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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공짜보다 급한 일

중앙일보 2018.01.17 01:43 종합 31면 지면보기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미세먼지 비상 저감조치에 따라 서울시가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행한 15일 아침.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던 남편은 다른 날과 똑같이 차를 갖고 나갔다. 주변에 물어 보니 다들 마찬가지였다. 출근 시간이 워낙 이르거나 버스 정거장까지 많이 걸어야 하는 등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에 단순히 지하철·버스가 공짜라는 이유만으로 승용차를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시행 전날 서울시가 휴대전화 알림 문자까지 보내며 대중교통 이용을 촉구했지만 실제로 이날 지하철 이용객은 당초 서울시의 기대치 20%에 크게 못 미치는 2.1% 증가에 그쳤다.
 
결국 나처럼 미세먼지와 무관하게 평소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사람만 하루 동안 공짜 혜택을 누린 셈이다. 이날 하루 여기에 들어간 돈은 60억원. 이 돈도 적지 않은데 예년의 미세먼지 수준과 서울시의 비상 저감조치 기준을 적용하면 올 한 해 대략 7일 정도는 대중교통 무료 운행일이 된다. 420억원가량이 든다는 얘기다.
 
“실질적 효과도 없이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장기적으로 효과가 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지지자들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이런 ‘쇼’라도 하는 게 낫지 않으냐”고 두둔한다.
 
누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나. 다만 돈을 제대로 쓰라는 주문은 필요하다.
 
중국 등 외부 요인을 제외하고 국내 도로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휘발유로 굴러가는 승용차가 아니라 경유 차량, 특히 노후한 버스나 트럭에서 나온다는 게 상식이다. 설령 승용차 2부제에 동참하는 시민이 앞으로 크게 는다고 해도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는 별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반면 ‘쇼’하는 데 들어가는 420억원을 다른 데 쓰면 미세먼지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노후 경유차에 매연저감장치(DPF)를 설치하거나 조기 폐차시키는 정책이다. 서울시는 올해 대당 100만~10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DPF 설치를 위한 보조금 등에 예산 450억원을 책정했다. 당초 2019년까지 필요한 차량에 설치를 마친다는 방침이었으나 예산 부족 탓에 완료 시기가 2022년으로 늦춰졌다. 돈이 없어 서울시민이 3년 더 매연을 내뿜는 노후 경유차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와중에 공짜 지하철이라니.
 
올해 일곱 번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대신 경유차가 내뿜는 시커먼 매연을 맡지 않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걸 택하지 않을까. 대체 60억원은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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