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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중심 예능판에 뜨겁게 빛나는 '작은 공' 박나래

중앙일보 2018.01.10 16:51
10일 서울 서교동에서 '웰컴 나래바!' 출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 JDB엔터테인먼트]

10일 서울 서교동에서 '웰컴 나래바!' 출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사진 JDB엔터테인먼트]

신장 149㎝의 거인 박나래가 또 한 번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 대세 예능인과 EDM 음악 DJ에 이어 이번엔 에세이 작가로 변신했다.
 
 그가 지난달 22일 펴낸 ‘웰컴 나래바!’의 출간 기자간담회가 10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렸다. ‘웰컴 나래바!’에는 박나래의 평소 신념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노는 방법, 지금의 박나래가 있기까지 과정과 생각이 짤막하게 담겼다. 일관된 주제 없이 에세이, 게임 방법, 요리 레시피, 박나래의 분장 사진 등이 제멋대로 배치돼 가볍고 생경한 책이지만, 그간 박나래가 보여왔던 ‘좌충우돌’, ‘천방지축’ 캐릭터와는 묘하게 맞닿는 데가 있다.
 
박나래가 낸 책 '웰컴 나래바!' 표지

박나래가 낸 책 '웰컴 나래바!' 표지

 박나래는 "처음 출판 제안을 받았을 때 '에세이는 멋있고 잘난 사람이 쓰는 건데 나는 잘난 게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하고 싶은 얘기를 편하게 쓰면 된다고 해 많은 분이 사랑해주시는 '나래바'에 얽힌 내 이야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나래바(bar)'는 그의 집 한편에 바 형태로 꾸며진 공간이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박나래는 이곳에 지인을 초대해 직접 준비한 술과 음식을 대접해왔다. 박나래는 “돈 못 벌던 무명 시절, 수없이 많이 얻어먹었던 선배 동기들에게 신세를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박나래의 무명 생활은 길었다. 2006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박나래가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2015년 tvN ‘코미디빅리그’에서 통아저씨와 영화배우 마동석, 이병헌 등을 분장해 이목을 끌었고, 같은 해 9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입담과 재주를 선보이며 ‘대박’을 터뜨렸다. 여기서 나래바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
 
박나래의 끼는 나래바로 초대된 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 나래바로 친해진 연예인들과의 에피소드와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박나래 전성시대’를 열었다. 책 '웰컴 나래바!'에도 나래바의 단골손님과 다녀간 사람, 나래바 안주가 사진과 함께 담겨있다. 박나래는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2015년 여자 신인상에 이어 2016년 여자 우수상을 받으며 한 단계씩 입지를 다졌고, 지난해에는 여자 최우수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대상 후보에도 이름에 올려 MBC에 8년만에 등장한 여성 후보가 됐다. 지난해 제5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예능상 역시 그에게 돌아갔다. 지난 한 해 그는 MBC ‘나혼자 산다’, tvN ‘짠내투어’, SBS ‘내방 안내서’, 웹예능 ‘박나래의 복붙쇼’ 등 다양한 채널과 매체로 부단히 활약했다. 
오혁으로 분장한 박나래(오른쪽)와 오혁. [사진 박나래 인스타그램]

오혁으로 분장한 박나래(오른쪽)와 오혁. [사진 박나래 인스타그램]

 
 박나래의 활약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그 자체로 남성 중심적인 한국 예능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숙이 “어디 남자가 아침부터 인상을 쓰느냐”며 기존 질서에 대거리해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박나래는 예능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망가짐’을 그 누구보다 극단적으로 해내며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다. 뱃살이 있어도 비키니를 입었고, 술주정을 부리다 동료에게 김치로 맞은 이야기와 증거 사진을 가감 없이 공개했다. 개그맨 양세찬에게 차였던 과거는 웬만한 대중이 다 아는 이야기가 됐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코미디쇼에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 주목 받았던 박나래가 리얼리티 예능을 통해 선후배를 배려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중적인 호감을 얻게 됐다”며 “특히 꾸미거나 숨기는 대신 모든 걸 속 시원히 털어놓은 박나래는 리얼리티 예능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박나래는 자기 자신은 한없이 내려놓고 낮추면서도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는 독한 개그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주민으로 분장한 박나래 [사진 박나래의 복붙쇼]

박주민으로 분장한 박나래 [사진 박나래의 복붙쇼]

이날 간담회에서 박나래는 '개그우먼'이라는 단어 대신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썼다. 박나래는 ‘웰컴 나래바!'에서 "연예인이면 연예인이지, 꼭 여자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안에 여성다움을 바란다는 뜻이 있는데 나는 그 틀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박나래는 "여성 개그맨이 센 이야기로 웃겼을 때 '여자가 왜 이런 얘기를 해, 시집은 갈 수 있겠어'라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며"예전보다 편견들이 약화되면서 '박나래'도 주목을 해주는 것 같다. 앞으로도 에너지를 가진 지금처럼만 살아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세희 작가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주인공이 쏘아 올리고 싶어 했던 희망처럼, 박나래는 그 자체로 남성 중심의 예능판에 쏘아 올려진 작은 공이 아닐까.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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