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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 “빙판의 작은 통일 좋지만 선수가 먼저다”

중앙일보 2018.01.16 00:11 경제 11면 지면보기
현정화 감독. [연합뉴스]

현정화 감독. [연합뉴스]

2018 평창올림픽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남북 올림픽위원회 및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는 오는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4자회담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논의한다.
 
그동안 남북이 단일팀을 이뤄 국제대회에 출전한 경우는 두 차례 있었다. 1991년 2월 남북체육회담을 통해 탁구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한국의 현정화(50·현 렛츠런 감독)와 북한 이분희(51)가 호흡을 맞춘 탁구단일팀은 1991년 5월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서 중국의 9회 연속 우승을 저지하고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 해 7월엔 축구 단일팀이 국제 대회에 나갔다. 한국의 조진호와 북한 최철(46) 등이 출전한 축구 단일팀은 1991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아르헨티나 등을 꺾으며 8강에 올랐다.
 
지난 1991년 남북단일팀을 결성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던 코리아팀. 아래 오른쪽에서 둘째가 현정화 감독. [중앙포토]

지난 1991년 남북단일팀을 결성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던 코리아팀. 아래 오른쪽에서 둘째가 현정화 감독. [중앙포토]

28년 전 단일팀을 구성해 탁구세계선수권에 출전했던 현정화 감독은 최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1980년대 말 스포츠 남북대결은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한국 선수 중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가 생길까봐 나는 처음엔 단일팀에 부정적이었다”며 “탁구는 한팀 엔트리가 5명인데 당시엔 국제탁구연맹이 남북한 각 5명씩 총 10명이 출전하도록 배려해줬다”고 회상했다. 축구 단일팀의 경우엔 엔트리가 18명이었는데 한국 9명, 북한 9명 동수로 팀을 구성했다. 당시 북한이 주로 공격에 포진했고, 한국은 수비를 맡았다.
 
탁구단일팀은 일본에 모여 45일간 훈련했다. 축구 단일팀은 평양과 서울에서 1주일씩 훈련한 뒤 포르투갈에서 2주간 최종훈련을 했다. 현정화 감독은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북한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 북한 선수들에게 (배우 주현의) ‘야이 자식아~’ 라는 유행어를 가르쳐줬고, 북한 선수들도 이를 따라했다”고 말했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단일팀 현정화(오른쪽)와 북한 이분희. [중앙포토]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남북한 단일팀 현정화(오른쪽)와 북한 이분희. [중앙포토]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 선수로 참가, 우정을 나눴던 유남규(왼쪽)와 북한의 김성희. [중앙포토]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단일팀 선수로 참가, 우정을 나눴던 유남규(왼쪽)와 북한의 김성희. [중앙포토]

같은 언어를 쓰지만 탁구 용어는 달랐다. 현정화 감독은 “북한 선수들은 서브를 ‘쳐넣기’, 스매시는 ‘때리기’라고 말하더라. 무척 생소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대회가 끝난 뒤 남북 선수들은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고 현정화 감독은 회고했다. 현 감독은 “남북 선수들 모두 엉엉 울었다. 분희 언니한테 남북 단일팀의 추억을 잊지말라는 뜻에서 금반지 선물을 건넸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당시 평양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가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 내어 울었다.
지난 19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 단일팀 환영식 당시 코리아팀 선수들. [중앙포토]

지난 19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남북 단일팀 환영식 당시 코리아팀 선수들. [중앙포토]

지난 19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나갈 남북단일팀을 뽑는 1차 평가전에서 남북혼성 홍백팀이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991년,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나갈 남북단일팀을 뽑는 1차 평가전에서 남북혼성 홍백팀이 입장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991년 남북 청소년축구 단일팀 구성을 위한 서울 평가전에 참가할 북한 선수단 70여명이 판문점을 통과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991년 남북 청소년축구 단일팀 구성을 위한 서울 평가전에 참가할 북한 선수단 70여명이 판문점을 통과하고 있다. [중앙포토]

 
평창올림픽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하는 반면, 북한은 출전권이 없다. 최종엔트리는 23명인데 만약 북한 선수 3~8명이 가세할 경우 오히려 한국 선수가 탈락하는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 선수 23명 모두의 출전을 보장하고 북한 선수를 추가하는 ‘23+α’ 안이 성사되더라도 우리 선수 중 뛰지 못하는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 게임 엔트리는 22명 뿐이기 때문이다.
 
역대 스포츠 남북단일팀

역대 스포츠 남북단일팀

정작 한국 선수들은 공식 채널을 통해 어떤 입장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공격수 한수진(30)은 “지난 19일 미국 전지훈련을 마친 뒤 귀국길에 뉴스로 소식을 접했다. 적게는 5년, 많게는 10년 이상 국가대표 수당(하루 6만원)만 받으며 올림픽만 바라보고 운동해 온 선수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선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반대하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해 4월 아이스하키 남북 대결에서 희비가 엇갈린 한국(흰 유니폼), 북한(빨간 유니폼). 당시 한국이 3-0 완승을 거뒀다. [강릉=임현동 기자]

지난해 4월 아이스하키 남북 대결에서 희비가 엇갈린 한국(흰 유니폼), 북한(빨간 유니폼). 당시 한국이 3-0 완승을 거뒀다. [강릉=임현동 기자]

현정화 감독은 ‘빙판 위의 작은 통일’도 좋지만 남북단일팀이 ‘정치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현 감독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단일팀 구성은 필요하다”면서도 “정부의 뜻에 따라 강압적으로 ‘이렇게 하라’는 식의 단일팀 추진은 곤란하다. 단일팀을 추진하더라도 선수들과 충분한 대화를 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20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평창 회의에 참석할 예정인 유승민(36) IOC 선수위원은 “탁구 단일팀이 성공한 예가 있기에 남북 단일팀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면서도 “아이스하키 선수들과 소통이 부족했던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선수들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선수들의 피해를 최소화 하겠다고 약속했다.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린·김지한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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