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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관료 보신주의 걷어내야 암호화폐 사태 수습할 수 있다

중앙일보 2018.01.13 01:36 종합 26면 지면보기
국내 300만 투자자를 패닉에 빠뜨린 암호화폐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의 실명확인 서비스 도입을 위한 금융 당국의 현장 점검이 길어지고, 거래소 폐쇄 방침이 나왔다가 유보되면서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15일부터 기존 가상계좌 입금을 금지시키고, 빗썸 등 3개 거래소에 가상계좌 정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KB국민 등 다른 은행은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보고 실명제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는 등 대처가 지연되고 있다.
 

뜨거운 감자 서로 피하다 혼란 자초
매매 차익에 세금 매기는 과세 필요
글로벌 기준에서 관리체계 만들어야

이 같은 혼란은 정부 관료들의 보신주의와 무능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비공식 대화 채널인 기자 간담회를 통해 암호화폐 거래소를 없애는 법을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정부 내 조율이 끝나지 않은 발표로 드러났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련 당국이 면밀한 검토와 협의를 거쳤어야 할 사안을 박 장관이 덜컥 발표하는 바람에 대혼란을 자초한 것이다. 폐쇄 반대 청원이 폭주하자 청와대가 대여섯 시간 만에 박 장관의 발표가 확정된 내용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패닉은 일단 가라앉았다. 하지만 해결된 문제가 하나도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사태가 이 지경에 빠진 것은 주무 당국이 암호화폐 거래가 엄연한 현실인데도 아무런 대응체계를 만들어 놓지 않고 부처 간에 수건 돌리기만 해 온 탓이 크다. 국무조정실이 문제 대응을 총괄해 왔지만 뜨거운 감자라는 이유로 관료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실질적인 알맹이를 내놓지 못한 결과다. “화폐냐, 아니냐”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국내 암호화폐 가격은 해외 대비 30%나 더 치솟았다. 누가 봐도 투기와 거품이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관료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며 수수방관해 왔고, 아무런 비상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고 있다가 거래소를 폐쇄한다는 극약 처방을 덜컥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진작에 암호화폐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대응 체계를 마련했어야 했다. 암호화폐를 화폐로 보느냐 마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미국에서도 공식 화폐는 아니지만 시카고선물거래소가 투자상품이라는 상업적 판단에 따라 선물 거래 품목으로 받아들였다. 암호화폐를 가능하게 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4차 산업혁명의 한 축인 핀테크의 핵심기술이라는 점에서도 거래소를 무조건 폐쇄할 게 아니란 얘기다.
 
정부는 글로벌 기준보다 과도한 거품을 빼고 거래 투명 장치를 만들어 암호화폐 급변 사태에 대비하는 데 역할을 집중했어야 했다. 과세체계 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에 따라 매도 차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기재부는 면밀한 검토를 거쳐 올해 세법 개정에 반영해야 한다. 이같이 정부에서 할 일이 많은데도 관료들은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혼란을 차단하려면 냉정하고 체계적인 대응체계 마련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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