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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선권, 선 굵지만 논리 부족 … 엄포엔 조곤조곤 대응을”

중앙일보 2018.01.09 02:30 종합 8면 지면보기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8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며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논의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8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며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논의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남북 고위급 당국회담의 D데이가 다가왔다. 남북 양측은 9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만나 일합을 겨룬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해 양측이 마주 앉는 건 2015년 12월 이후 처음이며 문재인 정부의 첫 남북 회담이다. 향후 남북관계의 톤을 정하게 될 이번 회담 대표단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과거 남북 회담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문상균(예비역 육군 준장) 전 국방부 대변인, 문성묵(예비역 육군 준장)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가나다순) 등은 공히 “북한의 페이스에 끌려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남북 회담 선배 4인 ‘협상의 기술’

문상균 전 국방부 대변인
2011년 이선권 회담장 박찬 악연
투박하게 나올 가능성 대비해야

문성묵 국가전략연 통일전략센터장
평창이 북 ‘선전의 장’ 될 수 있어
단일팀·응원단은 의제 삼지 말아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미국 협조 없인 남북관계 발 묶여
통일부, 외교·국방부와 긴밀 협조를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끌려가면 북한이 ‘갑’될 가능성
필요 땐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나가야

문상균 전 국방부 대변인

문상균 전 국방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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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변인과 문 센터장은 특히 이번 회담의 북측 수석대표인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을 군사회담 테이블에서 직접 상대한 경험이 있다. 정 전 장관은 수석대표를 포함해 100여 차례 남북 회담에 관여한 베테랑이다. 천 전 수석은 2005년 6자회담 때 수석대표로 참여해 김계관과 힘겨루기를 했다.
 
문성묵 국가전략연 통일전략센터장

문성묵 국가전략연 통일전략센터장

◆‘원칙의 굴레’를 조심하라=1979년 3월 세계평양탁구선수권대회 개최를 한 달쯤 앞뒀을 때다. 남북 단일팀 구성을 의제로 판문점에 마주 앉은 남북 회담의 북측 대표가 대뜸 이렇게 제안했다. “유일팀(단일팀)이 되지 않으면 참가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부터 합의를 하고 회담을 시작하자.” 남측이 난색을 표하자 북측은 이번엔 시한을 못 박으며 그 시점까지 합의가 안 되면 결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원칙의 굴레’와 ‘시한의 굴레’다. 정 전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확실하다는 걸 세계에 보여주면서 회담하는 게 뭐가 나쁘냐’면서 남북관계 개선 원칙에 먼저 합의하자고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이후에 그 원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포장해 우리가 받기 어려운 문제를 묘하게 포장하는 어젠다 세팅을 할 수 있다”며 “이런 ‘원칙의 굴레’를 쓰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문 센터장도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문구는 같아도 남북이 생각하는 내용은 다르다”며 “우리의 입장을 단호하게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보자기 안에는 수많은 폭발물이 들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열의의 과잉’을 경계하라=이번 회담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지지가 있다는 점에서 북측 대표단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울 수 있다는 예상도 나왔다. 그럴수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문 센터장은 “1차 회담 분위기만큼은 북한이 김정은의 신년사를 강조하며 협조적으로 나올 것”이라며 “그러나 평창올림픽까지 시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만큼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실현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긴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천 전 수석도 “열의의 과잉을 경계해야 한다. 평화의 거품은 언제든 꺼질 수 있다”며 “이번 회담에서 많은 것을 이루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필요할 땐 ‘아님 말고’ 식으로 나가서 북한이 ‘갑’이 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천 전 수석은 특히 “회담 대표단에 지시를 내리는 청와대가 냉정함을 유지해야 하고 대표단은 입보다는 귀를 여는 것이 좋다”며 “이번은 남북이 만나서 채널을 복원했다는 정도로 그쳐도 성공이다”고 말했다.
 
◆이선권, 직선적이지만 논리력은 떨어져=문 전 대변인은 이번 북측 회담 수석대표인 이선권과 악연이 있다. 2011년 2월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문 전 대변인이 천안함·연평도 사건 재발 방지 확약을 요구했고, 당시 북측 카운터파트였던 이선권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문 전 대변인은 “이선권은 직선적이고 선이 굵다”며 “투박하게 엄포를 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 센터장도 “이선권은 논리력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설사 우리 측에 엄포를 놓더라도 휘말리지 말고 조곤조곤 논리로 대응하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평창에 집중하고 의제 확대는 피해야=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평창에 집중하라”고 입을 모았다. 회담 의제를 확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천 전 수석은 “북한이 평창에 참가하면서 ‘스틸 더 쇼(steal the show·모든 관심을 독차지)’를 하는 것은 다른 참가국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며 “우리가 북한의 평창 참가에 매달리는 만큼 그들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센터장도 “단일팀이나 응원단 등까지 의제가 넓어지면 자칫 평창이 북한 선전의 장이 될 수 있다”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특별 출전권을 부여하는 선수단 정도로만 논의를 한정해 진행하는 것도 협상의 기술”이라고 전했다. 정 전 장관은 이와 함께 이번 회담에서 통일·외교·국방부의 삼위일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한·미 간 협조가 안 되면 남북관계도 한 발짝도 진전하지 못하는 게 한반도의 숙명”이라며 “통일부가 회담 진행 과정에 있어서 외교부와 국방부와 긴밀하게 협조해야 한다. 이런 긴밀한 협조가 또한 북측과의 회담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청와대서 CCTV로 북 대표단 표정도 봐=판문점에서 열리는 남북 고위 당국 회담은 오전 10시에 시작한다. 북측 대표단은 회담 시작 직전인 9시30분쯤 군사분계선(MDL)을 도보로 통과해 평화의집으로 올 예정이다. 양측 대표단이 2층 회담장에 오면 수석대표가 모두발언을 한다. 주로 날씨 얘기나 덕담이 오간다. 진짜 회담은 취재진이 빠져나간 뒤부터다. 회담 대표들의 발언은 모두 양측 지휘부로 실시간 전송된다. 회담장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청와대와 남북 회담본부에서도 대표들의 표정까지 살필 수 있다. 오전 회의가 끝나면 남북이 각자 점심 식사를 한다. 점심 후 일정은 양측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협의한다. 양국 당국자는 “오후 회의를 몇 번 더 할지, 저녁 식사까지 할지, 야간에도 회담을 이어갈지 등은 현장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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