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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린 편지 쌓인 듯…순백의 설국에서 노는 법

중앙일보 2018.01.18 00:01
홋카이도 대지가 순백의 눈으로 덮였다. 한겨울 홋카이도를 찾는 여행자가 갈망하는 풍경이다. 홋카이도 중부를 종단하는 도카치연봉이 드러났다.

홋카이도 대지가 순백의 눈으로 덮였다. 한겨울 홋카이도를 찾는 여행자가 갈망하는 풍경이다. 홋카이도 중부를 종단하는 도카치연봉이 드러났다.

겨울은 전통적인 여행 비수기다. 하지만 이 공식을 보란 듯이 비껴가는 여행지가 있다. 일본을 이루는 4개의 큰 섬 중 최북단의 섬, 홋카이도(北海道)다. 수많은 여행객이 다른 계절을 놔두고 일부러 겨울을 콕 짚어 홋카이도에 찾아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1월 둘째 주 최고기온이 영하에 머무는 혹한의 계절에 홋카이도를 여행했다. 그리고 비로소 이해했다. 수묵화 여백처럼 하얀 설국은 낭만이 가득했다. 뜨뜻한 온천욕이 즐거운 것도, 갯것의 살이 꽉 찬 것도 겨울이라 빚어진 기쁨이었다. 홋카이도의 겨울은 풍요로웠다. 
 

겨울 홋카이도 동부 여행
희귀한 몰온천에 몸도 마음도 사르르
꽃 피던 언덕은 스노모빌 코스로 변신
살 찬 게 맛보며 식도락 여행 즐기기

하늘에서 보낸 편지
겨울철 일본 최북단 섬 홋카이도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눈이다. 북위 43도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서쪽으로는 동해, 북쪽으로는 오호츠크해, 남쪽으로는 태평양을 접하고 있다. 겨울철 바다를 지나며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구름은 홋카이도 육지에 부딪히면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눈을 떨어낸다.  
홋카이도의 눈은 포슬포슬한 밀가루 같은 질감이라 파우더스노로 불린다.

홋카이도의 눈은 포슬포슬한 밀가루 같은 질감이라 파우더스노로 불린다.

1936년 세계 최초로 인공 눈을 만드는 데 성공한 홋카이도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나카타니 우키치로(1900~62)는 ‘눈은 하늘에서 보낸 편지’라는 말을 남겼는데, 홋카이도 사람들은 폭탄처럼 떨어지는 눈편지를 감당하느라 게으를 틈이 없어 보였다. 12월부터 3월까지 홋카이도의 아침은 눈을 치우는 제설차 소리로 시작된다. 여행에 동행한 서현완 가이드는 “190만명이 사는 홋카이도 최대 도시 삿포로(札幌)만 해도 연간 평균 강설량이 385㎝나 되고, 홋카이도 전체 예산의 6%를 제설작업에 사용한다”고 말했다.  
눈 덩이를 가득 싣고 달리는 트럭.

눈 덩이를 가득 싣고 달리는 트럭.

눈은 홋카이도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하지만, 낭만적인 여행지로 만드는 일등공신으로 보였다. 홋카이도는 2017년 한해만도 내외국인 5400만명이 방문한 인기 여행지인데,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보다도 외려 12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 관광객이 더 몰렸다. 하얀 편지 봉투가 그득하게 쌓인 순백의 설경을 찾아 여행객들은 겨울 홋카이도에 찾아드는 것이다.  
 
한낮의 물안개
홋카이도 여행의 관문 신치토세공항에 내리자마자 홋카이도의 동쪽을 향해 내달렸다. 홋카이도 동부 인구 18만 명이 사는 소도시 오비히로(帯広)를 목적지로 삼았다. 인적이 드물어, 더 순수한 홋카이도의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관광지로 이름난 대도시 삿포로나, 운하로 유명한 오타루(小樽)는 홋카이도 서쪽에 몰려있다.  
삿포로에서 오비히로까지 차장 밖으로 설경을 즐기며 달릴 수 있다.

