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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견공계의 피카소…그림 그리는 '진도개'

중앙일보 2018.01.09 00:01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가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가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황금 개의 해인 2018년 무술년(戊戌年)을 맞아 한국 토종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도개와 삽살개, 동경이 등이다. 이 가운데 진도개는 익히 알려진, 주인에 대한 남다른 충성심과 영특함으로 사랑을 받는 토종개다. ‘진도개의 고향’ 전남 진도에는 독특한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진도개가 있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그림 그리는 개 ‘진명’이다.
 

전남 진도 사는 황구 '진명'이, 주인과 붓으로 그림 그려
단순히 종이 위에 점 찍는 것 넘어 선 그리는 등 붓질
진도개 좋아하던 남동생 잃은 아주머니와 특별한 인연
진도개공연단 통해 일당 10만원 벌어 진도개 가족 '가장'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그림 그리기를 마친 쥐 주인 김신덕씨와 원반 던지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그림 그리기를 마친 쥐 주인 김신덕씨와 원반 던지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해가 바뀌면서 올해로 6살이 된 진명이는 수컷 진도개 황구다. 사람으로 치면 40대 정도의 나이다. 엄마처럼 따르는 주인 김신덕(62ㆍ여)씨와 호흡을 맞춰 함께 그림을 그린 지는 4년 정도 됐다. 진명이가 사는 곳은 진도군 의신면 운림예술촌이다. 천연기념물 제107호인 첨찰산 상록수림이 있어서 공기가 맑고, ‘남종화의 대가’로 불리는 조선시대 화가 소치 허련(1808~1893)이 그림을 그리며 살았던 운림산방이 있는 곳이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프리랜서 장정필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프리랜서 장정필

 
“물어!” 지난 4일 오전, 색색의 물감을 푼 팔레트를 한 손에 든 주인 김씨가 짧고 굵게 말하자 진명이가 김씨의 다른 손에 들린 붓을 입으로 받았다. “그려!” 신이 난 듯 꼬리를 흔들던 진명이는 계속된 김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망설임 없이 이젤로 다가갔다. 이어 물감이 묻은 붓끝을 화선지에 가져가 고개를 흔들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얼핏 보면 물감이 묻은 붓을 그저 화선지에 가져다 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선을 그렸다. 단순히 종이 위에 점을 찍는 것과는 달랐다. 수차례 반복된 붓질 끝에 ‘작품’이 완성됐다. 물론 전문 화가의 작품과 비교할 순 없었지만, 어린이가 그린, 화려한 추상화 같기도 했다. 주인 김씨는 진명이가 몇 차례 붓질할 때마다 삶은 고기를 줬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프리랜서 장정필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프리랜서 장정필

 
진명이에게 그림 그리는 재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반 물어오기부터 링 통과하기, 사람과 함께 줄넘기 등 다재다능하다. 간단한 말도 알아듣는다. 핸드폰, 꽃, 안경 등 필요한 물건을 말하면 입으로 물어 가져온다. 컨디션이 좋으면 ‘하나’부터 최대 ‘열다섯’까지 구령에 맞춰 같은 횟수로 ‘멍멍’ 짖기도 한다.
 
주인 김씨는 “진도개들이 워낙 영특한데, 진명이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르게 민첩하고 호기심이 많은 강아지였다”고 말했다. 가령 먹을 것을 던져보면 바닥에 떨어진 뒤 주워 먹는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진명이는 힘껏 점프해 받아먹거나 떨어지는 나뭇잎이나 나비를 쫓아가 물려고 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원반 물어오기를 시작으로 훈련을 한 결과 지금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그림을 그리는 데까지는 6개월 이상 걸렸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가 쓰는 붓. 입으로 물 수 있게 한쪽 끝을 T자 모양으로 제작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가 쓰는 붓. 입으로 물 수 있게 한쪽 끝을 T자 모양으로 제작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진명이와 주인 김씨는 특별하게 인연을 맺었다. 원래 진도에서 나고 자란 김씨는 결혼 후 타지 생활을 하다가 한국을 떠나 필리핀에서 지냈다. 남편의 직장과 세 자녀의 교육 문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김씨가 진도로 돌아온 것은 2009년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척추를 다친 세 살 아래 남동생이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 김씨는 “남편도 필리핀에서 하늘나라로 떠난 상황이었다. 아이들과 호주로 떠날 계획을 세운 뒤 동생을 보고갈 생각에 잠시 귀국해 진도에 왔다”고 했다.
 
58년생 개띠로 유난히 진도개를 좋아해 15마리 이상 키우던 김씨의 남동생은 2011년 결국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개들의 운명은 김씨에게 달려있었다. 모든 진도개들을 주변에 분양하고 진도 생활을 정리한 뒤 계획대로 호주로 떠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김씨의 결정은 진도에 남아 진도개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진도개와의 인생 2막이 시작됐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와 주인 김신덕씨. 프리랜서 장정필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와 주인 김신덕씨. 프리랜서 장정필

어릴 땐 진도개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 김씨에게 진도개들은 새 가족이 됐다. 진명이를 낳은 어미 진도개를 비롯해 20마리 가까운 진도개에게 매일 밥을 주고 변을 치우는 등 식구처럼 돌봤다. 그러다 태어난 진명이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김씨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됐다. 진명이는 최근까지 5차례 짝짓기를 통해 20여 마리의 새끼도 선물했다. 모두 아빠 진명이를 닮아 똑똑하다. 제2의 진명이를 꿈꿀 정도다.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주인 김신덕씨와 줄넘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견공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토종 진도개 진명이. 주인 김신덕씨와 줄넘기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진명이는 자신을 포함해 30여 마리나 되는 진도개 가족의 가장 역할도 한다. 3월부터 12월까지 진도에서 열리는 진도개공연단 공연을 통해서다. 15마리의 공연단 진도개 중 한 마리인 진명이는 토ㆍ일요일 30분씩 공연을 해주고 1회당 10만원을 받는다. 사람보다 훨씬 센 시급이다. 이 돈은 김씨가 키우는 진도개 가족의 먹이를 사는 데 쓰인다. 김씨는 “내 자녀를 키우듯 반려견을 키운다면, 정말 주인과 소통하는 반려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진도=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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