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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쇼룸의 창세기’ 제네시스 강남은 어떤 컨셉트

중앙일보 2018.01.18 06:00
렘 콜하스 OMA건축사무소 공동대표와 사미르 반탈 AMO건축사무소 디렉터 인터뷰
 
서울 영동대로 구글캠퍼스 맞은 편에 다소 비밀스러운 공간이 탄생했다. 건물 좌측 상단에 붙은 제네시스 브랜드 로고를 빼면 무슨 공간인지 알 길이 없다. 투명한 통유리 속으로 들쑥날쑥한 콘크리트 벽만 잔뜩 보인다.

미니멀리즘의 극단 ‘제네시스 강남’
“차량만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
74년식 포니 쿠페가 디자인의 요체
‘럭셔리’ 재정의하는데 심혈 기울여
조명·공간 배치는 ‘한국적 미학’ 차용

 
제네시스강남 외관. 겉에서 보면 자동차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 쇼룸이다. 문희철 기자.

제네시스강남 외관. 겉에서 보면 자동차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 쇼룸이다. 문희철 기자.

 
이곳은 현대차가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를 선보인 이래 처음 개설한 단독 브랜드 전시장 '제네시스 강남'이다. 개관을 기념해 방한한 렘 콜하스 OMA건축사무소 공동대표와 사미르 반탈 AMO건축사무소 디렉터를 단독인터뷰했다. 이들은 건축주(현대차) 의뢰를 받아 제네시스 강남을 함께 설계했다.
 
제네시스강남의 시승공간인 '론치베이'에 선 렘 콜하스 OMA건축사무소 공동대표와 사미르 반탈 AMO건축사무소 디렉터. 뒷편 전면유리를 부착한 차고 문은 영화 '배트맨'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사진 현대차]

제네시스강남의 시승공간인 '론치베이'에 선 렘 콜하스 OMA건축사무소 공동대표와 사미르 반탈 AMO건축사무소 디렉터. 뒷편 전면유리를 부착한 차고 문은 영화 '배트맨'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사진 현대차]

 
제네시스 강남은 한 마디로 미니멀리즘의 극단을 보여준다. 공간 대부분을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하고 실내 주요 부분을 마이너스 몰딩(숨은 몰딩)으로 시공했다. 쇼룸이라기보다 현대미술관을 둘러보는 느낌을 준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림 대신 자동차 9대가 서 있다는 점이다. 미래 자동차 쇼룸의 ‘창세기(genesis)’를 열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제네시스강남 1층에 전시 중인 제네시스 G80 스포츠. 스포트라이트 조명 대신, 천정 전체에서 빛이 난반사하도록 설계하면서 조명이 은은해졌다 문희철 기자.

제네시스강남 1층에 전시 중인 제네시스 G80 스포츠. 스포트라이트 조명 대신, 천정 전체에서 빛이 난반사하도록 설계하면서 조명이 은은해졌다 문희철 기자.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쉿! 다물어. 여기서 너는 오직 차만 보는 거야’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느낌이다. 제네시스 강남에 대한 느낌을 술회하자 반탈 디렉터는 “훌륭한 관찰”이라고 동의하면서 “메시지 과잉의 시대에서 제품(자동차)을 돋보이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모든 자동차 쇼룸이 수많은 사진·슬로건으로 소비자에게 말을 걸지만, 고급차 브랜드에 세세한 정보는 오히려 소음”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1974년 토리노모터쇼에서 선보인 현대차의 1호 콘셉트카 포니 쿠페. [사진 현대차]

1974년 토리노모터쇼에서 선보인 현대차의 1호 콘셉트카 포니 쿠페. [사진 현대차]

 
제네시스 강남은 44년이라는 시차를 뛰어넘어 현대적으로 재탄생한 공간이다. ‘1974년식 포니 쿠페’가 제네시스 강남 디자인의 요체다. 콜하스 대표는 “OMA설계사무소는 항상 현지 문화·사회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물을 설계한다”며 “국산 콘셉트카 1호이자 국산 쿠페 1호인 포니 쿠페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반탈 디렉터는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서 보여줬다. 놀랍게도 제네시스 강남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바닥·벽 사이에 포니 쿠페가 서 있었다. 74년 이탈리아 자동차 공방인 이탈디자인이 디자인한 차다. 이탈디자인은 85년 개봉한 영화 ‘백투더퓨처’에서 미래를 오가는 자동차(드로리안)도 디자인했는데, 이 차가 포니 쿠페를 모티브 삼은 것으로 알려진다.  
 
