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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날려버리는 식물을 처방해 드립니다"

중앙일보 2018.01.14 00:01
실험용 비커에 선인장을 심는다. 뚜껑 달린 유리병 안에 푸른 이끼를 깔고 동물 인형을 넣어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한 장면을 만든다. 새로운 가드닝 작품으로 눈길을 끈 ‘슬로우 파마씨’(slow Pharmacy)가 만드는 작품 이야기다. 슬로우 파마씨는 이구름·정우성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조경회사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일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실은 식물을 소재로 삼은 디자인 회사에 가깝다. 화분은 물론이고 전에 보지 못한 디자인의 초록 공간을 꾸미고, 매장을 여는 대신 1년에 4번씩 팝업스토어를 열어 자신의 새로운 디자인과 상품을 선보이니 말이다. 식물을 이용해 내놓는 이들의 독특한 상품과 공간 구성은 요즘 '트렌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많은 화장품·패션 브랜드와 카페, 대형 프렌차이즈 외식업체, 심지어는 서울시에서까지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한파로 얼어버린 겨울, 이들의 초록 식물이 가득한 내곡동 화훼단지에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슬로우 파마씨의 정우성(왼쪽) 실장과 이구름 대표 부부. 식물을 보관하고 키우는 내곡동 화훼단지 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오종택 기자

슬로우 파마씨의 정우성(왼쪽) 실장과 이구름 대표 부부. 식물을 보관하고 키우는 내곡동 화훼단지 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오종택 기자

 
이름이 특이하다. ‘슬로우 파마씨’란 어떤 의미인가.  
이구름(이하 이)  ‘식물을 처방한다’는 컨셉트로 이름을 지었다. 스트레스가 많은 시대이다 보니, 약으로 몸을 낫게 하는 약국처럼 식물로 마음을 낫게 해줄 수 있는 곳이란 의미를 담았다. 실제로 2015년 처음 브랜드를 만들 당시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그때마다 초록색 식물이 자라는 걸 보면 힐링이 됐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약’이 필요하겠단 생각에 시작한 일이다.  
 
비커에 심은 선인장, 병 속에 넣은 이끼 등 독특한 화분으로 화제가 됐다.
 어릴 때부터 비커나 현미경 같은 과학 실험 기구에 관심이 많았다. 어른이 돼서도 돈이 생기면 종로에 가서 자주 비커·삼각플라스크를 사서 모으곤 했는데, 키우던 식물을 담아보니 너무 예쁘더라. 힐링, 치유 컨셉트와도 너무 잘 어울렸다. 특히 이끼는 내가 제안하고 싶었던 ‘천천히 침착하게 살아가는 라이프 스타일’을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식물이라 선택했다. 이끼는 생명력이 강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조용히 잘 자라줘서 조용히 묵묵하게 내 옆을 지켜주는 ‘의리 있는 식물’이라고 불린다.
 
디자인 감각이 남다른 것 같다.  
정우성(이하 정)  전에 하던 일이 가드닝에도 영향을 준거다. 아내(이구름)는 광고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나는 애니메이션 작화와 연출을 했다. 둘 다 큰 의미에서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보니 자연히 식물 하나를 보여주더라도 디자인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공간과 이 식물이 어울리는지,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디자인 취향은 무엇인지를 먼저 충분히 따져보고난 후에야 작업이 이루어진다.  
비커에 심은 슬로우 파마씨의 선인장. 2015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선보인 형태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비커에 심은 슬로우 파마씨의 선인장. 2015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선보인 형태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이끼와 작은 동물 인형을 넣어 만든 테라리움. 슬로우파마씨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만 판매한다. 가격은 2만~3만원 선. 완제품 외에도 DIY 키트나 자신이 원하는 동물 인형을 선택할 수 있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이끼와 작은 동물 인형을 넣어 만든 테라리움. 슬로우파마씨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만 판매한다. 가격은 2만~3만원 선. 완제품 외에도 DIY 키트나 자신이 원하는 동물 인형을 선택할 수 있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이들은 다른 조경회사가 하지 않은 일을 많이 한다. 유명세를 얻은 비커 선인장과 이끼 테라리움 등 식물 작품들은 온라인으로만 팔고, 겨울엔 식물을 이용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판다. 오프라인 매장을 만드는 대신 1년에 네 차례씩 팝업스토어를 연다. 지난해 10월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열었던 팝업 스토어 '슬로우 마트'에서는 식물을 슈퍼마켓 상품처럼 포장해 팔기도 하고, 6월 한남동에 연 '에어 컨테이너'에서는 컨테이너 하나 가득 식물을 채우고 신선한 공기와 물을 나눠주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상품을 파는 팝업스토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새로운 식물 작품과 디자인을 선보이는 전시의 성격이 강하다.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설치 작업량 또한 상당하다. '네이버 랩스'의 휴게공간과 이니스프리·배스킨라빈스 브라운청담 매장 내부를 꾸몄고 맥주 스텔라 아르투아, 패션 브랜드 루이까또즈·에잇세컨즈, 화장품 브랜드 키엘·프리메라 등과 협업 이벤트를 함께 했다.   

