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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올림픽은 ‘돈림픽’

중앙일보 2018.01.17 00:06 경제 9면 지면보기
겨울올림픽의 또 다른 이름은 ‘잘 사는 나라들의 체육대회’다.
 

고가 장비 등 고비용 구조 영향
국민 소득 높은 6개국 메달 독식
양극화 해소가 겨울스포츠 숙제

역대 겨울올림픽에서 메달을 하나라도 땄던 나라는 40개국이다. 금메달만 따지면 32개국으로 줄어든다. 제1회 대회였던 1924년 샤모니 겨울올림픽 이래 전체 금메달의 62%를 유럽(독일·러시아(옛 소련 포함)·노르웨이·오스트리아)과 북미(미국·캐나다)의 6개국이 가져갔다. 국가의 경제력과 겨울올림픽 성적이 비례하는 모양새다. 여름올림픽의 경우 메달 수 상위 6개국(미국·러시아·독일·영국·중국·프랑스)이 가져간 금메달은 2694개로 전체의 절반 정도(52.7%)다. 겨울올림픽이 여름올림픽보다 10%포인트 정도 더 높다.
 
올림픽을 앞두고 컨설팅업체 등 많은 기관이 메달 순위를 예측한다. 경제 규모와 인구를 기본 변수로 두고, 개최국 효과 등을 반영한다. 조사기관들의 발표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특히 1~10위 국가에 대한 예측은 정확도가 더 높다. 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이코노미스트인 존 혹스워스는 “메달은 경제력의 거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올림픽 메달 수가 국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되기도 한다.
 
겨울올림픽은 ‘선진국들의 잔치’

겨울올림픽은 ‘선진국들의 잔치’

겨울스포츠는 특히 경제 선진국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2016년 국제연합(UN)이 발표한 1인당 국내총생산(GDP) 자료를 기준으로 3만 달러(약 3200만원) 이상인 28개국이 겨울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은 746개다. 전체의 78.1%다. 반면 1인당 GDP 5000달러(약 530만원) 이하 97개국이 딴 겨울올림픽 금메달은 3개(0.3%)뿐이다. 여름올림픽의 4.5%(231개)와 비교하면 겨울올림픽의 메달 양극화 현상은 두드러진다. 1인당 GDP가 1만2900달러(약 1372만원)인 헝가리는 여름올림픽에서 금메달 129개를 땄지만, 겨울올림픽에선 2개에 불과하다. 육상에서만 31개의 금메달 따낸 아프리카의 케냐는 겨울올림픽 메달이 하나도 없다.
 
 
피겨 스케이트 한 켤례에 300만원
 
스포츠에는 감동과 눈물이 있다. 전 세계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다. 하지만 가난을 딛고 세계 정상에 오르는 감동의 휴먼 스토리를 겨울올림픽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겨울스포츠는 마찰계수가 0에 가까운 얼음과 눈 위에서 스피드와 정확성을 겨룬다. 장비의 미세한 성능 차이가 메달 색깔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첨단 소재와 기술이 사용된다.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피겨·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신는 스케이트는 한 켤레에 250만~300만원을 호가한다.
 
스케이트가 발에 맞지 않으면 기량을 발휘할 수 없다. 대부분 정교하게 제작된 수제스케이트를 신는다. 특히 점프가 중요한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발에 꼭 맞는 스케이트가 승부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한국 여자 피겨 국가대표 최다빈은 새 스케이트 부츠가 발에 맞지 않아 짝짝이로 신고 경기에 나가기도 했다. 가격이 3분의 1에 불과한 기성제품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다.
 
경기복에도 첨단 소재가 사용된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주요 부위에 방탄 소재를 사용한 경기복을 입는다. 넘어졌을 때 스케이트 날에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복은 공기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한다. 우주선 제작에 사용되는 유리섬유 등 항공우주산업의 기술력까지 첨가된다.
 
겨울올림픽 종목별 장비 가격

겨울올림픽 종목별 장비 가격

‘전사의 스포츠’ 아이스하키는 총 무게 15㎏이 넘는 전신 장비를 착용한다. 기본 장비인 스케이트와 하키 스틱은 각각 150만원에 이르고, 각종 보호구와 헬멧, 유니폼까지 더하면 1000만원 이상의 돈이 든다.
 
겨울스포츠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건 썰매 종목이다. 독일(동·서독 포함)은 역대 올림픽 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에서 47개의 금메달(총 96개)을 쓸어담았다. 독일은 스포츠장비연구소(FES)라는 기관이 썰매를 만든다. 장비제작 기술은 ‘1급 기밀’이다. 선수용 스켈레톤 썰매는 한 대에 2000만원 대다. 스켈레톤과 비슷한 루지 썰매의 경우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한 대에 1000만원 정도다.
 
