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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템포감

중앙일보 2018.01.09 01:52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결혼식 사회자가 “신부 입장”하고 외치면 그 날의 여주인공이 웨딩드레스를 끌면서 등장한다. 흔히 그의 아버지와 손을 잡고 ‘매우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이때 가장 많이 쓰이는 음악이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신부의 합창’(흔히 웨딩마치라고 부른다)이다. 이 아름다운 곡의 빠르기 지시는 실은 ‘보통 속도로’이다. 실제로 연주회에서나 오페라 공연에서 이 곡의 빠르기는 결혼식에서보다 훨씬 빠르다.
 

빠르기의 느낌은 주관적이어서 사람마다 달라
흔들리지 않는 템포감이 지휘자의 중요한 덕목

그런데 신부가 ‘매우 천천히’ 들어온다고 느낀 나의 느낌은 어디서 근거한 것일까? 아마 그것은 사람들이 걷는 보통 속도를 기준으로 비교한 것일 터이다. 보통 속도라고 얘기하지만 이 역시 주관적이긴 하다. 나는 1분에 80~90보를 걷는 속도면 보통이라고 느낀다. 음악에서 모데라토(보통 속도로) 역시 이 정도의 빠르기를 말한다.
 
작곡가들이 음악에 빠르기를 지시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크 시대였다. 그 이전에는 춤음악 외에는 빠르기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따로 지시가 없어도 관습적으로 그 빠르기를 알 수 있었고 춤음악 경우에도 춤의 이름만 밝혀 놓으면 그 빠르기가 정해졌다. 기악이 발달하고 음악의 표현이 다양해지면서 빠르기를 분명하게 정할 필요가 생겨 ‘빠르게’, ‘보통 속도로’, ‘느리게’ 등의 지시가 악보에 적히기 시작했다.
 
템포의 지시를 써넣게 되자 훨씬 나아지기는 했지만 ‘빠르게’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인지는 역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바로크 시대 이후에 음악은 훨씬 다감하고 다양한 정서를 표현하게 되어 빠르기의 지시도 더 세분될 필요가 생겼다. 베토벤 시대에 메트로놈이라는 템포기계가 고안되어 1분에 들어가는 비트, 즉 박(拍)을 숫자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M.M.♩=60은 1분에 4분음표 60개가 들어가는 속도이다. 그렇다면 한 비트가 1초니까 보통의 걸음걸이보다는 느리다. 아마 조금 빠르게 입장하는 신부에게 맞는 템포가 아닐까 싶다.
 
나는 작곡을 마칠 때쯤 그 음악의 템포를 악보에 적는다. 나에게는 이미 그 곡의 템포가 정해져 있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불러보기도 하고 박자를 저으며 지휘를 해보기도 한다. 요즈음에는 악보 소프트웨어가 있어서 작곡한 곡을 입력해 놓으면 컴퓨터가 음악을 연주해 들려준다. 빠르기도 지정할 수 있어서 들어보면서 템포를 정한다.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그 곡을 실제로 연주할 때면 템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나의 템포감은 주관적이다 못해 밤에 다르고 낮에 다르다.
 
작곡자는 이렇듯 변해도 지휘자는 그럴 수 없다. 그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템포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지휘자의 동작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비트와 박자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멋을 부리고 개성을 나타내는 것은 그다음이다. 흥분해서 빨라져도 안 되고 단원들에게 휘둘려도 안 된다. 지휘자가 반드시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지만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템포감은 꼭 필요하다. 오늘 연습한 템포와 내일 연습한 템포가 다르고 다음 날 다시 템포가 바뀌는 지휘자를 단원들은 귀신같이 안다. 그리고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하면 더 이상 그의 지휘를 신뢰하지 않는다.
 
지휘자가 등장한 이래 약 200년 동안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그 규모와 내용이 매우 크고 복잡해져서 지휘자의 존재가 없으면 연주는커녕 연습을 시작하기도 어렵다. 저마다 자신의 음악을 가지고 있는 연주자들은 나름대로 템포와 리듬감을 가지고 있다. 또 단원 중에는 지휘자가 제시하는 템포와 리듬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또 하나의 복잡한 세상이다. 이런 연주자들을 때로 설득하고 때로 연습시키고 때로 양보하고 때로 기 싸움을 해가면서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끌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지휘자의 일이다.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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