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형 판타지’에 거는 기대

중앙선데이 2018.01.07 02:00 565호 29면 지면보기
CULTURE TALK │ ‘신과 함께’ 천만 영화 등극의 의미
#. 영화 ‘신과 함께’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솔직히 예상 못했다. 잘 압축된 스토리와 감동적인 엔딩에 점수를 줄 만 했지만, 진기한 변호사와 강림의 흡수합병 캐릭터와 자홍의 소방관 둔갑에 대한 원작 팬들의 실망, 신파 코드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연말시즌 다함께 볼 만한 ‘착한 영화’라서 국민적 사랑을 받은 걸까. 특히 청소년층의 지지도 상당한데, 우리집 연예통신 중딩 딸에 의하면 요즘 또래들 SNS는 주연배우 하정우 관련 영상으로 도배되고 있단다. 이유야 어떻든 ‘신과 함께’의 성공은 ‘한국형 판타지 시대의 개막’에 의미를 찾고 싶다. 

 
#. 2017 공연예술 창작산실 우수신작으로 선정된 뮤지컬 ‘줄리앤폴’(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도 판타지의 힘을 이야기한다. 19세기 말 파리의 흉물로 통하던 에펠탑이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과정에 상상력을 동원해 한 편의 동화 같은 러브 판타지를 엮어냈다. 자석을 삼켜버린 여공과 철로 된 손을 가진 곡예사의 슬픈 사랑이 마법처럼 기적을 일으켜 모든 이가 에펠탑을 사랑의 상징으로 여기게 됐다는 낭만적인 이야기는 온전한 창작이지만, 그런 전설이 있을 법도 하다. 판타지라는 ‘마법의 주문’에 현실 세계의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 사실 ‘신과 함께’를 보며 애들이 어린 시절 매일 되풀이해 보던 극장판 ‘파워레인저’를 떠올렸다. ‘파워레인저’는 일본에서 1975년부터 매년 시리즈로 제작되어 온 어린이 판타지물인데,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처럼 아예 판타지 월드가 아니라 현실 공간과 판타지가 마구 섞이는 세계관이나 차례로 관문을 헤쳐 나가는 전개, 2% 아쉬운 편집과 CG기술도 어딘가 닮았다. 
 
애들용이라고 하찮게 볼게 아니다. 90년대부터 매년 미국판으로 리메이크되고, 유럽과 동남아 방영은 물론 전세계 완구 시장을 장악하며 어린이와 부모들의 감수성까지 지배해 온 데는 특유의 감동 코드가 있다. 악당 조직에 맞서는 용기 뒤로 다섯 형제와 그리운 엄마의 사랑이 깔린 ‘파워레인저 매직포스’(2005)를 보며 나도 애들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다. 
 
#. ‘신과 함께’를 보며 눈물을 쏟는 이유도 비슷하다. ‘신파’가 아니라 현실에 사라진 ‘가족 사랑 판타지’라고 하면 좋겠다. 죄와 벌을 논하는 척, 장애에 중병을 앓는 가난한 엄마와 두 아들의 속깊은 사랑 이야기가 엄마를 가진 모든 사람과 자식을 가진 모든 엄마의 가슴을 적실 수밖에. 가족 간 흉악 범죄가 유난히 많았던 지난해, 저승과 지옥 소재 보다 가족 사랑이 더 판타지였던 것 같다. 장애가 있다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자녀를, 부모를 쉽게 버리는 현실이 ‘가족 사랑 판타지’의 출현을 간절히 원했던 것 아닐까. ‘천만 영화’에 등극한 첫 ‘한국형 판타지 영화’가 영화사의 기록을 넘어 팍팍한 현실도 촉촉하게 바꾸는 새해가 되기를.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