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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평창 오면 한국은 평양 가려나

중앙선데이 2018.01.07 01:00 565호 31면 지면보기
존 에버라드 칼럼
북한이 판문점 핫라인 복원을 통해 마침내 한국과의 대화에 동의했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화는 직설적일 것 같지도, 평창 겨울올림픽 참석 문제만으로 국한되지도 않을 것 같다. 향후 대화를 낙관할 수도 있지만 너무 그러진 말아야 한다.

국제 제재로 경제사정 나빠진 북한
돌연 남북회담 제안해 돌파구 모색
속셈은 한·미 훈련 연기와 동맹 분열
북 정권 수립 70년 한국 측 카드 주목

 
평창에 대표단을 파견하겠다는 김정은의 신년사가 나온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두 가지 대목이 특히 중요하다. 이번 대화에 임하는 북한의 태도와 경제 사정이다. 2017년 마지막 칼럼에서 독자들은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의 12월 5~8일 평양 방문 이후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을 것이다. 방북 기간 중 펠트먼 차장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 완성을 선언한 지금 미국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한은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지 않았지만 때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방북 후 보고에서 북한이 대화를 서두르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언젠가 미국과 대화하겠지만 대미 레버리지를 최대한 확보했을 때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고 했다.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 재개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어 12월 30일 조선중앙통신도 ‘한반도 상황에 대한 상세 보고서’에서 “(북한의) 정책에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말라. 무적의 힘은 약화되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딱 이틀 후인 1월 1일 김정은은 “(겨울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으며 조만간 남북 당국이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을 위협하는 발언을 빼놓지 않았다. ‘책상 위에 핵단추가 있다’는 그의 수사(修辭)는 예전만큼 거친 것이었다. 또 제재도, 미국과의 대화도 언급하지 않았다.
 
2018년 김정은 신년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또 다른 대목은 북한 경제다. 2017년 평양에서는 적어도 두 차례 경제 문제에 대한 고위급 회의가 있었다. 가뭄으로 식량 생산량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유엔 제재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두고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2017년 북한 경제사정이 생각보다 나쁘고 조만간 하향 수정된 공식 통계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통과된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는 강한 제재다. 제대로 집행만 된다면 북한이 느끼는 경제적 고통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은 제재가 철저히 이행되지 않기를 바라는데 최근 한국이 두 차례에 걸쳐 북한 선박의 공해상 석유 환적을 차단한 것은 북한에겐 치명타였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냈다. 먼저 다른 선주들이 제재를 위반할 엄두를 내지 못 하게 했다. 다음으로 중국이 북한을 돕는 일에 더욱 신중하게 만들었다. 중국이 이번 불법 환적에 얼마나 개입해 있는지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이 딱 걸렸다’는 트윗은 베이징이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한반도 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이유로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원치 않는데 유엔 제재를 위반해 북한을 돕는 일이 발각될 경우 미·중 관계가 얼마나 손상되는 지를 중국은 잘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신년사가 나왔다. 연설의 대부분은 경제에 관한 것이었고 경제발전 성과에 대한 우려를 분명하게 밝혔다. 예를 들면 “농업과 수산 전선에서 양양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분이 그렇다. 식량 공급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경공업 공장들의 설비와 생산공정을 로력절약형, 전기절약형으로 개조하고 국내 원료와 자재로 다양하고 질 좋은 소비품들을 더 많이 생산 공급해야 한다”는 부분도 흥미롭다. 이는 전기와 수입 원자재 부족을 인정한 것이다. 북한이 태도를 바꾼 이유 중 하나가 한국과의 화해를 통해 이런 어려움을 완화시키려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을까. 나는 해답이 지난해 12월 19일에 있었던 “겨울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할 것을 미국에 요청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있다고 본다. 평양 지도부에게 이 발언은 12월의 어둠 속 한줄기 빛이었을 것이다. 연례훈련 취소 또는 축소는 북한의 오랜 목표였다. 연기는 그런 과정의 한 단계이고 한번 연기되면 또다시 연기될 수 있다.
 
북한은 또 다른 전략적 목표인 한·미 동맹을 분열시킬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려는 듯하다. 워싱턴은 연기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면 한·미 동맹의 분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이 북한 대표단의 겨울올림픽 파견 등을 얻기 위해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는 무언가를 양보한다면 한·미 동맹 분열 효과를 낼 수 있다.
 
이건 단순히 스포츠의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북한의 초기 요구사항까지 제시했다. 대표단 참가를 위해 한국이 “북한을 겨냥한 핵 전쟁이라는 미국의 무모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북한의 의도가 훈련 취소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북한은 향후 한국과의 대화에서 제재 완화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둘 다 한·미 관계에 부담이고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더 많다. 이산가족 상봉의 대가로 워싱턴이 혐오하는 개성공단 재개를 요구할 지도 모른다. 대화가 진전될수록 이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빨리 얻지 못 하면 한국을 비난하면서 대화 장을 벗어날 것이다. 반면 북한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는다면 대북 제재 레짐은 약화될 것이다. 이는 자체로도 매우 나쁜 일이지만 한·미 동맹을 약화시킬 것이다
 
마지막 한 가지 포인트가 더 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2018년을 겨울올림픽의 해이자 북한정권 수립 70주년이라고 말했다. 만약 북한이 올림픽 대표단을 한국에 보낸다면 한국이 9월 9일 평양에 정권수립 축하단을 보낼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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