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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세상] ‘나눔이 얼마나 귀한지’ … 사랑 담은 편지, 올해도 배달됩니다

중앙일보 2018.01.18 00:53 종합 24면 지면보기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전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편지·e메일·문자메시지 등 하나하나 손가락 접어가며 세어보면 참 많죠. 여기에 스마트폰 메신저가 보편화되면서 예전보다 소통은 훨씬 더 간편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종이에 꾹꾹 눌러적은 편지 한 통만큼 소중한 게 또 있을까요.
 

“건강하시라”는 후원자 편지에
“그 나눔, 마음으로 받는다” 답장
서로 배려하는 마음 가득 담겨

생계에 지쳤던 장애 아동 모녀
“얼른 나아서 후원자 찾아가자”

과테말라·우간다 등 해외서도
물질적 후원만큼 힘 되는 편지

용돈 1만원씩 후원하는 초등생
“편지 오는 날은 하루종일 기뻐”

이번 ‘함께 만드는 세상’에서는 새해를 맞아 특별한 편지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동안 비영리단체(NPO)를 통해 인연을 맺은 후원자와 수혜자가 주고받은 편지들입니다. 편지 안에는 서로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나눔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아갑니다’
 
희귀난치성 질환인 웨스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정고은양과 어머니 이애숙씨. [사진 밀알복지재단]

희귀난치성 질환인 웨스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정고은양과 어머니 이애숙씨. [사진 밀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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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밀알복지재단에 고구마 한 박스가 도착했다. 희귀난치성 질환인 웨스트증후군과 뇌병변장애가 있는 정고은(7)양의 어머니 이애숙(53)씨가 후원자 조기현(42)씨에게 전해달라며 보낸 것이었다. 웨스트증후군은 소아 간질 환자 중 2%를 차지하는 희귀병으로 정양은 생후 백일 때부터 하루 수십 차례 발작을 일으켰다. 계속된 병원 생활과 치료비, 약값 등은 모녀에게 기본적인 생계조차 감당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2015년 이 사연을 듣게 된 조씨는 틈틈이 모녀를 후원해왔다. 어머니 이씨에게도 “늘 건강하셔야 한다”며 영양제 등을 선물했다. 그해 11월11일 조씨는 견과류 소포와 함께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밤·대추 도매상에서 일하고 있는데 햇밤 나온 지 두 달쯤 지나면 맛이 조금 들거든요. 다른 견과류들은 제가 함께 구할 수 있기에 고은이와 드셔보시라고 조금 보냅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을 겁니다. 재단을 통해 우연히 인연이 됐지만 멀리서나마 늘 기원합니다. 고은이와 어머니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라고….’
 
편지는 2016년 어머니 이씨가 후원자 조기현씨에게 쓴감사편지다. [사진 밀알복지재단]

편지는 2016년 어머니 이씨가 후원자 조기현씨에게 쓴감사편지다. [사진 밀알복지재단]

조씨의 응원에 이씨도 화답했다.
 
‘보이지 않는 내일을, 희망이란 기적을 기대하며 인내하고 묵묵히 지내보지만 여전히 작아지는 제 모습에 깊은 밤이면 눈물이 흐르곤 했습니다. 지쳐가고 있을 때마다 힘을 주시는 사랑의 손길이 강한 엄마를, 행복한 생활 속으로 전진하게 합니다. 나눔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마음으로 받습니다.’
 
조씨는 이씨에게 언젠가 꼭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이 아니라면 줄 수 없는 사랑을 주신 분이다. 늘 고은이에게 ‘얼른 걸어서 그분을 찾아가자’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제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해준 후원자님’
 
과테말라에 사는 다야나가 지난해 후원자 도치범씨에게 보낸 편지다. 도씨는 다야나가 9살이었을 때부터 그의 가족을 후원했다. 다야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다. [사진 굿네이버스]

과테말라에 사는 다야나가 지난해 후원자 도치범씨에게 보낸 편지다. 도씨는 다야나가 9살이었을 때부터 그의 가족을 후원했다. 다야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다. [사진 굿네이버스]

‘후원자님, 저는 올해 11월 말에 다니던 건축기능학교를 졸업해요. 성적이 꽤 좋아요. 내년에는 산 까를로스 대학에서 건축설계를 계속 공부할 것 같아요. 국공립대라서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된대요.
 
