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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석 달간 존엄사 43명 … 절차 까다로워 연명의료 되레 늘 수도

중앙일보 2018.01.17 01:07 종합 12면 지면보기
오늘부터 '존엄사' 가능…환자가 연명치료 결정

오늘부터 '존엄사' 가능…환자가 연명치료 결정

지난 석 달간 합법적으로 연명의료를 하지 않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이 43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22일~이달 15일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을 했는데, 이 기간에 연명의료 중단(유보)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연명의료중단이란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 4가지 행위를 유보하거나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건강한 사람 9370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존엄사를 서약했다. 연명의료 중단은 내달 4일 공식 시행하며, 이를 앞두고 석 달 간 13개 기관(10곳은 의료기관)에서 시범사업을 했다.
 

시범 실시 3개월 해보니

43명은 임종기에 접어들면서 4가지 행위를 하지 않거나 중도에 중단하고 생을 마감했다. 본인이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하거나 가족이 의사 결정을 대신했다. 가족 2명이 “아버지(어머니)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일관성 있게 진술하고 이를 의료진이 확인했다.
 
9370명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시범사업에서 몇 가지 우려가 사실로 확인됐다. 정식 시행이 보름 남짓밖에 남지 않아 보완할 틈이 없다. 다소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인데다 참여병원이 10곳에 불과한 점을 감안해도 연명의료 중단 43명이 너무 적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자 94명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에서 연명계획서를 작성한 사람이 18명인데, 그 기간의 사망자 400여명에 비하면 너무 적다. 이유는 연명의료 중단을 하려면 의료진이 환자가 말기가 됐을 때 연명의료의 고통을 설명하고 존엄사를 선택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환자 서명을 받아서 의사가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고 임종 단계에 접어들면 자연스럽게 임종하는 게 일반적인 절차다. 지금까지 의료 현장에서 관습적으로 가족이 대리 결정해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환자 본인의 의사 없이는 불가능해졌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환자 의사를 확인하려고 해도 가족이 막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초 한 시범사업 병원에 소화기계통의 80대 여성 암 환자의 예를 보자. 암 세포가 폐로 전이돼 상태가 날로 악화됐다. 가족들은 말기 암이라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 환자는 “왜 숨이 차고 몸이 안 좋지”라고만 말했다. 의료진이 반복적으로 가족을 설득해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먼저 알렸다. 연명의료 중단은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의료진의 설득이 다시 이어졌다. 결국 딸이 승낙했고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쓰려고 하는데 장남이 나타나 반대했다. 의료진은 장남을 포함해 6남매를 모아 놓고 설득했다. 자녀들이 뒤늦게 동의했지만 그 사이 환자는 숨졌다. 물론 연명의료는 하지 않았다. 9회 상담을 했고 1회당 평균 45분 걸렸다.
 
의사들 처벌 우려 소극 대응 할 수도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김세연(왼쪽) 의원이 ‘찾아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상담소’ 에서 연명의료 상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김세연(왼쪽) 의원이 ‘찾아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상담소’ 에서 연명의료 상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내달 4일 법이 시행되면 의료진이 이렇게 설득할 데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진료에 쫓기는 상황에서 쉽지 않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의료사업단장은 “연명의료를 중단하려면 환자가 임종기라고 담당의사와 전문의가 판정해야 하는데 야간이나 휴일에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소 종합병원급은 엄두를 못 낸다.
 
가족이 부모의 의사를 추정하려면 가족관계증명서가 있어야 하는데, 화급을 다투는 상황에서 이 역시 부담스러운 조항이다. 가족의 범위에 직계 존속·비속이라고 돼 있는데, 증조부나 증손까지 여기에 포함되는 점도 현실과 맞지 않다. 고수진 울산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동료 교수들에게 연명의료 중단 절차를 설명하면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서 연명의료를 더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중단가능한 연명의료 행위를 네 가지로 제한한 것도 문제다.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에크모(체외 인공심장기계)는 인공호흡기보다 더 고통스러운데, 인공호흡기는 중단해도 되고 에크모는 안 된다는 게 맞지 않다”고 말한다.
 
문제 보완할 법안 국회선 손도 안 대 
 
연명의료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 중단하거나 서류를 허위로 작성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돼 있다. 또 7년 이하 의사 자격정지를 받을 수 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절차가 까다롭고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연명의료를 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현장에서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심폐소생술 금지요청서와 연명의료결정법의 충돌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동안 지적된 문제를 고치려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지난달 말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발의했지만 국회가 손도 안 대고 있다. 의사 처벌을 1년 유예하고 연명의료 행위에 에크모 등을 추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말기 이전에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게 하는 등을 담고 있다. 법 시행 전 개정은 불가능해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고 출발하게 됐다.
 
긍정적인 점도 있다. 문재영 충남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보완할 점이 많긴 하지만 연명의료 중단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자고 먼저 제의하는 환자도 있다”며 “국회 계류 중인 법률 개정안 통과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연명의료 중단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 4가지 연명의료 행위를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거나 중도에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한 해 약 5만명이 연명의료를 받고 숨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달 4일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돼 연명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할 수 있게 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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