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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북·중 외교 조타수 왕후닝

중앙일보 2018.01.09 01:45 종합 30면 지면보기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보도에 따르면 북한 김일성 주석이 세상을 떠났다. 새로운 시기의 시작을 의미할 수 있다.” 중국 권력 서열 5위 왕후닝(王滬寧·63) 정치국 상무위원의 1994년 7월 10일 자 일기다. 베이징 출장 중이던 당시 39세 왕후닝 상하이 푸단(復旦)대 교수는 김일성의 죽음에서 새 시대를 예견했다. “중국의 정치 안정이라는 각도에서 새로운 발전을 관찰해야 한다”던 국익 우선론자다.
 
이듬해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왕후닝을 베이징으로 불러 책사로 기용했다. 이후 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習近平)을 거치며 3대 책사로 활약했다. 지금은 시진핑의 이너서클로 분류된다. 19차 당대회에서 대북 외교의 조타수를 맡았다. 당무를 전담하는 중앙서기처 선임 상무위원이 맡던 전례를 따랐다. 전임 류윈산(劉雲山)도 2015년 평양 노동당 창당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시 주석은 집권 후 대북 정책을 U턴했지만 장쩌민 계열 류윈산은 과거 메시지를 북한에 전했다. 시진핑 1기 북·중은 “위에 정책이 있고 아래에는 대책이 있는” 상반되는 ‘불타는 얼음’ 같은 국면이 이어졌다.
 
19차 당대회 이후 중국이 다시 변하고 있다. 우선 사회주의 진영 외교를 복원 중이다. 시 주석이 첫 순방국을 러시아에서 베트남·라오스로 바꾼 이유다. 19차 당대회 보고서는 한글(조선어) 공식 번역본이 처음 추가됐다. 당대회 특사 쑹타오(宋濤) 중앙 대외연락부장은 북한 혁명가 후손 양성기관인 만경대 혁명학원을 찾았다. 김일성·김정일 시신에도 헌화했다. 쑹타오는 트럼프·시진핑 회담 내용도 통보했다. 집권 2기의 새로운 방법론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김정은은 핵·미사일 시간표에 따라 ‘화성-15형’ 발사로 대답했다. 핵 포기는 없다는 메시지다. 시진핑은 트럼프와 원유 트리거 조항을 포함한 유엔 결의 2397호로 응대했다. 동시에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대비에 들어갔다. 핵 공습 대처법을 지방당 기관지에 싣고 북한 난민 캠프를 준비하며 북한 내 유학생 철수를 검토 중이다. 북핵 제거 뒤 미군의 38선 이남 철수를 트럼프에게 보증받았다는 소식도 전한다.
 
북핵 해법은 군 통수권과 대미 외교를 포괄한다. 최고지도자인 시 주석이 맡아야 할 영역이 됐다. 왕후닝으로선 조연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시 주석은 이념·선전·당무를 총괄하는 왕후닝과 손발을 맞춰 대북 정책에 추진력을 얻었다. 정책 결정자와 집행자의 불협화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왕후닝은 표심에 좌우되는 폴리티션(politician)이 아닌 국익을 내세우는 스테이츠맨(statesman)을 꿈꿔 왔다. 그가 시 주석을 도와 얼마나 뚝심 있게 한반도 비핵화를 밀어붙일지 눈여겨볼 때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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