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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미국은 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나요?

중앙일보 2018.01.09 00:02 경제 9면 지면보기
Q.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개정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6년 전에 협상을 마치고 발효했던 한·미 FTA를 왜 개정하려고 하나요?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협정 발효 후 미국 적자 폭 2배로
자동차·차부품 등 개정 요구할 듯
미, 로열티 포함 서비스수지 흑자
“FTA·WTO 모두 미국에게 유리”

 

FTA 후 무역적자 늘어 손해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A. 일반적으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국경을 넘어 수출할 때는 세금(관세)을 물어야 합니다. 이 상품·서비스를 수입하는 국가의 산업을 보호하고 국가 재정 수입을 증대하기 위해섭니다.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런 거래에서 서로 예외를 두자는 약속입니다. 특정 국가가 서로 수출·입을 할 때는 마치 자국 영토에서 거래하는 것처럼 관세를 물지 말고 자유롭게 무역하자는 뜻이죠. 한국과 미국은 2007년 4월 한·미 FTA를 체결했습니다. 실제 조항은 다소 복잡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서로 자유무역을 하자고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당시 약속을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미 통상당국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나 한·미 FTA 개정을 위한 1차 협상을 개최했습니다. 한·미 FTA 개정에 나선 이유는 미국이 한·미 FTA 때문에 무역 적자가 쌓이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일(2012년 3월 15일) 이전인 2011년(116억3900만 달러)과 비교할 때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배 정도(232억4600만 달러·2016년) 증가했습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미국 측이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구체적인 개정안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국 정부는 특히 자동차·자동차부품 분야에서 개정을 집중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1차 협상 직후 성명을 통해 “미국은 자동차·자동차부품 등 주요 산업용품 분야에서 보다 공정한 상호무역을 제안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품목 1·2위가 자동차·자동차부품이기 때문입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5년 동안 대미 승용차 수출은 연평균 12.4%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기준 현대차(33만5762대)·기아차(33만2470대)는 전체 수출량의 30% 이상을 미국에서 판매했습니다.
 
양국의 자동차 관세는 발효 5년을 기점으로 이미 철폐됐습니다. 다만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트럭에 대한 관세(25%)는 한·미 FTA 발표 8년 차까지 유지됩니다. 완전 폐지는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나야 합니다. 따라서 미국이 트럭 관세 연장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 완성차 수입 규모를 늘려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한·미 FTA에는 한국 정부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차량이더라도 미국 정부가 규정한 안전기준을 충족한다면 업체당 2만5000대까지 수입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 할당량을 확대하자는 카드를 내밀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자동차산업 규제도 도마 위에 오를 수 있습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배출가스 기준과 자동차 수리 이력 고지 등 규제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바 있습니다. 한국 환경부의 배기가스 인증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도 가능합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자동차를 많이 생산하는 국가입니다. 자동차 1대당 약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자동차부품 수요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미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게 미국의 불만입니다. 현대차가 한국에서 수출하는 자동차의 미국산 부품 비중은 0~3% 수준으로 알려집니다.
 
미국의 주장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비판적인 분위기입니다. 지난 4일~7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2018년 전미경제학회(AEA)에서는 미국의 석학들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쏟아냈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미 FTA 개정 논의에 대해 “미국은 상품 수지는 적자지만, 서비스 수지는 흑자”라며 “자동차산업 때문에 한·미 FTA를 개정하는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수지 항목에서 미국은 매년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의 대(對)한국 서비스수지는 매년 110억 달러(11조7000억원) 이상 흑자를 기록하다가 2015년에는 집계 이래 최대치인 140억 달러(14조9000억원)를 넘어섰습니다.
 
또 서비스수지 중에서도 ‘알짜’인 지식재산권 사용료 수지도 흑자 폭이 눈덩이처럼 불었습니다. 미국의 대(對)한국 지식재산권 사용료 수지는 FTA 발효 전 29억9200만 달러(3조2000억원·2011년)에서 58억8500만 달러(6조3000억원·2015년)까지 증가했습니다. 이는 쉽게 말해서 한국이 제품을 만들어 팔아 수출 흑자를 내는 와중에서도 미국이 보유한 원천기술을 활용하고 로열티를 지급했거나, 법률·컨설팅 서비스를 받고 미국에 지불한 돈도 꾸준히 늘었다는 뜻입니다. 이를 두고 래리 서머스 미 하버드대 교수는 전미경제학회에서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FTA, 세계무역기구(WTO)는 모두 미국에 유리하다”며 “이를 포기하면 결국 미국 수출만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정 협상이 표면적으로는 일방적인 수정 요구가 아닌 만큼, 한국도 이번 기회에 한·미 FTA 중 한국에 불리한 조항을 수정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 보고에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해외투자자가 상대국에 의해 손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를 손댈 생각이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국내 농·축산업계가 요구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세이프가드(safeguard·긴급수입제한) 발동 기준 완도도 “타당성 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적자 폭이 커진 산업(여행서비스업·법률컨설팅업·지식재산권)도 한국이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1차 개정협상에서 무슨 조항을 수정하려고 하는지 서로 살짝 떠봤던 양국 협상단은 앞으로 3~4주 간격으로 후속 협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2차 개정협상은 서울에서 열리지만 아직 특정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양국이 개정안에 합의하면 국회 보고·비준 후 개정 협상을 발효하게 됩니다. 하지만 개정안 합의에 실패하면 서면 통보 후 협정 폐기 절차를 밟게 됩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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