삿포로에서 오비히로까지 차장 밖으로 설경을 즐기며 달릴 수 있다.

바람에 화답이라도 하듯, 공항에서 오비히로까지 이동하는 내내 차창 밖은 온통 눈 세상이었다. 두꺼운 생크림을 발라 놓은 듯 하얀 언덕에 외딴집이 한 채 서 있는 서정적인 풍경이 이어졌다. 언덕을 뛰어오르는 사슴이나 도로를 가로지르는 여우를 목격하는 행운도 거머쥐었다. 다만 눈에 햇빛이 반사되는 터라 눈이 쉽게 피로해졌다. 선크림과 선글라스를 챙겨오지 않은 게 아쉬웠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기가 파고들었다. 공항 근처는 영하 6도였지만 오비히로 기온은 영하 16도까지 떨어졌다. 서 가이드는 “오비히로가 고봉으로 둘린 분지라 홋카이도에서도 가장 추운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말을 듣고 보니, 오비히로에서는 어디서나 설산을 볼 수 있었다. 오비히로가 홋카이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다카(日高)산맥을 곁에 둔 도카치(十勝)평야에 자리 잡고 있어서였다.  
도카치강에 물안개를 배경으로 겨울철새가 날아올랐다.

도카치강에 물안개를 배경으로 겨울철새가 날아올랐다.

히다카산맥에서 발원해 오비히로를 가로지르는 도카치강에서 마치 온천처럼 김이 모락모락 났다. 공기보다 물의 온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한낮에도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시베리아에서 건너와 도카치평야에서 겨울을 나는 겨울 철새 큰고니 떼는 강물이 아주 따뜻하다는 듯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겨울왕국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평화로운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호박색 온천물에 풍덩
이탄이 섞인 몰온천을 경험할 수 있는 오비히로 다이헤이겐호텔.

이탄이 섞인 몰온천을 경험할 수 있는 오비히로 다이헤이겐호텔.

수증기가 피는 노천탕에 누워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홋카이도 최고봉이자 여전히 활동적인 활화산 다이세쓰산(大雪山·2290m)과 인접한 오비히로에 특별한 온천이 솟아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오비히로 온천은 수만 년의 시간 동안 수초 등이 퇴적돼 만들어진 ‘이탄(泥炭·습윤 식물체의 퇴적물)’이 섞인 몰온천이다. 몰(moor)은 이탄을 뜻하는 독일어로, 세계에서 몰온천이 솟는 지역은 독일 바덴바덴과 일본 오비히로뿐이다. 몰온천은 오비히로 일대가 과거에는 광활한 습지였고, 지각작용으로 융기한 땅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호박처럼 누르스름한 몰온천.

호박처럼 누르스름한 몰온천.

오비히로 온천공에서 1분에 840ℓ, 수온 53.8도로 용출되는 몰온천수를 도카치가와온천조합 소속 6개 호텔이 나눠 쓴다. 몰온천수를 받아다 온천탕을 운영하는 다이헤이겐호텔 히데키 니시카와 계장은 “이탄이 섞여 있어 부유물이 떠다니는 몰온천은 보습 성분이 많아 미인탕으로도 불린다”고 자랑했다. 얼른 짐을 풀고 온천에 온몸을 푹 담갔다. 석탄과 비슷한 이탄이 섞인 온천은 색감이 노란색 보석 호박처럼 누르스름했다. 물에 로션을 푼 듯 피부에 닿는 온천수가 매끄러웠다. 사락사락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노천욕을 즐기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눈의 나라에서 노는 법
2019년은 남한 면적의 5분의 4에 해당하는 거대한 섬, 홋카이도가 ‘홋카이도’라는 이름을 얻는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홋카이도는 도쿄(東京)가 있는 일본 최대 섬 혼슈(本州)와 달리 아이누족이 살아가는 터전이었다.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기점으로 입헌 군주제 국가로 변모한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듬해인 1869년 홋카이도에 개척사를 설치했다.
홋카이도의 너른 땅은 논과 밭으로 개간돼, 지금까지도 홋카이도는 일본의 곡식 창고 역할을 한다. 홋카이도는 일본에서 쌀 생산량 2위를 차지하는 지역이며 감자·아스파라거스·옥수수의 집산지다. 홋카이도 식량자급률이 200%에 달하고, 특히 논과 밭이 밀집한 중부는 식량자급률 1000%를 웃돈다는 통계도 있다.
홋카이도 중부 지역 비에이의 논밭은 겨울철 스노모빌 코스로 활용된다.

