다 BRP사의 제품으로 대당 가격이 1만 달러 정도다. 스웨덴 아레코사의 분사식 제설기(대당 약 3만 7000달러), 이탈리아 프리노스사와 독일 피스톤불리사의 중장비 제설 차량(대당 약 8만~11만 달러) 등이 찍힌 사진도 공개됐다.
 
마식령 스키장에 있는 분사식 제설기. 노란 원 안에 스웨덴 아레코사의 로고가 찍혀 있다. [노동신문]

마식령 스키장에 있는 분사식 제설기. 노란 원 안에 스웨덴 아레코사의 로고가 찍혀 있다. [노동신문]

빨간 원 안을 보면 이탈리아 프리노스사의 중장비 제설차량임을 알 수 있다. [노동신문]

빨간 원 안을 보면 이탈리아 프리노스사의 중장비 제설차량임을 알 수 있다. [노동신문]

 
북한은 국제사회의 감시망이 그리 엄격하지 않았던 건설 초기에 대거 유럽산을 들여오는 방법으로 제재를 피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이 사실이 들통나 제재조치가 강화됐다. 2016년 1월 공개된 사진에는 마식령 스키장 케이블카에 오스트리아 기업 로고가 찍혀 있는 것이 포착돼 안보리 전문가 패널이 이를 오스트리아에 알렸다. 오스트리아의 건의로 관련 품목은 석 달 뒤 유럽연합(EU)의 대북 제재 리스트에 올라갔다.
 
스위스는 마식령 스키장이 건설 중이던 2013년 아예 자국 기업에 “마식령 스키장 지원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2016년에는 독자 제재를 통해 스키 관련 품목을 대북 수출 금지 리스트에 포함했다. 유엔 안보리도 2016년 채택한 결의 2270호에서 마식령 스키장을 염두에 두고 금수 품목 목록에 ‘2000달러 이상의 스노모빌’을 특정해 올렸다.  
 
마식령 스키장에서 합동 훈련을 할 한국 선수들이 이런 사치품을 이용하는 것이 제재 위반은 아니다. 하지만 금지 사치품이 몰려있는 마식령 스키장에서 한국 선수들이 활강하는 사진이 전 세계에 보도될 경우 한국이 북한의 제재 회피를 눈감아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대해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대북 제재 위반 등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정부의 분명하고 확고한 기본 입장”이라며 “그런 내용도 충분히 감안해 관련 결정이 내려진 것”라고 밝혔다. 미국, 일본 등과도 사전 협의를 거쳤느냐는 질문에는 “언제 협의가 이뤄졌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말하기에는 좀 빠른 감이 있다”고만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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