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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협상불패’ 북한을 다루는 방식

중앙일보 2018.01.11 02:17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북한은 협상불패다. 평양의 외교협상력은 체제의 자산이다. 그들은 감성적 언어로 기선을 잡으려 한다. 9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그 면모가 드러났다. 북측 단장인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이런 말로 시작했다. “민심과 대세가 합쳐지면 천심이라고 했다.”
 

북한 대표의 능청맞은 ‘천심론’
우아한 공세적 언어로 접근해
남북회담, 압박의 일관성 효과
문대통령은 “트럼프 공이 크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문 닫아도
투지·주인의식으로 뚫어야

민심과 천심(天心)-. 북한 통치의 추악한 요소는 공포와 주민학대다. 그의 말은 북한 사회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이선권은 천연덕스럽다. 그는 ‘민심의 열망’을 읊어댔다. 그 장면에선 우스꽝스러운 배우 같았다. 하지만 그는 도덕적 대사를 능청맞게 소화했다. 그 말은 남한 사회를 겨냥한 것이다. 그것은 우아하면서 공세적 언어들이다. 그것으로 남한 내부의 경계심을 헝클어뜨리려 했다.
 
북한의 대화 무대 복귀에는 자신감과 불안감이 얽혀 있다. 자신감은 김정은의 ‘핵 무력 완성’에서 나왔을 것이다. 젊은 지도자는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 있는 핵 강국”이라고 주장한다(신년사). 불안감은 국제사회의 제재·압박 때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북대화는 좋은 일, 내가 강력하게 압박한 덕분”이라고 했다. 그것은 정책의 일관성 효과다. 간결과 일관성은 복선과 변칙을 깬다.
 
문재인 대통령도 10일 기자회견에서 그 효력을 인정했다. “(회담 성사에) 트럼프 대통령의 공은 매우 크다.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것으로 북한의 한·미동맹 이간책은 흔들린다.
 
트럼프는 북한의 협상술을 주시한다. 그의 지적은 실감난다. “지난 25년간 미국은 북한에 수십억 달러만 주고 얻은 것이 없다. ···북한은 미국 협상가들을 바보(fool)로 만들었다.” 그 ‘바보 짓’의 상징은 크리스토퍼 힐(2007년 국무부 차관보)이다. 사례는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자금(2500만 달러) 동결 해제다. 그 돈은 김정일의 통치비자금이었다.
 
그 시절 북한 외무성 부상(副相) 김계관과 힐이 마주 앉았다. 김계관의 협상술은 교묘하고 다양했다. 수법은 의제의 교란과 흐리기, 진실 왜곡, 상대방의 조급성 자극, 피로감 생산이다. 여기에 기습과 파격, 기만과 벼랑 끝 전술을 섞는다. 최후의 풍경은 먹튀(welsher)다. 힐은 미국의 간판 협상가였다. BDA 제재는 북한을 조이는 결정타로 작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힐은 김계관의 솜씨에 형편없이 당했다. 김정일 비자금은 어설프게 풀렸다.
 
박보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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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표 이선권은 “우리가 보유한 원자탄·수소탄·대륙간 탄도로켓 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상투적이고 기만적이다. 북한의 핵 협박은 섬뜩하다. 대다수 남한 국민의 뇌리에 박혀 있다. 북한은 “무자비한 핵 선제타격으로 서울을 초토화시키겠다(2016년 10월 노동신문)”고 했다. 문 대통령의 10일 언급은 명쾌한 반박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해 위협을 느끼는 것도 한국과 미국은 마찬가지다.”
 
북한은 남북대화의 영역·대상을 제한한다. 이선권의 발언에 그 의도가 담겼다. 핵 문제 해결은 미국과의 담판 소재라는 것이다. 한국은 핵 문제에 끼지 말라는 뜻이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협상 의지·원칙과 충돌한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북핵 문제 해결과 함께 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김정은의 핵무장은 실전배치 단계에 와 있다. 그것은 악몽의 시나리오다. 김정은 정권은 핵 포기를 권력 붕괴로 인식한다. 비핵화의 전 단계는 동결이다. 과거 북한은 국제사회와의 동결 약속을 여러 번 어겼다. 동결의 이행과 확인도 어렵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평화의 깃발을 단다. 북한은 대규모 대표단을 보낸다. 북한은 ‘우리 민족끼리’를 남발할 것이다. 남남 갈등을 키우려는 의도다. 평창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거품이 빠진 상태에서 남북대화가 전개된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 독점 상황이다. 한국은 핵이 없다. 핵무장국과 비핵국가의 대좌-. 국제 질서의 작동요소는 힘이다. 균형 있는 대화의 전제조건이다. 조명균 통일장관의 협상팀은 핵 없는 비애를 맛볼 것이다.
 
목표를 축소해선 안 된다. 문 대통령의 자세는 이처럼 선명하다. “한반도 비핵화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본 입장이다.” 비핵화는 북한 협상력의 불패 기록을 깨는 과정이다. 투지와 주인의식이 절대요건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한국 문제다. 한민족의 운명, 미래세대의 장래가 걸려 있다. 미국·중국이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없다. 미국이 혼자 나서면 북한에 당한다. 같은 민족 남한이 북한의 행태와 노림수를 잘 안다. 북한은 북핵 협상의 문을 잠글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뚫어야 한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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