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87'로 방문객 는 남영동, 박종철 형 "시민사회가 운영했으면"

중앙일보 2018.01.09 02:00 종합 14면 지면보기
“남영동 이 담장 안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단다.”
 

영화 인기로 옛 대공분실 방문객 증가
5일 방문한 고 박종철 열사 형 박종부(60)씨
"동생 죽음 기억해주는 분들 많아 기뻐"
"기념관, 경찰 아닌 시민사회가 맡았으면"

지난 5일 오후 옛 치안본부 대공분실이었던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인권센터를 찾은 최계용(50)씨가 딸 최지아(17)양에게 말했다. 최씨는 “같은 세대지만 잊고 지내던 역사를, 영화 ‘1987’의 인기로 새삼 떠올리게 됐다”면서 “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이곳에 들렀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온 대학생 김영서(20ㆍ여)씨는 “근처에 살아서 이 건물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대공분실이었다는 것은 영화를 본 뒤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주목받는 가운데, 박 열사가 사망한 이 곳을 찾는 발길이 늘고 있다.  관리소 직원 A씨는 “영화가 나오기 전 하루 평균 15명 내외가 왔는데, 영화가 나온 뒤 방문객이 두 배 이상으로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대공분실은 현재는 경찰청 인권센터가 들어섰다. 5층 조사실 창문은 밖으로 뛰어내릴 수 없게 좁게 설계됐다. 여성국 기자.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대공분실은 현재는 경찰청 인권센터가 들어섰다. 5층 조사실 창문은 밖으로 뛰어내릴 수 없게 좁게 설계됐다. 여성국 기자.

1976년 지어진 남영동 대공분실은 유명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로, 70~80년대 대학생,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취조와 고문이 자행됐다. 2005년 7월 보안과가 이전하며 경찰은 이곳을 경찰청 인권센터로 조성, 인권보호센터와 과거사위원회가 입주했다. 2007년에는 아동ㆍ여성ㆍ장애인 경찰지원센터가 들어섰다.    
 
4층에는 박종철 기념관이 있다. 16개의 방으로 구성된 5층 조사실 복도와 고 박종철 열사가 물 고문을 당해 사망한 509호는 원형 그대로 보존돼있다.    
 
못 잊을 그날 "동생이 죽었는데 아무 것도 못해" 
남영동 옛 대공분실 4층 박종철 기념관에서 이야기하는 박종부(60)씨. 여성국 기자.

남영동 옛 대공분실 4층 박종철 기념관에서 이야기하는 박종부(60)씨. 여성국 기자.

이날 기념관을 찾는 방문객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고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60)씨다. 그는 입구에서 박종철 기념관을 설명하는 소책자를 방문객에게 말없이 건넸다. 박씨는 “종철이도 보고 있을 것”이라며 “영화 개봉 이후 더 많은 이들이 찾는 것은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옛 대공분실에 처음 들어온 날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1987년 1월 15일 새벽, 박씨가 살던 공덕동 자취방에 경찰이 들이닥쳐 다짜고짜 “같이 가야겠다”면서 그를 남영동으로 끌고 갔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대공분실에서 그는 부산에서 밤 기차를 타고 먼저 도착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막내가 죽었다”고 말했다.     
남영동 옛 대공분실 5층 조사실 복도. 조사실들은 마주보지 않고 엇갈려 있다. [중앙포토]

남영동 옛 대공분실 5층 조사실 복도. 조사실들은 마주보지 않고 엇갈려 있다. [중앙포토]

“경찰이 아버지 앞에서 탁자를 ‘탁’하고 쳐요. 아버지가 놀라셨죠. 그러자 경찰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보세요 놀라셨죠. 아드님도 놀라서 죽었어요’라고요.”
 
못 잊을 그날을 박씨는 세세히 기억했다. 그는 “동생이 죽었는데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억장이 무너져내렸다”면서 “동생을 임진강에 뿌리는데 화가 나고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종철이 죽은 이곳 시민사회가 운영했으면…동생과 소주 한 잔 하고 싶어”
고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남영동 옛 대공분실 509호는 원형 그대로 보존된 상태다. 여성국 기자.

고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남영동 옛 대공분실 509호는 원형 그대로 보존된 상태다. 여성국 기자.

박씨는 영화의 성공으로 대공분실이란 공간이 다시 조명을 받는 것이 기쁘지만 아쉬움도 있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지난 2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경찰이 운영하는 옛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꿔달라”는 청원을 올렸다.
 
박씨는 “이 건물에는 종철이가 죽은 509호 조사실, 4층 기념관이 있지만 여전히 경찰이 관리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면서 “동생이 경찰 손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수많은 민주인사, 학생들이 쓰러진 이곳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씨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4층과 5층을 오갔다. 일행과 함께 기념관을 둘러본 수녀 문모(38)씨는 “민주화 운동 소개와 경찰 홍보가 물과 기름처럼 섞였다. 인권 경찰을 위한 노력은 긍정적이지만 겉치레 같은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고 박종철 열사의 가족사진. 여성국 기자.

고 박종철 열사의 가족사진. 여성국 기자.

박씨는 방문한 대학생을 보며 다시 동생을 떠올렸다.  
 
“종철이는 어리지만 어른스러웠어요. 막내였지만 어디서든 리더역할을 했어요. 종철이가 초등학교 6학년 막 졸업했을 때, 6년 동안 모아둔 저금통을 깨서 나한테 자전거를 사주더라구요. 형이 힘드니까, 자기는 나중에 더 크면 이거 타면 된다고 하면서요. 술을 참 좋아했는데, 같이 소주 한잔 했으면…”
 
박씨는 “종철이건 한열이건 착하게 살다간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었다. 당시에는 평범하게 살다가도 독재정권에 의해 죽을 수 있는 엄혹한 시절이었다”면서 “기성세대가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이 없도록, 죽음이 헛되지 않는 사회를 젊은 세대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악한 것을 악하다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마음속으로 진실하게 믿는 용기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대학생 박종철이 수감 중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31년 전 1월, 용기있는 젊음이 억울한 죽음을 맞은 남영동 옛 대공분실 509호 앞에서는 오는 14일 ‘박종철 31주기 추도식’이 열린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