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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를 포도송이 만든 일본의 ‘거봉 선생’

중앙일보 2018.01.11 01:13 종합 19면 지면보기
다음 달 LG배 결승전을 치르는 일본 랭킹 1위 이야마 유타 9단. 그는 가장 존경하는 프로기사로 조치훈 9단을 꼽았다. [사진 일본기원]

다음 달 LG배 결승전을 치르는 일본 랭킹 1위 이야마 유타 9단. 그는 가장 존경하는 프로기사로 조치훈 9단을 꼽았다. [사진 일본기원]

“일본이 오랫동안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내지 못한 만큼 이번에 꼭 우승하고 싶습니다.”
 

LG배 결승 앞둔 이야마 9단 인터뷰
다음 달 셰얼하오 5단과 3번기 격돌
2016년 일본 최초 7대 기전 석권
가장 존경하는 기사는 조치훈 9단

제22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을 앞둔 일본 랭킹 1위 이야마 유타(井山裕太·29) 9단의 각오는 비장했다. 이야마 9단은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결승전 상대인 중국의 셰얼하오 5단과는 이번에 처음 두는 것이라 상대의 기보를 연구하며 준비하고 있다”며 “전력을 다해 대국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승전은 다음 달 5일부터 일본에서 3번기로 열린다.
 
이야마 9단은 지난해 11월 준결승전에서 세계 최강자인 중국의 커제 9단을 누르고 결승에 올랐다. 일본 선수가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한 것은 11년 만의 일이다. 결승전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크지 않을까. 이에 대해 이야마 9단은 “특별히 부담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결승에 진출하면서 ‘큰 관문을 하나 통과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야먀 9단은 일본 바둑계가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려온 인물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일본 바둑은 세계 무대를 호령했다. 하지만 세대교체에 실패하면서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런 가운데 등장한 일본 바둑의 희망이 이야마 9단이다.
 
조치훈

조치훈

어려서부터 바둑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이야마 9단은, 여느 일본 기사들과 달리 인터넷 바둑을 통해 성장했다. 그는 “내가 바둑을 배울 때만 해도 인터넷 대국이 활성화되기 전이었다. 그런데 스승님(이시이쿠니오 9단) 댁이 너무 멀어서 어쩔 수 없이 스승님과 인터넷 바둑을 많이 뒀다”며 “인터넷 대국을 통한 경험이 기력 성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13살이던 2002년 입단한 이야마 9단은 20살이던 2009년 최연소 ‘명인’이 됐다. 2013년에는 한 해 동안 6관왕에 등극하는 등 일본 7대 기전을 모두 우승했다. 2016년에는 일본 바둑 사상 처음 7대 기전을 석권하고, 총리대신 현창(일본 정부 최고 영예상)을 받은 첫 일본 기사가 됐다.
 
이야마 9단은 2016년 말, 구글의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 마스터’와 비공식 대국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한국 바둑 팬들은 그에게 ‘거봉 선생’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가 알파고 바둑을 포도송이 모양으로 만들어 곤경에 빠트린 데서 나온 별명이다. 결국 패했지만, 이 대국은 인간이 알파고 마스터와 맞붙은 60판 중 가장 잘 싸운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야마 9단은 “내게 그런 별명이 붙은 줄 몰랐는데 기분 좋다. 별명을 붙여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한다”며 “알파고 마스터와 대국은 초반에는 복잡했는데 나중에는 잘 풀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판 전체로 보면 알파고의 대세관에 내가 미치지 못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새해 목표를 물어봤다. 이야마 9단은 “세계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자국 기전을 석권하면서도 세계대회에선 힘을 쓰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는 대답이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그의 세계대회 본선 성적은 60전 30승 30패, ‘반타작’이다. 최고 성적은 2011년 후지쯔배 3위다. 그는 “올해는 세계대회에 최대한 많이 출전해서 하나 이상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존경하는 프로기사로 조치훈 9단을 꼽은 이야마 9단은 “연구생 시절, 조치훈 선생님의 강한 대국 자세가 인상 깊었다”며 “아직도 선수도 뛰면서 오랜 기간 일선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향후 세계 바둑 판도에 대해선 “당분간은 일류 기사의 층이 두꺼운 중국이 앞서나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젠가는 과거 한국과 중국을 압도했던 일본 바둑이 부활할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 섞인 전망을 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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