홋카이도 중부 지역 비에이의 논밭은 겨울철 스노모빌 코스로 활용된다.

홋카이도에서 서식하는 바다표범과 곰 모양으로 만든 눈 동물(?).

홋카이도에서 서식하는 바다표범과 곰 모양으로 만든 눈 동물(?).

홋카이도의 너른 밭과 논은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됐다. 농업을 주산업으로 삼는 소도시 비에이(美英)는 봄부터 가을까지 색 잔치가 열린다. 옥수수며 감자며 비트 등 농작물이 서로 다른 초록을 뽐낸다. 꽃도 비에이의 색 잔치에 일조한다. 따뜻한 봄날 튤립을 시작으로 초여름 보라색 라벤더가 핀 자리를 한여름에 샐비어, 가을에 해바라기가 차지한다. 비에이의 겨울을 채우는 것은 눈꽃이다. 경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흰 눈에 파묻힌 땅은 겨우내 눈썰매장으로 변모한다. 비에이 시키사이노오카(四季彩の丘)는 70만㎡에 이르는 광활한 화훼 농원으로 유명한데, 겨울에는 특별히 스노모빌 코스로 활용된다. 스노보드 같은 발을 단 설상차를 타고, 겹겹이 하얀 구릉이 펼쳐진 비에이의 언덕을 내달렸다. 눈밭을 미끄러지는 속도감에 취해 얼굴을 때리는 찬바람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잎을 떨군 나뭇가지에 피어 있는 눈꽃.

잎을 떨군 나뭇가지에 피어 있는 눈꽃.

 
◇여행정보= 한겨울 홋카이도를 여행하려면 방한에 신경 써야 한다. 1월 삿포로 평균기온은 영하 2도, 오비히로는 영하 15도다. 온종일 눈밭을 걸어야 하니 방수 신발은 필수다. 양말도 여분을 챙기는 게 좋다. 오비히로나 비에이 등은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힘들다. 렌터카를 빌리거나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게 좋다. 인터파크투어(tour.interpark.com)가 도카치가와 온천을 이용하는 홋카이도 3박 4일 상품을 판매한다. 삿포로·비에이·오타루 등을 돌아본다. 69만9000원부터. 02-3479-4380. 
속이 꽉 찬 겨울 대게.

속이 꽉 찬 겨울 대게.

홋카이도 겨울 여행이 즐거운 또 한 가지 이유는 식도락이다. 홋카이도는 10월 말부터 이듬해 1월 말까지 사냥을 허용한다. 이때 포획된 사슴이나 곰 고기를 별미처럼 맛볼 수 있다. 일반 여행객이 홋카이도 여행 중 가장 즐기는 음식은 ‘게’다. 대게나 털게는 알을 배는 5~7월이 제철이지만 겨울 털게 맛도 여름 못지않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몸속에 살을 꽉 채우기 때문이다. 게를 무한정 맛볼 수 있는 맛집으로는 삿포로 사쿠라뷔페(sakura-buffet.net)가 유명하다. 홋카이도에서 게 물량을 가장 많이 다루는 매장으로 매달 게 10t을 사들인다. 갓 잡힌 신선한 홋카이도 게 맛을 볼 수 있다. 
 
 
일본(홋카이도)=글·사진 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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