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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정책으로 월급이 되레 줄었는데, 대응책이 없어요"

중앙일보 2018.01.08 17:50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되자 시급은 늘었지만 총급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푸념도 잇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되자 시급은 늘었지만 총급여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푸념도 잇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중소기업인 D화장품사는 기본급여 포함 항목을 바꿔서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피해갔다. 이 회사는 3개월에 한 번씩 지급하는 자기계발비 15만원 중 5만원과 매달 지급하던 식대 10만원을 기본 급여에 포함하기로 했다. 

법적 의무 없는 상여금을 임금에 포함
근로자들 "알면서도 대응할 방법 없어"
월 13만원 주는 정부 보조금 받으려
경비원들 근무시간 줄이는 곳도
제빵업계에선 주인-점원 '업무 역전'

이 회사 직원 강 모씨는 "정부가 올려 주라는 금액을 이미 주던 돈으로 대체하려는 속셈이 뻔히 보이지만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에 있는 한 무역회사에서 무기계약직 사무원으로 근무하는 강 모씨(23)는 상여금이 줄었다. 회사에서 연 400% 주던 상여금을 200%로 줄이고 나머지 200%는 기본급에 포함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 상여금은 법적 의무가 없는 지출이다. 법이 강제하는 최저임금 수준을 지키는 한 근로자들은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상여금 정책 조정으로 강 씨의 연간 급여는 300만원 가까이 줄어들게 됐다. 강 씨는 "임금 인상 정책으로 임금이 하락하게 생겼는데, 구제책이 전혀 없다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최저임금40

최저임금40

 
홈페이지 개발업체 대표 K씨는 숙식비를 기본임금에 반영할 계획이다. 고객이 요구한 마감에 맞춰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업무 특성상 근로자들의 야근과 지방 출장이 잦다. 초과 근로 수당과 숙식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이 회사 대졸 신입사원 기본급은 올해 최저임금보다 낮게 책정돼 있다. 
K씨는 "신입사원 기본급을 올리면 선배 직원도 다 같이 임금이 올라가서 감당하기 어렵다"며 "숙식비를 기본임금에 포함하는 것보다 좋은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 분야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도덕적 해이'를 빚고 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는 이달부터 인상된 최저시급을 적용해 경비원 월급을 기존 18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입주자 회의를 거치면서 189만원으로 최종 책정했다. 정부가 월 급여 190만원 이하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한해 일자리안정자금으로 1인당 13만원을 지원하는데 이 자금을 받기 위해서다. 오른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190만원이 넘기 때문에 결국 근무 중 쉬는 시간을 늘려 근로시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입주자 대표 김 모씨는 "주변 단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이 지원 취지와 다르게 운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최저임금

제빵업계에선 사장과 알바생 간에 업무 역전 현상이 생긴 곳도 있다. 경기도의 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는 지난해 12월부터 빵 굽는 일을 배워왔다. 제빵사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문제는 점주가 주방에서 종일 빵을 굽는데 몰두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소비자 응대와 매장 전반 관리를 아르바이트 직원이 맡게 됐다. 이 점주는 "알바생이 점주만큼 책임감을 갖고 매장을 관리하기는 어렵다"며 "장기적으로는 손님이 줄어들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최저임금

기업인도 할 말이 많다. 서울 강동구에서 건축 자재상을 운영하는 신 모(47) 사장은 “영업이익이 많이 남는 업종이라면 모를까, 사장조차 겨우 인건비 정도를 버는 업종에서는 급격한 인상률을 곧바로 적용하면 가게 문을 열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생존을 위한 자구책 차원에서 비용 떠넘기기 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각종 부작용과 편법이 등장하는 이유를 미흡한 정부 역할에서 찾는다. 최저임금 정책의 속성상 '정부 기여분'이 없고, 그러다 보니 시장의 반발이 나온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금인상 정책은 누군가 돈을 내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내는 사람에겐 비용일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비용을 지급하는 사람이 여력이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득이 충분히 많은 이의 돈으로 소득이 재분배돼야 하는데 최저임금제도는 소득이 높지 않은 계층의 돈을 걷어 더 낮은 계층에 주는 문제가 있다"며 "영세상공인이나 자영업자에 피해가 가는 제도라면 정책 설계와 방향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은 조용하면서 꾸준하게 인상하는 게 정답인데 정치적 쟁점화되면서 사용자들이 지레 겁먹고 고용을 줄이고 기계화에 나서는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되짚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7530의 역습

최저임금 7530의 역습

최저임금제 도입과 시장의 반작용을 거치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에 대해선 정책 설계의 과정을 지적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논의 자체가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정치적 거품'을 내포한 채 시작됐다"며 "실제 입안 단계에서는 정치적 프로세스를 객관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 과정이 생략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적 프로세스의 객관화란 노동시장에 대한 통계치, 영향 분석 등 정밀한 데이터를 놓고 노동자와 사용자가 함께 만족할 만한 인상 범위(Range)를 정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문가들의 집단지성 리더십이 반영되지 못하면 정치인들이 마치 과도하게 마이신을 처방하는 것처럼 급격 인상의 유혹에 빠지는 것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박태희·김도년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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