 
많은 브랜드의 일을 많이 하는 조경회사로 알려져 있다. 비결이 있나.
  뻔하지 않은 아이디어다. 업체와의 첫 번째 전화 통화에서부터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몇 가지를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게 현실 가능한 것이든 아니든 ‘재미있겠다’ 싶은 것이면 다 제안해본다. 그러면 상대측에서 그게 아무리 황당한 아이디어라도 ‘신선하다’며 ‘뭐든 같이 해보자’고 하더라. 물론 그 후 밤을 새워 자료조사를 하고 아이디어를 짜서 기획안을 제대로 만든다. 컨셉트부터 포토샵 가상 시뮬레이션까지 대강 하는 건 없다.  
 
이  아이디어도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해서 다른 곳에서는 하지 않을 법한 것만 낸다. 예컨대 네이버랩스의 미팅룸과 휴게공간의 경우, 공간마다 다른 컨셉트로 다르게 디자인하고 식물도 컨셉트와 의미를 맞춰 선별해 사용했다. 공간별로 식물 배치 방식이나 집기도 다 다르게 구성했다. 가운데 공간엔 식물을 사각 프레임 안에 모아 넣는다면 이쪽 미팅룸에는 벽 안에 화병을 파묻는 식이다. 
지난해 12월 한정판으로 출시한 슬로우 파마씨의 카드. 작은 식물의 잎과 열매를 이용해 귀여운 루돌프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지난해 12월 한정판으로 출시한 슬로우 파마씨의 카드. 작은 식물의 잎과 열매를 이용해 귀여운 루돌프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지난 2017년 6월 진행한 슬로우 파마씨의 팝업 스토어 '에어 컨테이너'. 방문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넣은 공기팩을 나눠줬다(오른쪽). [사진 슬로우 파마씨]

지난 2017년 6월 진행한 슬로우 파마씨의 팝업 스토어 '에어 컨테이너'. 방문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넣은 공기팩을 나눠줬다(오른쪽). [사진 슬로우 파마씨]

패션 브랜드 루이까또즈의 매장을 장식한 협업 작품. [사진 슬로우 파마씨]

패션 브랜드 루이까또즈의 매장을 장식한 협업 작품. [사진 슬로우 파마씨]

화장품 브랜드 프리메라의 매장을 꾸미고 있는 모습. [사진 슬로우 파마씨]

화장품 브랜드 프리메라의 매장을 꾸미고 있는 모습. [사진 슬로우 파마씨]

네이버 랩스의 초록색 휴게공간 역시 슬로우 파머씨의 작품이다. [사진 네이버랩스]

네이버 랩스의 초록색 휴게공간 역시 슬로우 파머씨의 작품이다. [사진 네이버랩스]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버스정류장 광고. 초록색 잎으로 주위를 채워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버스정류장 광고. 초록색 잎으로 주위를 채워 환상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집이나 사무공간에 초록 공간을 만들고 싶을 때 첫 시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 없다면 우선 화분 한 개만 들여놓기를 권한다. 일단 하나를 키워보고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때 추가하는 게 낫다. 단 식물을 고를 때는 신중하게 많이 찾아봤으면 좋겠다. 마치 가구를 사듯이 말이다.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는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지,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는지 등을 다 고려해서 말이다.
 
