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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가슴 벅차게 한 후배의 전화 한 통

중앙일보 2018.01.15 04:00 종합 19면 지면보기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28)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직 후 몇 년이 지났는데 이름이 뜰 정도니 아주 모르는 사이는 아니라 하겠다. 아니 그 정도는 훨씬 지났다. 
 
 
[사진 fre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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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부서에 근무할 때 평소 처신도 바르고 일도 잘해 눈여겨보던 친구였다. 하지만 술을 즐겨하지 않는 탓에 밥을 산 적은 더러 있을지 몰라도 따로 술자리를 한 기억은 나지 않는 딱 그런 정도의 인연이다.
 
특별한 용건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문득 생각나서 전화했노라고. 잘 지내느냐고 물은 게 다였다. 기실 현역 때도 같은 부서라 해도 하는 일이 달라 얽힐 일은 없었다. 그러니 퇴직한 지금에서야 더더욱 일이 있을 리 없다. 
 
그 후배는 저서를 내기도 했고 방송에도 곧잘 출연하는 이른바 한창 잘 나가는 터라 반백수 신세인 날 찾을 일도 없고, 뭘 부탁할 일은 아예 없는 형편이다.  
 
그 흔한,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인사치레도 않은 채 통화를 끝냈다. 한데 통화는 짧았지만 여운은 길었다. 왜 전화를 했을까? 잠깐 망설이는 기색이 있던데…. 사적인 전화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후배였기에 어지럽게 생각이 오갔다. 
 
그러면서 고마웠다. 잊지 않고, 그야말로 일 없이 소식을 물어봐준 것이. 어쩌면 그 후배는 휴대전화를 잘못 눌렀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마당발 동료
[사진 fireworks]

[사진 fireworks]

 
현역 시절 마당발인 동료가 있었다. 낯선 이와 골프를 쳐도 그늘집에 이를 때쯤이면 어느새 형님 동생 할 정도로 친화력이 뛰어나다 했다. 
 
이 친구는 해가 바뀌면 아예 업무는 작파하고, 몇 백 통의 안부 전화를 하느라 조금 과장하자면 한나절을 쓰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닌 마당에, 일은 젖혀 놓고 전화기를 붙들고 종일 껄껄 거리며 허튼 소리나 하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전화 한 통이 누군가를 가슴 벅차게 하는 일인지 몰랐던 셈이다. 이제는 다르다. 후배든, 친구든, 제자든 전화로라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주니 고맙다. 잊히지 않은 존재라는 것이 어쨌든 든든하다.
 
해가 바뀌었다. 어떤 이는 새해 안부 전화가 상투적이고 무례한 일이라고도 하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단체 발송 메시지 아닌 이상 전화 한 통의 힘은 만만치 않다. 열심히 전화질을 해야겠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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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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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진

[김성희의 천일서화]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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