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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결정 과정, 너무 정치화된 게 문제”

중앙일보 2018.01.11 00:02 경제 8면 지면보기
‘직원 해고하고, 기계로 대체하고, 하도급 업체에 떠넘기고….’
 

전문가 5인 긴급 진단과 제언
하위층 소득 낮아 인상은 필요
정치권이 “1만원으로” 주장하면
여과 없이 정책화돼서는 안 돼
불로소득 과세로 빈부격차 줄여야

소득이 낮은 계층의 급여를 올려주자는 선의에서 출발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오히려 그들에게 독이 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고, 수조원대 나랏돈(일자리 안정기금)을 투입하겠다고 팔을 걷어부치고 있지만 부작용을 해소하긴 역부족이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왜 꼬였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빈부격차 해소의 필요성에 대해선 대부분 동의했다.
 
최저임금과 인상률

최저임금과 인상률

최저임금위원회 전문가 태스크포스에 참여했던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96년 이후 노동소득 분배율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계층 중 상위 30%의 임금은 늘어났는데 하위 70%의 임금은 10년간 거의 제자리”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극빈층의 노동시장 진입율이 가장 낮은 이유가 저임금 때문”이라며 “다만 그 해법이 한번에 최저임금을 16.5% 인상하는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실패의 원인에 대해 법무법인 테크앤로의 구태언 변호사는 18세기 영국의 ‘스핀햄랜드법’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번 논란은 실패한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채 되풀이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1795년 영국은 지주들이 노동자에게 무조건 빵 1갤런 값에 맞먹는 돈을 매주 지급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부양가족이 있으면 그 숫자만큼을 곱해서 주도록 했다.
 
구 변호사는 “실업 구제와 사회 안정이라는 목적으로 도입된 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세금을 투입하자 결과적으로 가난한 계층이 세금 부담에 짓눌리는 문제가 생겼고 최저수입을 보장하면서 노동자들이 일을 안하는 문제도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30여년을 존속하다 끝내 폐지된 이 법안은 정부의 선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효율성과 공평성이 균형을 잃으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저임금은 직접 규제를 통해 공평성이라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매우 진보적”이라며 “다만 공평성 달성에도 여러 방법이 있는데 영국의 생활임금제도처럼 최저임금의 부담을 분산하고 복지제도를 세련화하는 고민이 부족했던 점이 아쉽다”고 분석했다.
 
최저임금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평균 7~8%씩 꾸준히 올랐다. 이번 정부 들어 크게 이슈가 된 데에는 인상률도 높지만 과도하게 정치이슈화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근 유럽에서는 최저임금 정책의 의미가 줄어들고 있는데 한국에선 그렇지 않다”며 “그 이유가 최저임금 결정 과정이 너무나 정치화돼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선진국에선 정치의 열기에서 최저임금을 어떻게 분리할 것이냐를 고민하는데 우리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며 “아무런 근거도 없이 ‘1만원’이라고 들고나오면 여과 없이 정책 목표로 굳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최저임금 인상에 과도한 부담을 지울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복지제도와 함께 놓고 고민하라는 조언이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했다. 부동산의 양도소득이나 금융소득처럼 빈부격차를 벌어지게 하는 근본 원인, 즉 자본(자산)이 부를 낳는 부분에 핀셋 과세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를 보유세와 혼동해선 안 된다”며 “보유 자체는 소득을 만들어내지 못하므로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논쟁은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진행 중이다.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경기 불황에 대처하려고 시중에 돈을 왕창 풀었다. 하지만 일자리는 생기지 않고 부동산 등 자산 가격만 오르는 문제가 생겼다. 심화하는 양극화를 막을 수단으로 ‘최저임금 인상’ 카드가 부상한 것이다. 한국의 최저임금 7530원은 절대 금액만 비교하면,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보다 낮은 수준이다. 원화로 환산한 최저임금은 미국과 일본이 각각 8145원, 8200원이다. 하지만 해외의 최저임금에는 숙식비 등 현물급여가 포함된 경우가 많다. 상여금·숙식비를 최저임금에서 제외하는 한국과 나란히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전체 근로자의 중간수준 임금(중위임금)에서 최저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따지면 한국은 2015년 기준으로 48.4%로 OECD 평균(50.7%)에는 못 미쳤다. 그러나 올해 인상분을 반영하면 63.2%까지 오르면 단숨에 가장 높은 수준이 된다.
 
박태희·김도년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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