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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관치, 사실은 선수가 없다

중앙일보 2018.01.18 01:42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3연임에 한 발 더 다가갔다. 하나금융은 이틀 전 3명의 회장 후보자를 선정, 발표했다. 22일 최종 후보를 가리는데, 후보자의 면면을 보면 김정태의 3연임은 확정적이란 게 금융가의 중론이다. 하나금융 측도 “8부 능선을 넘었다”고 대놓고 말한다. 그의 3연임을 막아온 금융 당국은 체면만 구긴 셈이 됐다.
 

논란만 잔뜩 키우다 백기
김정태 ‘셀프 연임’ 못 막아

김정태의 승리 비결은 역설적으로 ‘관치(官治)’였다. 관치 프레임을 적절히 활용해 금융 당국의 공격을 막아냈다. 10년 이상 금융회사 CEO로 갈고닦은 내공과 인적 자산이 큰 몫을 했다. 그가 모셔온 윤종남 하나지주 이사회 의장도 그중 하나다. 윤 의장은 지난해 “‘셀프 연임’은 안 된다”는 금융 당국에 대해 정면 반발했다. “한국 금융의 경쟁력이 아프리카 수준으로 혹평받는 건 지나친 규제와 관치 때문”이라며 “금융 당국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금융회사가 발전할 수 없다”고 했다. 관치 프레임으로 ‘셀프 연임’을 덮은 것이다.
 
최순실 연루설 같은 의혹도 맞불로 받아쳤다. 김정태는 “전직 임원들이 (나에 대해) 음해성 소문을 낸다고 들었다. 안타깝다”고 했다. 김승유 전 회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과의 친분설을 슬쩍 암시하기도 했다. 의혹을 의혹으로 물타기한 셈이다.
 
물론 맞불이 다는 아니었다. 강호의 고수답게 적절히 물러서는 모습도 보여줬다. 감독 당국이 지적한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규정도 살짝 바꿨다. 7명 전원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했다. 3년 전엔 회장 자신이 회추위원이 돼 스스로를 뽑았었다. 문제의 ‘셀프 연임’ 논란도 여기서 나왔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바꾼 규정마저 “사외이사 역시 회장이 뽑은 사람들이라 공정하지 않다”며 못마땅해한다.
 
감독 당국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겉으론 “검사 결과를 지켜보자”며 점잔을 빼지만 속으론 “두고보자”며 이를 가는 중이다. 청와대에도 면목이 없다. 최순실과 엮이고 전 정권 실세와 친분을 과시했다는 금융지주 회장 하나를 못 날린 무능한 감독 당국이 된 꼴 아닌가. 다음 수순은 뭘까. 김정태는 무사히 3연임을 마칠 수 있을까.
 
좋은 예가 있다. 딱 9년 전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때다. 당시 강정원 KB금융 행장은 ‘셀프 회장’을 꿈꿨다. 금감원이 막아섰다. 회장 선임을 미루라고 했다. 강 행장은 거부했다. ‘관치 금융 말라’며 단독 출마로 회장에 선임됐다. 발끈한 금감원은 KB금융을 샅샅이 뒤졌다. 직원 컴퓨터도 압수했다. 강 행장의 운전기사까지 조사했다. 각종 개인 비리 의혹도 뒤졌다. 결국 강 행장은 회장 내정자를 자진 사퇴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듬해 8월 금감원은 강 행장을 문책경고했고 그는 행장 자리마저 물러나야 했다. 그 뒤 영영 금융계로 돌아오지 못했다. 금감원의 문책 경고 이상 제재를 받으면 금융회사 임원 자격을 잃기 때문이다.
 
김정태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알고 밀어붙였다면 둘 중 하나다. 든든한 뒷배가 있거나 욕심이 지나쳤거나. 물론 역사가 꼭 똑같이 되풀이될 리는 없다. 하지만 금융은 대표적인 면허 장사다. 아무리 센 금융회사도 허가권자인 금융 당국을 이길 수는 없다. 김정태라고 예외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감독 당국도 김정태만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의 ‘셀프 연임’을 막기 위해 감독 당국은 뭘 했나. 모범규준 하나 제대로 못 만든 것 아닌가. 하기야 더 본질적인 것도 있다. 외환위기 시절 은행장들을 벌벌 떨게 했던 이헌재나, 대놓고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던 김석동 같은, 사실은 선수가 없는 것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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