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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암호화폐 시장, 거품은 빼고 혁신의 싹은 살려야

중앙일보 2018.01.15 01:51 종합 30면 지면보기
암호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어제 17만 명을 넘어섰다. 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서면 암호화폐 규제와 관련한 청와대의 공식 언급이 나올 것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쇄 검토 발언 이후 암호화폐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더 커져 버렸다. 암호화폐 열풍을 주도하는 20~30대가 현 정부의 핵심 지지층이란 점에서 정권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과는 별개로 과열된 암호화폐 투자 열기는 식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 대체로 합의된 인식이다. 완만한 속도로 거품을 빼지 못하고 폭락사태가 오면 정치적 부담은 고스란히 정부가 떠안게 된다.
 
이런 우려 때문에 정부의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 어제 금융위원회는 암호화폐 거래자의 실명 확인 등의 대책을 추가 발표했다. 실명 거래가 이뤄지면 청소년과 외국인 투자를 걸러낼 수 있고, 과세 기초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암호화폐의 투자 수익에 대해 어떤 형태의 세금을 매길지도 정책의 고민거리다. 모두 지나친 투자 열기를 식히기 위한 방안들이다.
 
하지만 정책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암호화폐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아직까지 암호화폐가 제도권 내 법정 통화가 아니라는 점만 강조할 뿐 다른 법적 성격은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결제 수단으로서 암호화폐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거래소에 등록제도를 도입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암호화폐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양도소득세가 맞을지, 부가가치세나 거래세가 옳을지도 혼란스럽다.
 
과열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섣부른 정책을 꺼냈다가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블록체인 기술까지 묻혀 버릴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새겨 들어야 한다. 암호화폐는 정부가 함부로 ‘범죄시’하고 거래소 폐쇄를 운운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사안이다. 암호화폐의 등장 배경에는 지속적으로 가치가 하락한 법정 화폐에 대한 반감과 화폐의 본질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어 선진국들마다 대응책을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암호화폐의 유용성 역시 아직 검증 단계다. 그런 만큼 과도한 규제는 차세대 인터넷 경쟁의 핵심인 블록체인 기술의 싹을 자를 수 있다.
 
암호화폐의 성격이나 규제 필요성을 두고 전문가·비전문가들의 백가쟁명식 논의가 오가면서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현재로선 질서 있는 출구전략을 통해 투기 광풍은 잠재우면서 시장을 연착륙시키는 게 중요하다. 당국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허가 문제부터 불공정 거래의 모니터링, 보고 의무사항, 외환 관련 관리 업무 등을 한시바삐 정비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이런 사항들은 외면한 채 내부 조율을 거치지 않은 설익은 대응책들만 쏟아내니 한국이 세계 최고의 널뛰기 시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미 암호화폐는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예민한 시장이 돼 버렸다. 거래소 폐쇄 같은 초강수 조치는 이런 치밀한 연구 끝에 조심스럽게 결정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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