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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버티고 버티던 섬유공장 두 곳 문 닫았다

중앙일보 2018.01.09 01:27 종합 5면 지면보기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광주 83년 된 공장 등 가동 중단
근로자 270명도 일자리 잃게 돼
“부동산 수익으로 고용 지켰는데
경영악화 엎친 데 최저임금 덮쳐”

섬유를 만드는 A사의 광주광역시 공장이 지난해 12월 31일 문을 닫았다. 83년간 실을 만든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섬유공장이다. 염색사·재봉사를 생산하던 이 회사의 경기도 시흥 공장도 같은 날 가동을 중단했다.
 
두 공장 근로자 220여 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회사에 남은 50여 명의 근로자도 3~4개월 정도 소요되는 공장 이설을 끝내면 모두 해고된다.
 
이 회사 K 대표이사는 “가뜩이나 시설이 노후해 생산성이 떨어져 2016년에만 적자가 124억원이나 났지만 대량 해고를 피하고 싶어 부동산·금융상품을 매각해 버텨 왔다”며 “그러나 최저임금이 오르고 그에 따라 연쇄적으로 인건비가 늘면서 도저히 공장을 계속 돌리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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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대표이사는 주가 하락과 그에 따른 주주의 반발 등 회사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사명과 본인 이름의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사업 부진이 1차 원인이다. K 대표에 따르면 6년 전부터 해당 2개 공장은 생산성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하지 않아도 되는 자동화 설비가 확산하면서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설비를 최신 설비로 교체해야 했다. 문제는 이렇게 할 경우 대량 인력 구조조정이 뒤따른다는 점이었다.
 
K 대표는 “대표이사로 취임했던 2005년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만년 적자 공장이라도 결코 문 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며 “이후 12년 동안 단 1명의 직원을 임의로 구조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용 보장을 위해 기존 설비를 유지하면서 이 회사 매출은 업계 4위(2008억원·2016년)까지 떨어졌다. 생산성이 하락했지만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기존 설비를 그대로 사용했다. 대한방적협회에 따르면 이 회사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방적설비(정방기·21만8304추)를 보유하고 있다. 업계 1위(일신방직·18만3392추)보다 정방기가 약 3만5000추나 더 많다.
 
대신 직원을 해고하지 않으려고 K 대표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은행에 토지·건물을 담보로 운영비를 빌렸다. 매년 수십억원의 부동산을 야금야금 팔면서도 인건비는 지급했다.
 
힘겹게 버텨가던 상황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16.4%)은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은 셈이었다. 한계산업으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공장이 버티지 못하고 폐쇄한 계기를 최저임금이 제공한 것이다. 이 회사는 전체 근로자의 37%가 최저임금을 받는다. 최저임금이 상승하면 연쇄적으로 나머지 63%의 근로자 임금도 상승한다.
 
이 회사의 사업구조상 인건비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결정적이다. 2016년 영업손실 총액(124억원)이 임금성 비용의 절반도 안 된다. 임금 규모가 사실상 실적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임금이 한꺼번에 16.4%나 상승하면 적자폭을 줄일 방법이 요원하다.
 
K 대표는 “6년 동안 살림살이 팔아서 월급 준 걸 직원들이 알고 있어서인지 지난달 31일 공장 문을 닫는 데 단 1명의 직원도 반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해고한 직원을 마주할 면목이 없다”며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대사를 인용해 “당신(정부)에게 도와 달라고 한 적 없다. 다만 방해만 하지 말라”고 하소연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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