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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니가 그러니 살 찌지” “술집여자 같아서” 공포의 택시

중앙일보 2018.01.08 10:45
“이 XX야, 니가 그러니까 살이 찌는거야” … 공포를 모는 ‘엽기택시’들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50대 주부 A씨는 택시 타는게 겁이 난다. 얼마전 택시 안에서 겪은 일 때문이다. 목적지인 자신의 집 앞에 도착한 그는 결제를 위해 택시기사에게 신용카드를 건넸다. 그러자 기사는 “카드 단말기가 고장 났으니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요금은 3000원 정도였는데, A씨는 현금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당황한 A씨에게 기사는 “돈 3000원도 안 갖고 다니냐. 임대아파트에 살아서 무식하다”며 면박을 줬다.    

불친절, 승차거부보다 신고건수 많아
욕설형·협박형·성희롱형 유형도 다양
녹취·영상 등 증거자료 있으면 과태료
“일부의 문제가 전체로 비쳐줘선 안돼”
친절교육, 상시 모니터링 등 대책 시급
서울시, “신고 빈번한 기사는 집중관리”


 
결국 A씨는 근처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요금을 지불했다. A씨는 이 모든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녹취했고, 120다산콜을 통해 기사를 신고했다. 그는 “사는 곳을 비하해 수치심을 느꼈다. 앞으로 무서워서 택시를 못 타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기사는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된 행정처분을 받았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승객에 대한 일부 택시기사의 ‘언어폭력’이 도를 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택시불편신고 중 과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던 ‘승차거부’를 2015년 ‘불친절’ 신고가 추월했다. 지난해 1~11월 택시불편신고 2만407건에서도 ‘불친절’(6898건·33.8%)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승차거부’(6176건·30.2%) 신고 건수보다 많았다. 
 
김정선 서울시 교통지도과장은 “일부의 문제 이기는 하지만 승차거부를 했을 때 기사에게 돌아가는 불이익이 더 크다보니, 승객을 일단 태운 뒤 불친절하게 응대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승차거부는 과태료 부과 처분을 세 차례 받으면 택시운전 자격이 취소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20대 여성 직장인 B씨 역시 택시에서 불쾌한 일을 겪고 신고했다. 그는 체격이 좋은 남자친구와 함께 택시를 탔는데, 남자친구가 먼저 골목길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에 내렸다. 차를 돌릴수 있는 골목길이었지만, 기사는 짜증을 냈다. 급기야 기사는 창문을 내리더니 걸어가는 남자친구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이 XX야, 니가 그러니까 살이 찌는 거야.”
 
‘인신공격’ 이외에도 과태료가 부과된 기사의 ‘불친절’ 유형에는 협박·성희롱도 포함돼 있다. 30대 남성 직장인 C씨는 택시 호출 앱에 응하고도 수십 분간 연락이 두절된 기사에게 전화로 항의했다가 “죽여 버린다”는 협박을 받았다.

 
여성 승객에게는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일 것 같아서 호출에 응했다”며 얼굴을 쳐다보거나, “내 휴대전화에 있는 ‘야한사진’을 보라”고 강요한 경우도 있었다. 한 남성 승객은 자신이 요청하지 않은 경로로 온 기사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목덜미를 잡히는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일부 택시기사의 얘기다. 택시기사들은 불친절이 전체의 문제로 비춰지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기사 조욱천(58)씨는 “일부 기사의 그런 행동은 분명히 잘못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교통수단이 다양화되면서 택시 하루 승차율이 60%대로 떨어졌다. 열악해진 근무환경 속에 기사들의 스트레스가 크다”고 토로했다. 기사 정종진(58)씨는 “신고 시스템을 악용해 화풀이로 신고하는 승객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불친절 신고의 90%가 ‘증거불충분’으로 행정처분이 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주부 정경숙(48)씨는 “70대인 어머니와 함께 택시를 탔는데 내 또래의 기사가 어머니에게 짜증섞인 반말을 했다. 증거가 없어 신고를 못한 게 아직도 화가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친절 교육과 상시 모니터링의 부재, 심각한 구인난을 택시 불친절의 원인으로 꼽는다. 안기정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 연구위원은 “택시 서비스가 뛰어난 일본에는 정부·지자체로부터 독립된 택시서비스 관리기구가 있다. 전문가와 시민들로 구성된 이곳에서 기사에게 친절교육을 하고, 모니터링을 해 우수한 택시 회사는 인증을 해준다. 우리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만기 녹색교통 대표는 “기사 구인난이 심각하다보니 택시회사들은 ‘일단 뽑고 보자’는 식이다. 택시기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선 교통지도과장은 “신고가 자주 들어오는 기사는 일종의 블랙리스트화해 집중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불친절 신고는 120다산콜로 전화한 후 증거자료를 e메일(taxi120@seoul.go.kr)로 보내면 된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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