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해자 밝힌다고 아들 돌아오지 않아 … 군 시스템 바뀌어야

중앙일보 2018.01.09 00:20 종합 23면 지면보기
지난 2일 남재철 기상청장에게 모범공무원상을 받고 있는 이동현 주무관(오른쪽). [사진 기상청]

지난 2일 남재철 기상청장에게 모범공무원상을 받고 있는 이동현 주무관(오른쪽). [사진 기상청]

“이런 상을 안 받고 자식을 잃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착잡하네요.” 8일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기상청 이동현(50) 주무관의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모범공무원상 기상청 이동현 주무관
유탄에 장남 잃고도 처벌 원치 않아
“상 감사하나 자식 살았더라면 …”

그는 지난해 9월 26일 강원도 철원 육군 6사단에서 발생한 군 사격장 유탄 사고로 숨진 이 모(21) 상병의 아버지다.
 
이 주무관은 ‘2017년 하반기 모범 공무원’으로 뽑혀 지난 2일 기상청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고(故) 이 상병은 당시 전투 진지 공사 작업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에 인근 사격장에서 날아든 총탄에 머리를 맞았다.
 
이 주무관은 억장이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빗나간 탄환을 어느 병사가 쐈는지 밝히거나 처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가해 병사의 미래를 위해 신원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 주무관은 기자와 통화에서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해자를 밝힌다고 해서 우리 아들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벌을 준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알고 나면 더 슬퍼지기만 하겠죠. 그 친구도 더 슬플 것이고, 서로 간에 마음만 아픈 거죠. 차라리 모르는 게 그 사람한테도 좋고, 나한테도 좋을 겁니다.”
 
그는 “내가 이런 상을 받아도 되나 싶지만, 기상청 동료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았다”며 “앞으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안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철원 총기 사고는 이 상병의 사인이 도비탄(跳飛彈, 딱딱한 물체에 부딪혀 튕겨 나간 탄) 아닌 유탄(流彈, 조준한 곳에 맞지 않고 빗나간 탄)으로 바뀌는 등 군 당국의 미숙한 대응으로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국방부의 특별조사 결과, 사격장과 군 인솔자인 간부들의 안전불감증이 부른 참사로 밝혀졌다.
 
이 주무관은 “사고 당시 군 간부들에게 ‘어느 누가 이런 상황에서 아들을 군대를 보내겠느냐. 이 문제가 수정되지 않으면 절대 둘째 아들은 군대에 보내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며 “잘못된 군 매뉴얼이 겹쳐서 발생한 사고이니 만큼 똑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시스템부터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6년 기상청에서 일을 시작한 이 주무관은 항공 예보와 관측 업무를 주로 하는 등 23년째 항공기상 업무에 종사해 왔다. 2011년부터는 항공기상청 산하 무안공항 기상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 주무관은 평소 훌륭한 성품과 남다른 성실함으로 다른 직원들의 모범이 돼 왔다”며 “아들을 잃은 아픔을 모두 치유할 수는 없겠지만, 국가와 국민을 최우선으로 위했던 그의 마음을 기려 모범공무원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도 들어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 국민과 나라를 위해 성실하게 맡은 바 업무를 수행한 공직자를 모범공무원으로 선발해 포상하고 있다.
 
기상청은 지난 2일 공직사회에 큰 귀감이 된 이 주무관을 비롯한 일곱 명을 하반기 모범공무원으로 선정해 상을 수여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