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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손자의 각별한 소통법

중앙선데이 2018.01.07 02:00 565호 32면 지면보기
BOOK 
할머니와 손자가 있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2학년 어린 손자를 위해 1년 동안 매일 따뜻한 조언을 담은 편지 같은 일기를 썼고, 이제 청소년이 된 손자는 책으로 나온 그 글을 3년간 읽고 또 읽어가며 독후감 같은 일기를 적었다. 시인 김초혜와 손자 조재면 군의 이야기다.  

『행복 편지』
저자: 김초혜 조재면
출판사: 해냄
가격: 1만4500원

 
사실 할머니와 손자란 얼마나 돈독한 관계인가. 그 내리사랑과 치사랑은 세상 어떤 추위라도 막아낼 수 있는 두툼한 장갑일 터다. 그런데 이 조손의 서로에 대한 애틋함은 각별하다. 우선 김 시인이 2008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쓴 글을 모아 2014년 출간한 『행복이』에는 영민한 손자를 향한 무한 애정과 칠십 평생 살아온 삶의 지혜가 구구절절 녹아있다. 손자는 2014년 중2부터 2016년 고1까지 정신없는 학창생활 와중에도 틈틈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과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적었다. 할머니의 일기와 손자의 3년치 일기를 날짜에 맞춰 교차편집한 것이 이 책 『행복 편지』다.  
 
시인의 충고는 실제적이다.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보자. “평소부터 사과와 양배추를 꼭 먹도록 해라. 약간의 꿀을 넣어 주스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둘째, 버섯은 풍부한 영양소에 비해 칼로리가 적은 다이어트 식품이며 면역력을 높이는 식품이다. 셋째, 하루 세 번, 3분씩 올바른 양치질을 하거라. 그리고 음식은 20번 이상은 씹어 먹어야 한다. 혹시 한쪽으로만 씹는 습관이 있다면 즉시, 꼭 고치도록 하거라. 한쪽으로만 씹으면 치열이 삐뚤어지고 잇몸병이 생기고 두통이나 어깨 근육통도 생긴단다. 씹는 동작이 머리의 혈액량을 늘리기 때문에 뇌세포의 대사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단다. 넷째, 가지와 적색 양배추와 포도를 많이 먹어야 한다. 공부로 피로한 눈을 회복시킨다. 다섯째,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자전거를 타는 습관을 갖도록 하거라.”  
 
이에 대해 중2 손자는 “사과라는 말만 들어도 토할 것 같은데, 다른 과일은 안 되나요?”라고 응석을 부리며 “그런데 할머니는 제가 사과를 안 먹는 것을 미리 알고 쓰신 것이네요”라고 감탄한다. 또 “아직 어린 제게 이렇게 어려운 글을 쓰셨으니 할머니는 제가 중학생이 될 줄을 미리 아신 것 같네요”라고 농담을 하다가 “저를 어른과 동등하게 대해 주시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할머니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존중해 주는지를 책을 보며 느꼈어요”라고 감사를 표한다(“어 참! 공부에 손자를 뺏겨서 분하다”는 할아버지 조정래 소설가에 대한 감사도 빼먹지 않는다).  
 
이 땅의 청소년이 겪는 고민이 고스란히 읽힌다는 점은 안타까우면서도 흥미롭다. 시험과 실수에 대한 불안과 초조, 점점 공부기계가 되는 듯한 삶에 대한 회의,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고민까지, 그의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는 모습은 삶의 이치를 하나씩 깨달아가는 성장 드라마다. “경쟁자를 험담하는 것은 그가 무섭다는 증거겠지요. 저는 내색을 안 하는 편입니다. 그건 네 인생이고 이건 내 인생이다, 라고 정리해버려요. 그를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는 편입니다”(195쪽)라거나 “할머니, 저는 저를 길들이는 조련사가 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조련시킬 수 없으니 먼저 저를 조련하겠습니다”(205쪽)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질풍노도의 모습을 보이던 조군의 2016년 12월17일자 일기는 그래서 반전이다. “할머니, 매일매일 똑같은 생활 속에서 그래도 변화를 느끼고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는 것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 마음을 열어놓고 대화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순간입니다. 서로 위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각박한 학교 생활에서 신선한 산소를 마시는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이지요.”
 
젊음은, 역시 좋다.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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