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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강남, 혼자 놀게 놔두라

중앙일보 2018.01.11 02:21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방향과 속도다. 경제는 특히 그렇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로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고 치자. 산술적으로는 시속 300㎞면 1시간 반 안에 도착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어느 운전자도 제정신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단속에 걸리거나 안전하지 않아서다. 부산 도착하기 전에, 셋 중 하나다. 차가 고장 나거나 경찰에 잡히거나 사고로 죽거나 다치거나다. 내기해도 좋다. 시속 300㎞로는 절대 부산까지 가지 못할 것이다. 시속 100㎞라면 시간은 조금 더 걸리겠지만 틀림없이 부산에 갈 수 있다. 경찰에 잡히지도 않고 안전하게.
 

배 아픈 문제만 풀려다간
배고픈 문제 못 풀 수도

다른 예도 있다. 강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빨리 스윙한다고 안타나 홈런을 칠 수는 없다. 되레 냅다 세 번 휘두르고 삼진 아웃되기 십상이다.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건 공의 구질과 방향을 아는 것이다. 오른쪽 구석에 떨어지는 볼에 왼쪽 위로 방망이를 휘두르면 결과는 보나 마나다.
 
연초부터 정부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상대는 시장이다. 방향과 속도가 안 맞으니 고전할 수밖에 없다. 올해 16.4%를 올린 최저임금은 시속 300㎞의 자동차 질주와 같다. 과속을 멈추지 않으면 결코 부산(소득주도 성장)까지 갈 수 없다. 무시하고 과속을 계속하면 셋 중 하나다. 570만 자영업자가 무너지거나 최하위 계층부터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거나 세금으로 퍼주느라 국가 재정이 거덜나거나다.
 
부동산 정책은 속도뿐 아니라 방향도 잘못 잡은 경우다. 정부는 세 가지 잘못된 신화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다. 첫째는 ‘강남 선도(先導)론’이다. ‘강남 아파트가 뛰면 강북→수도권→지방의 집값이 뛴다. 그러니 강남 집값부터 잡아야 한다’는 도그마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강남 집값과 지방 집값이 따로 움직인 지는 꽤 됐다. 강남 선도론을 믿고 지난 정부가 밀어붙인 ‘빚내서 집 사라’는 어찌 됐나. 가만 놔둬도 아픈 배를 더 아프게 만들고 끝났다. 잘못된 신화를 좇은 결과다. 이 정부도 마찬가지다. 강남 집값과 싸워 이긴들 잘해야 아픈 배만 조금 풀어줄 뿐, 주거 복지는 이룰 수 없다.
 
둘째는 강남 불패론이다. 강남은 진짜 불패인가.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 때 강남 3구 아파트 값은 6.7~12.7% 급락했다. 반면 당시 대구 등 지방 주택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공급이 늘어나거나 강북 등 대체재가 개발되거나 지난 정부 때 과도하게 오른 경우엔 강남도 하락했다. 그러니 강남 불패를 ‘학습효과’라며 믿고 버티는 이들이나 강남 불패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이번엔 꼭 손보겠다는 정부나 근거 없는 미신 좇기는 마찬가지다.
 
셋째는 강남 망국론이다. 강남 집값이 오르면 양극화가 심해져 나라가 정말 망할까. 강남 3구 아파트는 약 30만 호다. 전국 주택의 2% 정도다. 혼자 놀게 놔두면 그만이다. 뉴욕·홍콩·상하이·도쿄의 도심 고가 주택이 그렇듯이 강남 아파트는 이미 희귀재·고급재·자본재요, 사치재가 됐다. 삼성전자 주가가 200만원을 넘은 것과 뭐가 다른가. 물론 배는 많이 아프다. 그럴수록 부자들에겐 신경 끄고 가난한 사람 주거복지에 힘쓰는 게 맞는 방향이다.
 
정부도 요즘 보유세를 놓고 고민이 많다고 한다. 그런 고민에 앞서 방향부터 정해야 한다. 목표가 ‘때려잡자 강남’인지 서민 주거 안정인지, 배고픈 거 해소인지 배 아픈 거 앙갚음인지. 방향이 틀리면 아무리 좋은 스윙이라도 안타를 칠 수 없다. 지금처럼 강남 집값만 또 띄워주고 말 것이다. 자칫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청와대에 다주택, 강남좌파가 많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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