식물은 어떤 걸 선택해야 하나.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에 따라 다르게 선택하는 게 좋다. 예컨대 잦은 야근으로 집에 늦게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다육식물이나 잎이 비교적 딱딱한 식물을 골라야 한다. 공기 정화와 초록색 느낌이 많이 나길 원한다면 잎이 큰 식물 중 몬스테라나 야자류를 선택하면 실패가 없다. 슬로우 파마씨를 처음 만들 때 보여준 테라리움에 사용한 이끼도 좋다. 생명력이 강해 매일 물만 잘 주면 쉽게 죽지 않고 잘 자란다.
 
세련된 그린 공간을 꾸미려면 어떻게 놓느냐도 중요할 텐데. 
 결국 취향의 문제다. 이럴 땐 이렇게 하라-는 식의 정해진 답은 없지만, 우리는 주로 식물을 놓기 전에 먼저 공간을 분석한다. 집에서 어떤 부분이 허전한지, 식물을 놓았을 때 가장 돋보이고 안정감이 느껴질 곳은 어디인지를 찾아보고 그 후에 식물 크기와 종류를 정한다. 마치 미술 작품을 전시하듯이 말이다. 요즘은 큰 나무 하나나 두 개를 여유 있는 공간에 들여놓는 것이 세련돼 보인다. 이끼나 다육식물을 키운다면 벽 찬장이나 선반에 작은 것 여러 개를 올리거나 아래로 쳐지는 길이감 있는 식물을 함께 놔 초록색 벽 느낌이 나게 하는 것도 좋다. 식물 기르기가 자신 없다면, 보존액에 담은 말린 식물 표본들을 창가에 여러 개 늘어놔 보는 것도 좋겠다.  
 
집에 기르고 있는 화분을 세련되게 연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식물 하나만으로 멋을 내기보다는 주변에 함께 둬서 분위기가 사는 가구나 소품을 함께 배치하면 쉬워진다. 오래된 빈티지 가구나 소품은 무엇이든 잘 어울린다. 식물을 담는 화분에 변화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뻔한 도자기 화분 대신에 거친 느낌의 토기 화분을 쓰거나, 라탄 바구니나 성글게 짠 마 포대 주머니로 화분을 감싸 놓아도 예쁘다.  
 
앞으로 계획은.
  날씨가 좋은 4~5월쯤 공공 장소를 어느 곳이라도 멋진 식물 공간으로 꾸며보고 싶다. 누구라도 걸어가다가 잠시 쉬면서 싱그러운 식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여러 종류의 식물을 채우는 것보다 식물 하나하나의 모습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존재감 있는 한 두개의 큰 식물을 배치하는 것도 세련된 방법이다. 이때는 반드시 공간을 여유 있게 잡아야 식물이 돋보인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여러 종류의 식물을 채우는 것보다 식물 하나하나의 모습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존재감 있는 한 두개의 큰 식물을 배치하는 것도 세련된 방법이다. 이때는 반드시 공간을 여유 있게 잡아야 식물이 돋보인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식물 옆에 빈티지 소품이나 가구를 함께 놓는 것도 아름다운 초록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식물 옆에 빈티지 소품이나 가구를 함께 놓는 것도 아름다운 초록 공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식물을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 보존액에 담긴 식물 몇 개를 창가나 책상에 올려놓아도 그린 인테리어가 완성된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식물을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 보존액에 담긴 식물 몇 개를 창가나 책상에 올려놓아도 그린 인테리어가 완성된다. [사진 슬로우 파마씨]

책장이나 철재 장 위에 작은 다육식물을 총총 모아 놓고 줄기가 길게 늘어지는 식물들을 걸어 놓으면 집안의 정원이 꾸며진다. [사진 슬로우파마씨]

책장이나 철재 장 위에 작은 다육식물을 총총 모아 놓고 줄기가 길게 늘어지는 식물들을 걸어 놓으면 집안의 정원이 꾸며진다. [사진 슬로우파마씨]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oh.jongta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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