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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_평창] 무대 뒤 영웅들이 만드는 ‘평창 성공’

중앙일보 2018.01.17 00:56 종합 18면 지면보기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고기현(왼쪽)과 변천사가 16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둘은 평창올림픽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강릉=오종택 기자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고기현(왼쪽)과 변천사가 16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둘은 평창올림픽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강릉=오종택 기자

 
한때는 환호와 박수의 주인공이었다. 가슴팍에는 오륜기가 새겨진 금빛 메달이 빛났다. 모두가 ‘영웅’이라 불렀다. 지금은 다르다. 무대 뒤편에서 묵묵히 일한다. 스포트라이트도, 팬들의 칭찬도 없다. 새롭게 영웅으로 등장할 후배들을 위해 길을 닦아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래도 요즘 느끼는 행복감이 화려했던 현역 시절 못지않다고 했다. 2018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와 우리나라 겨울스포츠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크기 때문이다.

올림픽 뒷바라지 하는 올림피언
쇼트트랙 금 휩쓴 변천사·고기현
종목·경기장 담당관으로 활약
유승민 IOC위원, 김기훈 교수
평창·강릉 선수촌장 각각 맡아

 
변천사(31)와 고기현(32). 200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쇼트트랙을 빛낸 간판스타다. 변천사는 2006년 토리노(이탈리아) 겨울올림픽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땄다. 결승전에서 두 차례나 선두를 탈환하며 대한민국의 올림픽 4연패를 이끈 주인공이기도 하다. 고기현은 중학교 3학년이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미국) 대회 여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사람의 무대는 여전히 빙상경기장이다. 다만 얼음판 위가 아니라 바깥이라는 점이 다르다. 두 사람은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함께 일한다. 지도자 대신 스포츠 행정가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요즘 빙판 밖에서 더 바쁘다. 변천사는 쇼트트랙 종목 담당관, 고기현은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이 열리는 아이스아레나의 베뉴(venue)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고기현(왼쪽)과 변천사가 16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변천사는 쇼트트랙 종목 담당관, 고기현은 아이스아레나 베뉴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강릉=오종택 기자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고기현(왼쪽)과 변천사가 16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변천사는 쇼트트랙 종목 담당관, 고기현은 아이스아레나 베뉴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강릉=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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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시공 때부터 힘 보태
 
16일 강릉 만난 고기현은 “(변)천사는 단거리와 장거리를 모두 잘 타는 올라운드 플레이였다. 나와 천사 모두 초등학교 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간 이력이 있다. 실력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웃었다. 변천사는 “기현 언니의 동작은 ‘쇼트트랙의 교과서’로 통했다. 어린 시절에 열심히 따라 했다”고 말했다.
 
변천사와 고기현은 각각 2013년과 2014년에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에 합류했다. 변천사는 “2011년 은퇴를 결정한 이후 뭘해야할 지 고민했다. 잠시 아이들을 가르쳐보기도 했지만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며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우연찮은 기회에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종목 담당관 채용 공고를 봤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겨울올림픽에 힘을 보태자는 생각으로 지원서를 냈다”고 했다.
 
고기현은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에 대한 욕심은 크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행정가를 목표로 준비를 시작했다. 서울시 체육회, 스페셜올림픽조직위원회, 대한빙상경기연맹 등을 거쳐 평창올림픽 조직위에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고기현(왼쪽)과 변천사가 16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두사람은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선수시절 못지않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강릉=오종택 기자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고기현(왼쪽)과 변천사가 16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두사람은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선수시절 못지않게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강릉=오종택 기자

변천사는 올림픽 기간 쇼트트랙 경기가 차질 없이 열릴 수 있도록 제반 사항을 총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경기 진행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물자는 물론 경기 파트에 배치된 인력을 컨트롤하는 것도 그의 임무다. 경기장을 설계하는 과정에도 참여했다. 선수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드레싱룸(장비를 착용하고 점검하는 장소)의 크기와 위치, 이동 경로 등을 꼼꼼하게 분석해 설계도에 반영했다.
 
