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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다음은 이 남자라는데…도쿠가와 이에야스냐 토사구팽이냐

중앙일보 2018.01.18 02:00
 #1 "무조건 2등을 목표로해라. 3월까지는 움직이지 말고…"
 

자민당 총재 도전설 도는 기시다 후미오 전 외상
가라오케에선 헌법 9조를 위한 반전 가요 불러
아베와 생각 전혀 다르지만 그 밑에서 5년 요직
참고 또 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형 리더십
3년뒤 라이벌들에 밀려 토사구팽 당할 수도

15일 저녁 도쿄의 식당에서 아베 정권의 2인자이자 자민당내 2위 파벌 아소파의 수장인 아소 다로(麻生太郞·78)부총리가 한 말이다. 
지난 2015년 당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한일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김경빈 기자.

지난 2015년 당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한일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김경빈 기자.

 그의 앞에 앉아있는 이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1)자민당 정조회장이다. 
 한국에선 논란이 되고 있는 '2015년 위안부 합의에 서명한 외상'이지만 일본에선 ‘포스트 아베’를 꿈꾸는 차기 총리 후보다. 올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경선을 앞두고 출마를 고민중인 기시다가 아소에게 요청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아사히 신문은 17일자에서 "당내 제2파벌에게 조언을 들으면서도 기시다는 출마여부에 대해선 명확하게 말을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5년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을 시작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5년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회담을 시작하고 있다. [중앙포토]

#2. "이건 (평화헌법)9조의 노래다."
최근 가라오케에서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이란 노래를 부르기전 기시다는 이렇게 말하고 마이크를 잡았다고 한다. 아사히 신문의 지난 12일 보도다. 기시다가 부른 노래는 일본의 대표적인 반전 가요다. 
그의 지역구는 원폭 피해지역인 히로시마. 자민당내에서 중도ㆍ리버럴로 분류되는 기시다파(구 고치카이)의 수장인 그가 본심을 나타낸 것이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그는 실제로 아베 총리와는 전혀 다른 헌법관을 갖고 있다. "점령시대에 만들어진 헌법은 꼭 바꿔야 한다"는 아베와는 달리 기시다는 평화헌법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평화헌법 제정 당시 연합국군총사령부(GHQㆍ맥아더 사령관)에 의해 공직에서 추방됐다. 반면 기시다파의 원조인 고치카이를 창설했던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전 총리)는 집권 자유당에 소속돼 있었다. 자유당은 당시 GHQ와 함께 현행 일본헌법을 만들었다. 
뿌리부터 아베와는 생각이 다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문희상(오른쪽)의원이 도쿄 외무성에서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상을 만났다. [AP=연합뉴스]

지난해 5월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문희상(오른쪽)의원이 도쿄 외무성에서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상을 만났다. [AP=연합뉴스]

하지만 기시다는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출범 뒤 무려 4년 7개월동안 외상을 지냈다. 
또 지난해 8월엔 자민당의 정책을 총지휘하는 정조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아베 총재를 보좌하고 있다. 아베의 숙원인 헌법 개정 작업도 그에게 맡겨진 숙제다. 아베 정권에서 요직을 거친 기시다지만 한편으로는 아베의 대항마로도 꼽힌다.  
 
하지만 아소 부총리를 만나서도 그랬듯 그는 9월 총재 경선 출마 여부에 대해 말을 잔뜩 아끼고 있다. 
6일 TV에 출연해서도 그는 "정조회장으로서 정권을 지탱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정치는 한치 앞을 모른다. 어떻게 대응할지 답변하지 않겠다"고 알쏭달쏭한 대답만 했다.
 
얼마전 그를 찾아온 측근 의원이 "기시다 정권 구상을 위한 공부모임을 만들자"고 했더니 기시다는 "벌써 기시다 정권 운운하는 건 너무 자극적이다. 너무 이르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그를 두고는 "과거 매파였던 기시 노부스케(57년2월25일~60년 7월19일 재임)에서 비둘기파인 이케다 하야토(60년7월19일~64년 11월9일)로 정권이 넘어간 것처럼 아베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돌고 있다. 
 
가라오케에서 반전 노래를 부를 정도로 완고했던 헌법 9조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지난 9일엔 "(9조에)자위대를 명기하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며 자신의 신념을 꺾고 아베 총리에 동조하려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시대를 2인자로 보내며,끊임없는 인내로 때를 기다렸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길을 가려는 것일까.  
 
지금으로선 ‘포스트 아베’의 유력한 주자로 꼽히는 기시다지만 그가 정말로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 지엔 부정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아베가 9월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3연임에 성공한다면 기시다는 아베의 3년 임기가 끝나는 2021년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로선 아베 총리가 자신의 후계자로 기시다를 확실하게 밀어준다는 보증은 없다. 
또 3년 뒤 64세가 되는 기시다로선 최근 주가를 높이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36)의원이나 고노 다로(河野太郎·55)외상과 경쟁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실제로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관방장관이 사석에서 “아베 총리가 3선을 하고 도쿄 올림픽까지 마치면 다음은 고노의 시대”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아사히는 보도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냐, 아니면 토사구팽이냐~. 
 '기다림의 남자' 기시다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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