제네시스 강남이 선보인 공간 디자인과 브랜드 콘셉트는 향후 전 세계 제네시스 쇼룸으로 확산한다. 혁신적인 자동차 쇼룸의 구석 구석엔 ‘한국적 미학’이 녹아있다. 콜하스 대표는 “(쇼룸에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스포트라이트 조명 대신, 천정 전체에서 빛이 난반사하도록 설계하면서 조명이 은은해졌다”며 “부드럽고 그윽한 한국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미술관을 떠올리게 하는 제네시스강남 실내 디자인. 문희철 기자.

현대미술관을 떠올리게 하는 제네시스강남 실내 디자인. 문희철 기자.

 
한국 특유의 ‘은근의 미학’도 반영했다고 한다. 제네시스 강남의 테마는 ‘벽면의 뒤에(behind the wall)’다. 1293.6㎡의 전시장을 걷다 보면 다소 비밀스러운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여느 자동차 쇼룸처럼 탁 트인 설계를 하지 않고, 콘크리트 벽 사이로 차량이 은근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삐뚤삐뚤하고 불규칙하게 쌓은 돌담 너머로 슬며시 보이는 기와집이 떠오르는 배치다.  
 
은근한 매력은 제네시스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혜원 신윤복 선생의 그림 ‘단오풍정(端午風情)’에 등장하는 반라(半裸)의 여인이 은근하게 매력적으로 엿보이는 현상과 마찬가지다.
 
평범한 자동차 쇼룸은 첨단 기술을 뽐내기 바쁘다. 화려한 장식·조명과 홀로그램·미디어파사드 등 온갖 사용자 경험(UX) 디자인이 난무한다. 하지만 제네시스 강남에서는 흔한 TV 조차 안 보인다. 간간이 보이는 구리색·나무색을 빼면 방은 오직 회색빛 콘크리트로 가득하다. 구리방(copper room)의 벽면을 열어야 TV가 등장할 정도로 모든 공간이 간결하다.
 
렘 콜하스 OMA건축사무소 공동대표(우)와 사미르 반탈 AMO건축사무소 디렉터. 현대차와 계약 문제로 제네시스 차량 앞에서 촬영은 거절했다. [사진 현대차]

렘 콜하스 OMA건축사무소 공동대표(우)와 사미르 반탈 AMO건축사무소 디렉터. 현대차와 계약 문제로 제네시스 차량 앞에서 촬영은 거절했다. [사진 현대차]

 
아이러니하게 이런 아날로그적 디자인을 반탈 디렉터는 ‘디지털 시대의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 고객은 자동차 쇼룸에 방문하기 전에 미리 온라인에서 차량 정보를 확인한다”며 “쇼룸은 차량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아날로그적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제네시스 강남은 ‘럭셔리’의 의미를 재정의했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콜하스 대표는 “제네시스 강남은 휘황찬란하고 번쩍거리는 것보다, 순수하고 단순하면서 복잡함을 최대한 제거하는 것을 럭셔리라고 정의했다”고 부연했다.
 
호텔을 연상케하는 제네시스강남 화장실. 세면기 겸 건조기 역할을 동시에 하는 다이슨의 수전을 채택했다. 문희철 기자

호텔을 연상케하는 제네시스강남 화장실. 세면기 겸 건조기 역할을 동시에 하는 다이슨의 수전을 채택했다. 문희철 기자

 
산업디자이너는 설계 전에 제품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 노력한다. 건축 거장이 생각한 제네시스 브랜드의 본질은 무엇인지 물었다. 콜하스 대표에게 제네시스는 ‘용기’였다. “수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고급차 시장에 제네시스라는 신생 브랜드가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새로운 모험을 과감하게 시작하고 가보지 못했던 길을 떠나겠다고 결단한 현대차의 용기가 바로 제네시스의 본질입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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