변천사는 “완공 전 경기장 부지는 말 그대로 풀밭이었다. 이곳 저곳에 닭들이 뛰어다녔다. 현장을 방문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이 ‘치킨이 많다’며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면서 “경기장이 만들어지는 동안 시공사 관계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직접 스케이트를 신고 빙질도 체크했다.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링크 밖으로 나오면 즉각 아이싱(얼음찜질)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 6시부터 현장 돌아
 
고기현은 강릉 벌어지는 모든 일을 총괄한다. 쇼트트랙과 피겨스케이팅 경기뿐만 아니라 경기장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그의 통제 아래에 있다. 두 사람은 “우리의 땀과 노력이 배어 있는 강릉 아이스아레나의 완성도는 전 세계 어떤 아이스링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운동선수 출신이라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한 발 더 뛰었다. 변천사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온종일 돌아다녔다. 어느새 체중이 5㎏이나 빠졌더라”면서 “휴대폰이 고장 나 바꾸러 갔더니 매장 점원이 ‘통화량이 엄청난데 뭐하는 분이시냐’고 묻기도 했다. 받은 전화만 따져도 평균 통화량이 매달 3000분이 넘는다”고 말했다. 고기현은 “선수 때는 경기를 못하면 나 혼자 욕을 먹으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내가 실수하면 평창올림픽 이미지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더욱 조심하고 집중한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17일 오전 서울 목동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1000m 예선에서 한국의 심석희가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7일 오전 서울 목동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1000m 예선에서 한국의 심석희가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창올림픽에서 한국의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은 금메달 4개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변천사는 “심석희 선수가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땄는데도 풀이 죽어있더라. ‘금메달 3개쯤은 너끈히 따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너무 커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이번엔 부담감을 벗고 경기를 맘껏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기현은 “남자대표팀도 응원이 필요하다. 특히나 최고참 곽윤기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영화 ‘국가대표’모델 김흥수도 종목 매니저
 
변천사와 고기현은 평창올림픽 경험을 바탕으로 선수 출신 스포츠 행정가가 되는 게 꿈이다. 변천사는 “2022년 베이징(중국) 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내 역할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2년 전 조직위 개·폐회식장 담당 이승훈 매니저와 화촉을 밝혀 화제가 된 고기현은 “남편과 함께 또다른 국제 스포츠조직에서 경험을 쌓고 싶다”고 했다.
 
평창 조직위에는 두 사람 이외에도 선수 출신 행정가가 여럿 있다. 1994년 릴레함메르(노르웨이) 올림픽 여자 계주 3000m 금메달리스트인 김소희(42)는 빙상 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스키점프 국가대표 출신으로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모델인 김흥수(38)는 스키점프와 노르딕복합 담당 매니저로 활동 중이다.
 
16일에는 두 명의 올림피언이 평창올림픽 관련 스포츠 행정가 대열에 추가 합류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탁구 단식 금메달리스트 유승민(37) IOC 선수위원은 평창 올림픽선수촌장을 맡았다. 평창조직위는 올림픽 참가 경험은 물론, IOC 선수위원의 상징성을 고려해 설상(雪上)과 썰매 종목 선수들이 머무는 평창 올림픽선수촌의 총 책임자로 유승민 위원을 임명했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쇼트트랙 2관왕(남자 계주·1000m) 및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 남자 1000m 금메달리스트 김기훈(51) 울산과학대 사회체육과 교수는 빙상(氷上) 선수들이 머무는 강릉 올림픽선수촌장으로 나선다.
 
명칭은 평창이지만 경기장은 3곳에
대회 명칭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이지만, 개최도시는 강릉과 정선까지 총 3곳이다. 설상과 썰매 경기가 열리는 평창·정선을 묶어 마운틴 클러스터로, 빙상 경기가 열리는 강릉을 코스탈 클러스터로 각각 부른다. 모든 경기장이 30분 이내 거리에 있지만 편의를 위해 선수촌과 미디어센터도 두 곳에 마련했다. 그래서 선수촌장도 두 명(유승민·김기훈)이다.

 
강릉=송지훈·박린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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