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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매년 엄청난 분량의 식량을 버리는 이유는

중앙일보 2018.01.11 16:08
혹시 일어날 지 모를 재해에 대비해 비상 식량을 비축해 둔다. 다행히 재해가 일어나지 않는다. 창고에 쌓아둔 음식의 유통기한이 다가온다. 이 음식들을 어찌할 것인가. 동일본 대지진, 구마모토(熊本) 지진 등을 겪은 일본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의 재해용 식품 비축량이 최근 6년 새 2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아사히 신문이 11일 보도했다. 비축량이 늘면서 유통기한이 다가온 음식물 폐기 문제가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재해 대비용 비축 식량 유통기한 맞아 폐기
2016년에만 44만9000끼 분량 버려
동일본지진 이후 식량 비축 1.8배 증가
일부 가축용으로 가공하지만 다 처리못해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당시 대피한 주민들이 음식을 배급 받고 있다. [지지통신]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당시 대피한 주민들이 음식을 배급 받고 있다. [지지통신]

 
아사히 신문이 최근 지자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재해 발생 시 피난민을 위한 비축 식량은 물과 즉석밥, 레토르트 죽, 빵이나 건빵, 크래커 등이었다. 재해 식량 비축 업무를 각 시나 구에 맡기는 7개 현을 제외한 전국 40개 도도부현의 2011년 비축 분량은 678만 6000끼였다. 2017년에는 1.8배 늘어난 총 1249만 7000끼로 파악됐다.
 
비축 식량이 급증한 배경에는 2011년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의 영향이 크다고 아사히는 분석했다. 2011년에 186만끼를 비축했던 도쿄(東京)시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 2012년부터 기존 2일 치에서 3일 치로 비축 분량을 늘렸다. 교토(京都)시도 2013년 새 비축 계획을 수립해 예상 피난민 29만 6000명의 음식뿐 아니라 자택에서 피난하는 6만여 명, 귀가 곤란자 12만 5000명의 식량을 추가로 비축했다. 
 
이처럼 재해 대비 식료품 비축이 늘면서 폐기해야 할 음식도 급증했다. 2016년에는 전국에서 재해용 비축 식량 총 44만 9000끼가 유통기한을 맞아 폐기됐다. 폐기량은 도쿄(20만끼), 오사카(7만7000끼), 시가현(7만 1000끼) 순이었다.
 
각 지자체는 지진 대피 훈련 등 관련 행사 때 음식을 나눠주거나 가축의 먹이나 비료로 가공해 활용하기도 한다. 관공서 창고에 쌓이는 음식을 줄이는 또 다른 방법은 민간 기업과 계약을 맺고 재해 발생시 식량을 제공 받는 ‘유통 비축’이다. 비축 식량의 절반 가량만 예산으로 구입해 보관하고, 절반 정도는 재해가 발생하면 기업으로부터 즉시 식량을 제공 받는 방식이다. 
 
일본 오사카부가 창고에 쌓아둔 재해 대비 비상 식량들. 뜨거운 물에 바로 데워 먹을 수 있는 볶음밥이나 죽, 캔에 든 빵 등이다. [사진 오사카부 제공, 아사히 신문 홈페이지 캡처]

일본 오사카부가 창고에 쌓아둔 재해 대비 비상 식량들. 뜨거운 물에 바로 데워 먹을 수 있는 볶음밥이나 죽, 캔에 든 빵 등이다. [사진 오사카부 제공, 아사히 신문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이 방식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 지자체들의 설명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현의 경우 비상식량 전부를 ‘유통 비축’ 방식으로 공급하려 했지만, 원전 사고로 인해 업체들이 “후쿠시마로 배달을 가지 않겠다”고 거절해 낭패를 보기도 했다. 이후 약 9만 끼를 따로 비축해두고 있다. 
큰 지진 발생 때는 도로 등이 끊기기 때문에 지자체들은 일정 부분 자기 부담 비축을 해야 한다. 아오모리(靑森)현 관계자는 “도시와 달리 지방에서는 교통이 단절된 우려가 커 유통 비축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저소득층에 음식을 제공하는 ‘푸드뱅크’ 등과 협약을 맺고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비상 식량을 기부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건빵 같은 경우 평상시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적고, 2ℓ 짜리 물 등은 무거워 배포가 어렵다. 시즈오카(靜岡)시의 푸드뱅크 관계자는 “처분이 곤란한 것을 억지로 떠맡기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 자선 단체의 대표도 “우리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배가 고프니 뭐라도 먹어라’고 강요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 푸드뱅크인 도쿄 ‘세컨드 하비스트 재팬’의 다나카 이루마 매니저는 “관공서나 기업이 비축 식량 처분에 고민하는 한편, 생활이 곤란한 사람들이 식량을 제공 받을 곳은 적다. 비축 식량을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과정을 전국적으로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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