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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타일] 유학파 셰프들이 곰탕에 빠진 날

중앙일보 2018.01.09 00:45 종합 19면 지면보기
살코기나 소뼈를 푹 고아낸 진한 국물에 하얀 밥을 말아 후루룩 들이키고 나면 한겨울 맹추위도 어느 정도 이겨낼 만하다. 이처럼 국에다 밥을 만 음식을 본래 탕반(湯飯) 또는 장국밥이라고 부른다. 곰탕·설렁탕이 대표적이다. 사용하는 부위에 따라 종류가 나뉘는데 곰탕은 양지머리를, 설렁탕은 뼈를 푹 끓여낸 것을 말한다. 때문에 곰탕은 국물이 맑고, 설렁탕은 국물이 뽀얗다.
 

박찬일·임정식·이재훈 등 열어
상차림 깔끔하고, 인테리어는 모던
“유행 안 타고 회전율 높아 경제적”

최근들어 곰탕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유학파 셰프들이 잇따라 곰탕집을 내고 있다. 이탈리아 ICIF 출신의 ‘글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 미국 CIA출신의 미쉐린(미슐랭) 가이드 2스타 셰프인 임정식 셰프, 이탈리아 ICIF 출신으로 최근 JTBC ‘냉장고를 부탁해’로 유명해진 이재훈 셰프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이들이다. 프렌치·이탈리안 등 서양음식을 전공한 이들 셰프의 곰탕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지난해 돼지국밥부터 힐링푸드로 인기
 
서양식을 전공으로 하는 셰프의 곰탕이 관심을 끈 건 2017년부터다. 다만 이때 주인공은 돼지였다. 박찬일 셰프와 호텔·항공사등에서 경력을 쌓은 옥동식 셰프가 각각 3월에 서울 광화문과 합정동에 돼지국밥집을 열며 화제가 됐다. 두 곳 모두 돼지 살코기를 끓여낸 맑은 국물의 서울식 돼지곰탕이 주메뉴인데 요즘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인기다.
 
박찬일 셰프 ‘광교옥’(대치동)

박찬일 셰프 ‘광교옥’(대치동)

올해는 ‘소’다. 첫 시작은 박찬일 셰프다. 광화문국밥으로 자신만의 돼지곰탕을 선보인 박 셰프는 지난해 12월 서울 대치동에 소곰탕 전문점 ‘광교옥’을 열었다. 어린 시절 곰탕을 좋아하던 아버지를 따라 광교에 있던 하동관·삼성관 등에서 먹던 추억의 음식인 곰탕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릇에 담았다. 박 셰프는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예부터 서울의 대표적인 상업지구인 광교엔 곰탕·설렁탕·냉면집이 밀집돼 있었다”며 “이러한 지리적 특성에 밥집을 뜻하는 옥자를 붙여 상호를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재훈 셰프 ‘진심설농탕’(문정동)

이재훈 셰프 ‘진심설농탕’(문정동)

이재훈 셰프는 이달 10일 서울 문정동에 설렁탕 전문점 ‘진심설농탕’을 연다. 이탈리안 파인다이닝 ‘까델루뽀’를 비롯해 함박스테이크 전문점 ‘친친함박’ 등으로 익숙한 그가 설렁탕집을 내는 건 자신이 좋아하고 또 익숙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 셰프는 “밤 10시 넘어 가게를 나서면 배가 너무 고픈데 그때 주린 배를 기분 좋게 채워주는 것이 설렁탕이었다”며 “자주 먹다보니 요리사의 본능이 발현돼 내가 하면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결국 6개월을 준비해 열게 됐다”고 말했다.
 
임정식 셰프 ‘평화옥’(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임정식 셰프 ‘평화옥’(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임정식 셰프는 지난해 3월부터 곰탕 팝업을 시작으로 매달 냉면·어복쟁반 등의 팝업 매장을 잇따라 열며 고깃국물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를 연구했다. 그 결과를 담아 1월 18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장과 함께 한식당 ‘평화옥’을 연다. 남과 북을 대표하는 음식들을 선보이는 평화옥의 대표 메뉴가 바로 곰탕과 평양냉면이다.
 
곰탕은 국민 누구나 전문가다. 어릴적부터 먹어온 익숙한 음식이기 때문에 셰프들도 저마다의 노하우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박찬일 셰프는 호주산 와규로 육수를 낸다. 고기를 넉넉하게 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한우로 지금의 양을 주려면 한 그릇 가격이 1만8000원에서 2만원까지 올라가는데 누가 그렇게 큰 돈을 내고 국밥을 먹겠냐”고 말했다. 박찬일 셰프의 곰탕 가격은 9500원. 대신 육수용 고기인 양지머리를 숙성시켜 사용해 고기 특유의 감칠맛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곰탕의 또 다른 주인공인 밥을 제대로 짓기 위해 쌀 품종도 깐깐하게 골랐다. 그렇게 고른 게 신동진미다. 박 셰프는 “신동진미는 찰기가 강하지 않아 국에 말았을 때 밥알이 살아있고 국물이 탁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재훈 셰프는 한우를 사용하면서도 설렁탕 한 그릇에 8000원을 받는다. 부산에서 한우 총판사업을 하는 지인과 함께 가게를 열었기 때문이다. 한우사골만 24시간 끓여 담아낸다. 이 셰프는 “판매량이 많아야 수익이 남기 때문에 대신 회전율이 높은 역 인근에 가게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셰프 특유의 인테리어나 창의력은 식당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임정식 셰프는 곰탕·냉면 그릇을 직접 디자인했다. 파인다이닝에선 쓰지 않지만 세척이 쉽고 안전한 스테인레스를 쓰는데 직접 주물제작해 만들었다. 식당 가운데엔 40명이 한 번에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을 놓아 여럿이 함께 곰탕을 먹는 노포의 분위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서울 강남, 인천국제공항 등으로 진출
 
셰프들이 곰탕집을 여는 이유는 뭘까. 경제적인 측면을 빼놓을 수 없다. 곰탕은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익숙한 메뉴로 유행을 타지 않는다. 특히 옥동식(돼지곰탕)·마포옥(설렁탕)·하동관(곰탕) 등이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에서 빕 구르망(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으로 선정되면서 곰탕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세계적으로 파인다이닝(고급식당)의 성장세가 주춤한데다 인건비와 식재료 비용이 상승하면서 수익을 내는 게 갈수록 어렵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이재훈 셰프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은 전문 인력이 많아야 하지만 곰탕 같은 한식 단품 메뉴는 정확한 레시피에 따라 일정한 맛을 낼 수 있고 회전율이 높아 사업적인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꼽은 2018 외식 트렌드에서도 “새해엔 한 가지 메뉴를 전문적으로 하는 한식당의 인기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존 메뉴에서 반찬수를 줄이는 등 단순화, 소형화, 전문화하는 과정을 통해 음식점의 서비스가 단품메뉴에 집중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레스토랑 가이드 ‘다이어리알’의 이윤화 대표는 “한식 단품인 떡볶이·김밥이 상품화를 통해 고급화했듯 한식 단품의 명품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파인다이닝에 비해 상품화가 빠르고 대중에게 어필하기도 좋다”고 설명했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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