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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가슴이 울렁거리지?

중앙선데이 2018.01.07 02:00 565호 30면 지면보기
REVIEW & PREVIEW 
뉴저지의 외진 마을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 부부, 곧 패터슨(아담 드라이버)과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는 (부부가 아닐 수도 있다. 동거하는 연인일 수도) 여느 부부처럼 등을 돌리고 자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 부부가 아침에 잠에서 깨는 장면, 침대에서의 모습을 낮은 부감 쇼트로 자주 보여준다. 그럴 때마다 패터슨과 로라는 마주 보고 자고 있거나, 로라가 패터슨에 안겨 자고 있거나 한다. 아니면 로라를 등 뒤에서 패터슨이 껴안고 잠들어 있기도 하다.  

영화 ‘패터슨’
감독: 짐 자무쉬
배우: 아담 드라이버
골쉬프테 파라하니
등급: 12세 관람가

 
그리고 거의 항상 패터슨이 로라보다 먼저 눈을 뜬다.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내 로라가 ‘마법의 시계’라고 부르는 자신의 손목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살며시 여자의 이마나 뺨에 입을 맞춘 후 조용히 일어나 주방에서 시리얼을 먹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로라가 깨고, 아내는 몽롱한 듯 꿈 얘기를 한다. 당신의 쌍둥이를 갖는 꿈을 꿨다고. 혹은 페르시아에 갔는데 당신이 코끼리를 타고 있었다고.  
 
졸음에서 덜 깬 아내의 얘기를 뒤로 한 채 페터슨은 집을 나선다. 비뚤어진 우체통을 바로 세우고 아내가 싸 준 도시락 통을 든 채 천천히 직장을 향해 걷는다. 그는 패터슨 거리의 버스 운전사다.
 
아니 사실 그, 그러니까 패터슨은 자신과 이름이 같은 패터슨 가(街)의 이름없는 시인이다. 그는 뉴저지 출신의 유명하면서도 위대한 시인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를 숭앙하며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고 앨런 긴즈버그가 여기, 패터슨 출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알고 보면 꽤나 지식인이다. 그는 버스 회사로 가는 길목에서나, 혹은 운행을 시작하기 전에, 그것도 아니면 버스를 운전하면서 내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시를 쓰고 나중에 그 시를 자신의 ‘시크릿 노트’에 옮겨 적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냥이 있어요 / 차분하고도 격렬하게 / 오래도록 불꽃으로 타오를 준비를 하고 / 사랑하는 여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줄지 몰라요 / 난생 처음이자 / 다시 없을 불꽃을 / 이 모든 걸 당신께 드립니다 / 그 불꽃은 당신이 내게 주었던 것 / 난 담배가 되고 당신은 성냥이 되어 / 혹은 내가 성냥이 되고 당신은 담배가 되어 / 키스로 함께 타 올라 / 천국을 향해 피어 오르리라”
 
그럴 즈음이면 일상의 많은 사람들이 패터슨의 주변을 비켜 지나간다. 버스 운행 매니저인 도니(리즈완 만지)는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불평을 늘어 놓는다. 장모가 집에 와 눌러앉았다는 둥, 딸 애가 바이올린을 시작했는데 시끄러워 죽겠다는 둥, 기르는 고양이가 당뇨에 걸렸는데 약값이 장난 아니라는 둥.  
 
패터슨은 버스를 운전하면서 사람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다. 아니 그냥 들린다. 두 명의 청년이 여자를 ‘낚으려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지 잘난 척 떠드는 얘기에서부터 대학생 혹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아이 둘이 패터슨 마을의 이탈리아인 학살 사건의 역사 얘기를 주고 받는 고담준론까지, 버스 기사 패터슨의 일상은 알고 보면 매우 다채롭다.  
 
밤에 가끔 들르는 흑인 주인 닥(배리 사바카 헨리)이 운영하는 바에서는 실연에 빠진 한 남자가 (가짜) 권총을 들고 자살 소동을 벌이는 것을 영웅적으로 막아내기까지 한다. 패터슨의 삶은 지루하고 고요한 듯, 평범하고 평화로운 듯, 알고 보면 그 안에도 ‘요동(搖動)’이 일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절대로 어마어마하지 않은 척, 사실은 항상 압도적인 무언가를 선사하는 미국의  ‘영화 시인’ 아니면 ‘시인 영화감독’ 짐 자무쉬는 이번에 또 다른 걸작 ‘패터슨’을 만들어 내면서 우리, 특히 예술가 연하는 인간들에게 혹은 지식인인 척하는 속물들에게 이것만큼은 제대로 알라며 명징(明澄)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 예술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가이다. 혹은 우리의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은 위대한 예술이 숨어 있는 가이다.  
 
우리들은 대개 바로 옆에 있는 시 한 구절을 발견해 내지 못하는 주제에 여기저기서 자꾸 예술을 떠들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버스 기사인 패터슨처럼 조용히 일상을 응시해 볼 일이다. 관조(觀照)해 낼 줄 아는 삶이야말로 예술적인 무언가를 성취해내도록 한다. 아마도 짐 자무쉬는 그 점을 깨닫고 통찰해 낸 모양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부러움이 일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패터슨’은 왈칵 눈물을 흘리게 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장면쯤에서 자꾸 가슴을 울렁거린다. 그건 왜일까? 많은 사람들이 직접 확인해 봤으면 좋겠다. 시를 읽고, 영화를 보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공감을 느낀다는 것의 실체가 눈 앞에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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