‘얼음 위의 F1’으로 불리는 봅슬레이는 썰매 한 대가 2억원(4인용) 이상이다. 2인용 썰매도 1억원대다. 1초를 단축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장비를 개발한다. F1머신처럼 썰매가 경기력을 좌우한다. 봅슬레이 썰매는 크게 바디(차체), 섀시(골조), 러너(날)로 구성된다. ‘선수와 썰매 무게를 합쳐 630㎏(4인승 기준)을 넘을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바디를 가벼운 탄소섬유 재질의 일체형으로 만든다. 최근엔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특수 탄소 복합소재로 만든 썰매까지 나왔다. 러너 가격만 2000만원이 넘는데, 독일 대표팀은 100개가 넘는 러너를 갖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봅슬레이 썰매를 제작한다. 이탈리아 페라리, 영국 맥라렌이 썰매를 만들고, 독일 BMW는 미국 대표팀을 지원한다. BMW는 2014년 소치올림픽 당시 미국팀 썰매 제작에 2400만 달러(약 276억원)를 썼다. 현대차도 2014년부터 한국 대표팀 봅슬레이 썰매 제작에 참여했다.
 
컬링도 장비 가격이 만만치 않다. 스톤 한 세트(16개)에 3600만원이다. 비싼 이유는 정교한 기술력과 라인의 통과 여부를 감지하는 센서가 부착된 전기손잡이 때문이다. 컬링용 빗자루인 스위핑 브러시는 10만~25만원 선이며, 일회용인 브러시 패드도 5만원 정도다.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는 신발도 50만원 정도 한다.
 
 
참가 선수 백인이 대부분, 흑인 드물어
 
겨울스포츠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기후가 맞아야 한다. 눈과 얼음이 없을 경우엔 얼음을 얼릴 수 있는 실내경기장이 있어야 한다. 시설을 짓고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평창올림픽은 6개 경기장이 새로 지은 경기장인데, 총 공사비로 7470억원이 투입됐다. 한국산업전략연구원은 올림픽 이후 경기장 운영 비용으로 연간 313억5100만원을 예측했다. 신설된 강릉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총공사비 1264억원이 들었다.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스피드스케이팅 전용 경기장이다. 한해 운영비가 30억원 이상이지만, 올림픽 이후 활용 방안이 막연한 상황이다. 먹고살기도 힘든 저개발 국가로선 ‘그림의 떡’이다.
 
겨울스포츠의 양극화 현상은 한 국가 내에서도 관찰된다. 미국은 인구의 15%가 흑인이지만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흑인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최근 선수 중에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비중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백인 비중이 높다. 겨울스포츠는 흑인들이 강한 ‘백야드(backyard·뒷마당) 스포츠’와 거리가 멀다. 농구처럼 큰돈 들이지 않고 뒷마당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니다.
 
겨울올림픽 첫 흑인 금메달리스트는 2006년 토리노올림픽 때의 샤니 데이비스(미국 스피드스케이팅)다. 이런 사정은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김영관 전남대 교수(체육교육과)는 “겨울스포츠는 북위 30도 위쪽 지역에서 태동했다. 흑인들로선 겨울스포츠를 접하기 힘든 구조”라며 “흑인 선수들은 폭발적인 순발력과 파워를 지녔다. 기회만 충분하다면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겨울올림픽이 앞으로도 계속 선진국과 백인의 전유물로 머물 경우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데 어려울 전망이다. 양극화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14년 아젠다2020을 통해 올림픽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국가와 도시를 넘나드는 분산 개최를 허용하는 등 개방적이고 유연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는 평창올림픽 유치 전인 2004년부터 ‘드림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겨울스포츠 불모지 국가 꿈나무들에게 교육 프로그램과 인프라를 지원했다. 겨울스포츠가 발전하지 못한 국가와 분쟁지역 청소년들을 강원도로 초청해 스키·스노보드·쇼트트랙 등을 가르쳤다. 평창이 삼수 끝에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데는 ‘드림 프로그램’도 큰 역할을 했다.
 
2017년까지 13년간 아프리카·아시아·남미의 83개국에서 온 1919명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갔다. 이 가운데 24개국 185명이 자라 국제 겨울스포츠 대회에 선수로 출전했다. 평창올림픽은 드림 프로그램이 결실을 보는 무대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 피겨선수 줄리안 이(20)는 2009년 드림 프로그램 참가로, 자국 최초의 겨울올림픽 출전자다. 2007년과 2009년 두 차례 드림 프로그램에 참여한 루마니아의 에밀 임레(21)도 쇼트트랙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강원도는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드림 프로그램을 지속할 예정이다. 윤강로 원장은 “IOC가 못한 일을 강원도가 하고 있는 것”이라며 “IOC 내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이사는 “드림 프로그램은 실질적인 국가 브랜드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경험한 선수들이 나중에 국가 지도층으로 되면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드림 프로그램을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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