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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내셔널]5000번 두드리면 칡 줄기도 귀한 붓…붓 외길인생 유필무 필장(筆匠)

중앙일보 2018.01.17 00:01
 
지난 14일 충북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의 한 붓공방. 9.9㎡(3평) 남짓의 방 안에 들어서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붓이 벽에 걸려있었다. 황토 옷을 입은 붓대 뭉치가 화로 앞에 놓여있고, 작업에 쓰인 밀랍 덩어리와 밀판도 보였다. 방 한편에선 ‘붓쟁이’ 유필무(58)씨가 붓털을 한 움큼 쥐고 빗질을 하고 있었다. 뻣뻣한 털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그래야 붓털이 부드럽고 획이 올곧게 나온다고 한다.

16살에 붓 인연 41년 동안 전통 제작 기법으로 100여 종 제작
96년 칡 뿌리·줄기 이용해 칡붓 완성…억새·볏짚·띠풀 등 식물섬유 활용
중국산 저가 붓 공세에 전통 방법 고집…충북무형문화재 필장 지정
"흔한 재료라도 귀한 노력 더해지면 귀한 존재로 탄생"

 
유씨는 “작정하고 버려야 한다. 털이 아깝다고 버리지 못하면 불필요한 것들이 계속 남아 썼을 때 획이 고르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업을 붓털(초가리)을 고르는 ‘물끝보기’라고 소개했다. 털끝을 물에 적셔서 빗질하고 대나무 칼을 이용해 한올 한올 털을 선별한다. 붓이 완성되는 50여 가지 공정 중의 하나다. 
유필무 필장이 14일 증평군 도안면 공방에서 자신이 만든 붓을 소개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유필무 필장이 14일 증평군 도안면 공방에서 자신이 만든 붓을 소개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유씨는 최근 충북무형문화재 필장(筆匠)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필장은 붓을 만드는 장인이다. 초가리라 불리는 붓털부터 붓대와 각통, 붓뚜껑, 붓꼭지까지 유씨의 손끝에서 작업이 이뤄진다. 붓대에는 전통문양과 글을 새기고 옻칠도 세 번 한다. 충북도 문화재위원회는 “유씨가 전통 붓 제작 방법을 전승하고 또 계승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그를 필장으로 지정했다.
 
유씨가 붓과 인연을 맺은 건 41년 전이다. 열여섯 살이던 1976년 서울의 ‘예문당’에서 운영했던 마포구 용강동 소재 붓공방에서 처음 붓 만드는 법을 배웠다. 88년 충북 음성에 셋방을 얻고 나서는 혼자서 붓제작 기법을 연구하고 구전으로 내려오는 옛 방식을 복원했다.
 

“초기에는 붓으로 생활이 가능했다. 92년 한·중수교 이후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붓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붓을 찾는 사람이 줄고  판매량이 급감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붓을 가려 쓸 줄 모르는데 이유가 있었다. 좋은 붓을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왕 붓 매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면 옛 방식의 붓을 만드는 것이 되레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유필무 필장이 만든 붓. 흰색 털이 양털로 만든 붓이고 진흙색을 띠는 것이 칡으로 만든 칡붓 등 식물성 섬유로 만든 붓이다. 최종권 기자

유필무 필장이 만든 붓. 흰색 털이 양털로 만든 붓이고 진흙색을 띠는 것이 칡으로 만든 칡붓 등 식물성 섬유로 만든 붓이다. 최종권 기자

유필무 필장이 만든 붓. 최종권 기자

유필무 필장이 만든 붓. 최종권 기자

 
유씨가 지금까지 만든 붓 종류는 100가지가 넘는다. 양털이나 족제비 꼬리, 노루 앞가슴 털, 소 귀속 털, 어린 말꼬리 털까지 다양하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서예용 붓은 대개 양의 털로 만든 모필(毛筆) 등 동물의 털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유씨가 붓 장인으로 세상에 알려진 건 그가 만든 갈필(葛筆·칡붓) 덕분이다. 칡 뿌리와 줄기를 5000~1만번까지 곱게 쳐서 붓털로 만든 것을 하나의 붓으로 만드는 데 3개월이 걸린다. 이 외에도 등나무·종려나무·억새·질경이·볏짚·띠풀 등 다양한 식물 섬유질을 활용해 붓을 만들었다.
 

