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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해진 조성진, 기교 숨겼더니 소리가 살아났다

중앙일보 2018.01.09 00:35 종합 21면 지면보기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은 전국 투어 독주회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달 4개 도시에서 5회 공연하는 첫 전국 투어를 7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시작했다. 사진은 부산 공연의 리허설 장면. [사진 크레디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은 전국 투어 독주회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달 4개 도시에서 5회 공연하는 첫 전국 투어를 7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시작했다. 사진은 부산 공연의 리허설 장면. [사진 크레디아]

피아니스트 조성진(24)의 음악은 주장이 강하지 않은 쪽으로 변화했다. 2015년 쇼팽 콩쿠르의 첫 한국인 우승자인 조성진은 지난해 1월 롯데콘서트홀 공연 이후 1년 만인 7일 부산문화회관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전국 순회공연의 첫 무대다. 지난해 러시아 음악처럼 힘이 넘쳤던 슈베르트, 관능적 밀고 당김이 있는 쇼팽을 들려줬던 조성진은 이번엔 베토벤 소나타 ‘비창’과 30번, 드뷔시 영상 2권, 쇼팽 소나타 3번을 골랐다. 7일 부산 연주 후 10·11일 서울, 13일 전주, 14일 대전에서 같은 연주 곡목으로 독주회를 연다.
 

‘첫 전국 투어’ 7일 부산에서 시작
악보대로 연주한 베토벤 소나타
한마디 안에서 다양한 뉘앙스 표현
14일까지 서울·전주·대전서 연주

첫 전국 순회공연의 첫 무대에서 조성진은 앞서가거나 과장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줬다. ‘비창’ 소나타 2악장에서는 자칫 신파로 갈 수 있는 음악으로부터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우아하고 느린 노래를 했다. 박자대로, 담백한 톤으로 연주했다. 3악장에서는 좀 더 테크닉을 과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악보에 적힌 대로 또박또박 연주했다. 소나타 30번에선 이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태도가 더 분명했다. 1악장에서는 마치 연습곡이라도 되는 듯 한음한음을 분명히 들려줬다. 이 곡 3악장의 후기 베토벤의 단순하지만 감상적인 주제 선율이 나온다. 조성진의 해석은 담담했다. 복잡하고 장대한 이야기가 끝나는 듯한 마지막 부분에서 주제가 반복될 때 마치 의미를 거의 두지 않은 듯 음악이 그대로 흘러가도록 뒀다. 작품의 마지막임을 강조하기 위해 느려지지도 않았고, 감정을 만들기 위해 푹 빠져 노래하지도 않았다.
 
조성진은 최근 인터뷰에서 “작품 해석으로 나의 독특한 생각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은 최근 들어 더 안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연주 전에 CD를 들으면서 다른 연주자들의 해석을 참고하는 일도 이제 거의 안 한다”고 했다. 7일 부산 무대 또한 있는 그대로 연주하는 것, 그저 음악이 가장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인 듯 보였다. 조성진의 연주에는 1년 전보다 ‘강한 자아’가 빠져 있었다.
 
4일 기자간담회에서 독주회를 설명하는 조성진. [크레디아]

4일 기자간담회에서 독주회를 설명하는 조성진. [크레디아]

연주는 해석의 문제를 떠나 미학의 주제로 넘어가 있었다. 조성진의 음색은 떠오르는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악기와 공연장의 상태가 최상이 아니었지만 피아노 소리를 조절하는 자유만큼은 분명히 드러났다. 들려야 할 멜로디는 효과적이고 깨끗하게 뻗어 나왔고, 화음을 이루는 음들은 딱 알맞은 정도의 음량으로 각각 울려 탄탄하게 쌓였다. 드뷔시의 화음은 같은 마디 안에서도 각각 다른 뉘앙스로 변화했다. 어떤 소리는 공중에 떠 있었고, 그 다음 소리는 고무줄처럼 팽팽했고, 또 다른 소리는 묵직했다. 조성진이 가진 소리의 종류가 1년 전보다 더 풍부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음악 해석에서 본인의 강한 주장을 빼거나 가진 모든 재능을 보이지 않도록 자제하는 것은 확신과 훈련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덜 보여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실력이다. 조성진은 이번 독주회에서 피아노로 원하는 것은 거의 모두 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화려함의 정도를 원하는 만큼 조절할 수 있고, 두터운 화음들 사이에서 뚫고 나와 청중이 집중할 수 있는 멜로디를 만들 수 있었다. 건반 다루는 기술이 늘어난 그는 그걸 과시하는 대신 음악 속으로 숨기는 편을 선택했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음악을 추구한다”는 본인의 말에 맞는 스타일이다.
 
다만 앙코르에서만큼은 절제도 거리두기도 없이 모든 것을 다 했다. 쇼팽 전주곡 17번에서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다운 낭만적 해석을 선보였다. ‘영웅’ 폴로네이즈와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10번에서는 얼마나 빠르고 크게 칠 수 있는지, 즉 마음 먹으면 얼마나 기교적이 될 수 있는 피아니스트인지를 과시하다시피 연주했다. 드뷔시 ‘골리웍의 케이크 워크’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망가지는 음악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슈베르트 즉흥곡 D.899의 2번엔 템포를 변화시키면서 연주하는 과감함을 슬쩍 섞었다. 베토벤 소나타, 드뷔시, 쇼팽 소나타로 이어지는 ‘정찬’에서 기교적이고 과시적인 것을 절제해 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앙코르 무대였다.
 
이번 전국 투어를 앞두고 조성진은 “하루에 4시간 이상 연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몸이 아프다”고 했다. 4시간은 긴 연습시간이라 볼 수는 없다. 그가 건반에서 얻은 자유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연습량은 아니다. 그런데도 피아노로 원하는 효과를 거의 다 얻을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어 가는 데에는 뭔가 다른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조성진 리사이틀은 10·11일 서울 예술의전당, 13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14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계속된다.
 
부산=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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