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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젠 전전 대통령까지 검찰 포토라인에 서나

중앙일보 2018.01.18 01:31 종합 34면 지면보기
검찰 수사의 칼날이 턱밑까지 다가오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반발하고 나섰다. 정치공작이자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어제 직접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는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권력형 비리는 없었다”며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게 아니라 나에게 물어 달라”고 치고 나왔다. 청와대는 공식 논평을 삼갔지만, 검찰은 “기획 수사가 아니다”며 “나오는 대로 수사한다”고 반박했다. 전직 대통령으론 다섯 번째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쪽으로 한 발짝 접근한 모양새다.
 

큰 죄 지으면 책임 묻는 게 당연하지만
보수정권만 뒤지니 보복이란 반발 불러
개헌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비극 끊어야

안타깝고 착잡한 일이지만 전직 대통령이라도 큰 죄를 지은 혐의가 있다면 수사하는 게 마땅하다. 불법행위 책임을 물어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다. 물론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 다닌다는 건 헌정사에 불행한 일이고 그 자체로 국격이 손상되는 일이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선 법의 엄정함을 되새기는 계기이기도 하다. 더구나 이 전 대통령을 향했던 많은 의혹이 이제 구체적 윤곽을 드러내려 하는 상황이고 더 이상 진실 규명을 미룰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만약 혐의가 있다면 이 전 대통령과 측근들이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검찰 수사가 전 정권과 전전 정권의 일에만 먼지털기 식으로 집중돼 정치보복이란 논란을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을 거론한 건 그런 맥락에서다. 검찰 수사가 진실 규명이 아닌 찬반 진영 간 정쟁으로 빠져들 경우 극심한 국론 분열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검찰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할 경우 이런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더욱 엄격하고 엄정해야 한다. 확실한 물증을 찾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정황에 가까운 단서’를 잡았다고 언론에 흘리는 식이라면 정치권은 공방으로 날을 지새울 수밖에 없다.
 
우리 헌정사엔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퇴장한 대통령이 없다. 대통령이 임기 초에 독주하다 임기 말엔 예외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패턴이 반복되는 건 우리 정치 시스템에 결정적 하자가 있다는 걸 보여 주는 증거다. 언제까지 이런 비극을 반복할 것인가. 이제 헌법 개정으로 국가 운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이 분명해졌다. 정치권은 이 기회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분권형 개헌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 정권 교체기마다 되풀이되는 이 불행의 사슬을 끊어 내는 것이야말로 국가 대혁신의 첫 번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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