“93년 청주에서 필방을 운영하면서 전국의 유명 필방 이름을 거론하며 내가 만든 붓을 무시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만의 붓을 만들자고 생각한 뒤 3년여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갈필을 완성했다. 한 스님에게 듣기로는 예전에 비싼 모필 대용으로 칡을 끊어다 돌로 짓이겨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문신인 미수 허목(1595~1682) 선생의 직계 후손에게도 비법을 배웠다.” 

유필무 필장의 공방에 걸린 다양한 붓. 최종권 기자

유필무 필장의 공방에 걸린 다양한 붓. 최종권 기자

대나무 칼로 붓털을 골라내는 작업. 최종권 기자

대나무 칼로 붓털을 골라내는 작업. 최종권 기자

 
칡 붓을 만드는 데는 3~5년생 칡 줄기를 사용한다. 칡에는 녹말과 기름이 뒤섞여 있다. 이 성분을 뽑아내기 위해 소금물에 찌고 건조하기를 9번씩 반복한다. 반쯤 말린 칡 줄기를 망치로 달래듯 5000번 이상 두드리고 말릴 때는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린다. 3개월 동안 이 작업을 마치면 칡 줄기가 잔털처럼 연해진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털로 붓을 만드는 작업은 1년 이상의 공정이 필요하다. 크게 15가지, 세부적으로 50여 개의 작업을 한다. 11㎝ 이상 되는 털이 서예용 붓으로 적당하고 짧은 털은 그림용 붓을 만드는 데 쓰인다.
 
 털에서 기름을 뺄 때는 다듬잇돌로 눌러 한 달에 한 번씩 기름종이를 교체하면서 1년 동안 눌러준다. 유씨는 “중국식은 기름을 뺄 때 생석회 섞은 물에 털을 하룻밤만 담가서 뺀다. 이렇게 하면 언뜻 볼 때 털이 하얗게 탈색돼 좋아 보이지만 붓을 쓸수록 털이 빠지고 부서져 오래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유필무 필장이 만든 다양한 모양의 붓대. 전통문양과 글을 조각칼로 새겨넣었다. 최종권 기자

유필무 필장이 만든 다양한 모양의 붓대. 전통문양과 글을 조각칼로 새겨넣었다. 최종권 기자

붓대의 재료로 쓰이는 대나무 뭉치. 최종권 기자

붓대의 재료로 쓰이는 대나무 뭉치. 최종권 기자

 
빗질과 재단(털 잘라내기), 털타기(털이 고루 섞이도록 하는 과정) 등을 거쳐 붓털을 준비한다. 붓대는 1년산 대나무를 구해 소금물에 삶아 진을 뺀다. 대나무 속을 파고 붓대에 옻을 칠해 붓대와 붓털을 끼워 완성한다. 이 과정에서 붓털에 인두로 녹인 밀랍을 넣는다. 밀랍이 기름이기 때문에 붓을 적셔도 붓대가 젖지 않는다.  
 
유씨는 “아직도 스스로 장담할 만한 완벽한 붓을 만들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붓을 매면서 흔한 재료라도 많은 손길과 노력이 더해지면 더 귀한 존재가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며 “많은 붓을 만들기보다는 좋은 붓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열정을 쏟고 싶다”고 했다. 증평군은 유씨가 사는 도안면 화성리에 선비와 전통 붓을 주제로 한 붓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유필무 필장이 1998년 만든 3색 억새붓. 억새 줄기를 두드려 만든 붓으로 붓 받침목도 직접 만든 것이다. 최종권 기자

유필무 필장이 1998년 만든 3색 억새붓. 억새 줄기를 두드려 만든 붓으로 붓 받침목도 직접 만든 것이다. 최종권 기자

증평=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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