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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가는 어린 시절 분초를 아껴 즐기자

중앙선데이 2018.01.07 01:34 565호 28면 지면보기
이호영의 동양학 가라사대
주희

주희

한때 주희(朱熹)의 권학문(勸學文)은 학교 급훈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어린 시절은 금방 지나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少年易老, 學難成) 일분일초라도 아끼자(一寸光陰, 不可輕)”란 구절은 금과옥조로 칠판 위 액자에서 빛났다.
 
역시 세뇌는 아이들에게 잘 먹힌다. 어릴 적에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이 들어 다시 보니 순 엉터리 비논리다. 주희의 말대로 어린 시절은 금방 지나간다. 당연하다. 어린아이의 생체시계는 어른, 특히 노인보다 훨씬 빠르기에 어린 시절은 어제와 같은데 오늘은 아직 점심 전이다. 이리 보자면 옛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시간과 달리 ‘배움’에 와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배움은 무조건 어려운 게 아니다. 학문에 따라 난이도가 다르다. 타고난 적성에 따라 고르면 수월하게 익힐 수 있는 반면 일부 천재만 가능한 분야도 있다. 재능도 없으면서 과거 공부처럼 죽으라고 경전만 80만 자를 외워야 하는 학문이 그렇다. 수만 대 일의 살인적 경쟁률의 시험에 일생을 바쳐도 급제는커녕 이루기도 어렵다. 천재와 둔재의 차이가 가장 확실히 드러나는 분야가 외우기다. 주희가 말하는 학문이 바로 경전외우기다.
 
의아한 건 ‘어린 시절’과 ‘배움’의 연결이다. 둘 사이에 어떤 필연성도 없어 보인다. 시간과 고시합격은 별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주희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 사이에 슬그머니 ‘배움’을 집어넣어 마치 배움이 삶과 시간의 목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배움, 출세와 고시를 위해 청춘을 바치라는 결론을 유도하고 있다. 아직도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고 의도가 좋더라도 사기는 범죄다.
 
만약 위에서 ‘배움’을 빼면 ‘어린 시절’과 ‘시간을 아끼자’가 연결된다. 모두 시간이 모티브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중간에 ‘배움’은 목적이 아닌 무리수였다는 말이다. 문제는 학교나 선생님들이 아직도 ‘어릴 적’과 ‘공부’를 강조한다는 데 있다. 학교의 목적을 고시로 착각하고, 대입을 고등학교의 목적으로 여겨서다. 우리네 고등학교의 교육이 아직 이 모양이다.
 
스쿨(school)을 학교(學校)로 잘못 번역해서다. 그리스에서 스쿨이란 자유로운 토론과 교류를 의미한다. 반면 학교는 대입과 고시를 위해 분초를 아껴 외우기에 매진하는 곳이다. 외우기는 재능이지 시간이 아니다. 둘을 비교하는 건 코끼리와 보도블록을 비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인생 목표를 ‘고시패스’에 두는 건 아동학대다.
 
방학이다. 방학이면 많은 학생이 점심이나 저녁을 편의점에서 때우며 풀코스로 학원에 다닌다. 요즘 학교나 학원들이 학생들을 스마트하게 관리하기에 땡땡이를 치면 바로 연락이 간다. 집에서나 학원에서나 어린 시절은 고난이다. 방학의 학원이 괴롭더라도 명심하자.
 
어린 시절 방학은 더 빨리 지나간다. 계획표를 잘 짜서 분초를 아껴 즐기자.
 

 
이호영 현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연구원. 서강대 종교학과 학사·석사. 런던대학교(S.O.A.S.) 박사. 동양학 전공. 『공자의 축구 양주의 골프』『여자의 속사정, 남자의 겉치레』『스타워즈 파보기』주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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