후원자님, 전 겸손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기억날 때마다 응원해주세요. 궁금한 것이 정말 많아요. 잘 지내고 계시는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꿈이 무엇인지까지도요. 제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항상 건강하세요. 후원자님을 사랑하는 다야나 에스메랄다 구엘라 푸엘타가.’
 
과테말라에 사는 다야나가 지난해 후원자 도치범씨에게 보낸 편지다. 도씨는 다야나가 9살이었을 때부터 그의 가족을 후원했다. 다야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다. [사진 굿네이버스]

과테말라에 사는 다야나가 지난해 후원자 도치범씨에게 보낸 편지다. 도씨는 다야나가 9살이었을 때부터 그의 가족을 후원했다. 다야나는 올해 대학에 입학한다. [사진 굿네이버스]

 
외로울 때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후원자’ 도씨를 생각하며 다야나는 힘을 냈다고 한다. 건축설계사라는 꿈도 생겼다.
 
지난해 말 다야나가 만 18세가 되면서 도씨의 후원은 종결됐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다야나는 도씨에게 감사의 의미로 편지와 함께 직접 만든 선물상자에 수공예 컵과 과테말라 전통 인형 등을 넣어 선물로 보냈다. 모두 다야나가 직접 용돈을 모아 준비한 것들이었다.
 
‘내가 직접 그린 사슴벌레야, 같이 볼래?’
 
박종한군과 우간다에 사는 헨리가 주고받은 편지. 박군은 용돈을 아껴 매달 1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오른쪽 그림은 박군이 헨리에게 보낸 사슴벌레 그림이다. [사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박종한군과 우간다에 사는 헨리가 주고받은 편지. 박군은 용돈을 아껴 매달 1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오른쪽 그림은 박군이 헨리에게 보낸 사슴벌레 그림이다. [사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된 박종한(10)군은 3년 전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우간다에 사는 헨리 워부솝오지(16)를 후원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뒤 용돈 3만원 중 1만원은 꼭 헨리에게 보낸다. 박군의 어머니 홍세정(38)씨는 “종한이 용돈 1만원에 내가 2만원을 더 보태서 후원하기 시작했다. 아이한테 ‘네 용돈에서 일부를 모아 다른 나라에 사는 친구를 도와주면 어떻겠니?’라고 제안했는데 ‘알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박군과 헨리는 이따금 편지를 주고받는다. 기부는 엄마가 먼저 제안했지만 편지를 쓸 때는 늘 박군이 먼저 나서서 펜을 잡는다.
 
‘네가 보내준 편지와 그림 잘 받았어. 나는 곤충을 좋아해. 그래서 곤충그림을 보내. 내가 직접 다 그렸어. 다음에는 더 멋지게 그려줄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 안녕!’
 
지난해 10월 박군이 헨리에게 쓴 편지다. 편지와 함께 박군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등을 그려 보냈다. 헨리는 박군에게 “내 편지를 무사히 받고 건강히 잘 지낸다는 얘기 들려줘서 고마워. 너와 가족 모두 건강하길 기도할게”라고 답장했다. 편지지 한쪽에는 자동차와 오리 등이 그려져 있었다. 박군은 “헨리에게 편지를 받은 날엔 온종일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어머니 홍씨는 “종한이가 일상 속에서 ‘누군가와 나누는 삶’을 당연히 여기며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바람이다”고 말했다.
 
편지 번역도 자원봉사자들 몫
한국 후원자와 해외 수혜자 간 주고받은 편지를 번역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굿네이버스는 2010년부터 번역 자원봉사 모임 ‘아임유어펜’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2960명의 봉사자가 82만여 통의 편지를 번역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도 번역봉사자 모임 ‘반디’ 회원 22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이들이 번역한 편지는 3만5000통 이상이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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