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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계는 죽고사는 문제, 한·중 관계는 먹고사는 문제

중앙선데이 2018.01.07 00:02 565호 8면 지면보기
[김환영의 지식 톡톡톡] 『학문과 정치』 펴낸 양성철 전 주미대사
 

북핵 해결까지 한·미 동맹 훼손 안 돼
중국과도 언젠가는 안보기둥 세워야

고등학교 떨어진 뒤 울며 공부
DJ 통역 인연으로 의원·주미대사

21세기는 출세가 의미 없어진 시대
처음엔 고생하더라도 창업해야

학생 때부터 좋아했던 막스 베버
AI시대에도 유효할까 9년간 씨름

양성철 전 주미대사는 29세 나이에 교수가 됐다. 학생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콧수염을 기르다 보니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신인섭 기자

양성철 전 주미대사는 29세 나이에 교수가 됐다. 학생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콧수염을 기르다 보니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신인섭 기자

사람은 총이나 칼, 핵무기 같은 무력 수단으로만 싸우는 게 아니다. 생각·사상·이념으로도 싸운다. 무기 또한 생각에서 나온다. 20세기 냉전은 카를 마르크스(1818~1883)와 막스 베버(1864~1920)라는 양대 사상가·철학자를 각기 추종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베버주의자들(Weberians)의 전장이기도 했다. 특히 사회과학이나 정치사회학 분야로 국한해 볼 때 그러했다. 미국이 소련을 이긴 것은 ‘사상력’이 아니라 군사력·경제력 덕분이라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물질 못지않게 정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거쳐 갈 수밖에 없는 인물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유명한 막스 베버다. 최근 양성철 전 주미대사가 『학문과 정치: 막스 베버와 21세기 전자인간시대』(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를 출간했다. 본래 학창시절부터 베버를 좋아했다던 저자는 이 책에서 소위 제4차 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I) 시대에 베버의 사상이 얼마만큼 유효한지를 따진다. 저자의 경력은 다채롭다. 기자(1963~65년 한국일보)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학자(켄터키대·경희대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의 길을 걷다가 정치인(1996~2000년 제15대 국회의원), 외교관(2000~2003년 주미대사)이 됐으며 다시 학자(2003~2008 고려대 석좌교수)가 됐다. 학창시절부터 베버에 매료됐던 저자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베버를 중심으로 학문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씨름했다. 저자를 지난 3일 롯데호텔 비즈니스센터에서 인터뷰했다.
 
이번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순수한 학술 책은 아니다. 1970년에 대학교수가 됐는데 정치학과가 아니라 사회과학과(Department of Social Sciences) 교수였다. 세계문명사(World Civilization), 서구문명사(Western Civilization)을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관점이 좀 커졌다. 정치학을 여러 학문 중에서 하나로 보려고 하는 생각을 쭉 해 왔다. 그래서 이번 책도 쓰게 됐다. 9년 걸렸다. 그 중간에 다른 책도 2, 3권 썼다.”
 
언론계·학계·관계에서 두루 일했다. 어디가 제일 좋았는가.
“다 좋았다. 언론계 생활이 제일 짧았다. 2년도 못 하고 미국으로 유학 갔다.”
 
현실 정치 세계로 들어간 후에 후회는 없었는가.
“솔직히 저는 학자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북관계·통일문제를 하다 보니까 정치에도 몸담게 됐다. 사실은 학자로 끝나야 마땅했다. 김대중 대통령(DJ)과 인연도 있어서 소위 영입 케이스로 들어갔다. 좋았다. 김대중 대통령을 모시는 가운데 그를 깊이 알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DJ 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지냈는데 DJ는 처음 어떻게 알게 됐는가.
“김대중 대통령 일지에 보면 1966년이라고 하는데 제 기억으로는 1965년 가을로 기억한다. 당시 김대중 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 세 분이 미 국무부 초청으로 미 본토에 가는 길에 하와이에 왔다. 저도 미국에 금방 와서 영어도 서툰데 하와이대 이스트웨스트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국무부 초청으로 젊은 국회의원 세 분이 오시는데 통역을 담당해 주면 좋겠다’라고 해서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주미 한국대사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외교부 장관이나 총리 출신이 주미대사를 맡기도 한다.
“미국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이다. 미국은 해방·한국전쟁·휴전·경제발전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나라다. 미국은 우리에게 군사·외교·안보의 최전선이다. 미국은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 죽고사는 문제와 밀접하다.”
 
 그렇다면 중국은?
“한·중 관계는 아직은 먹고사는 문제에 국한된다.”
 
상투적 표현으로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고 한다. 한국의 동맹관계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 아닌가.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한·미 동맹을 절대로 훼손하면 안 된다. 한국이 중국과 ‘경제 기둥(pillar)’을 세웠으니까 언젠가는 안보 기둥도 세워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김대중 정부부터 역대 정부가 노력했다.”
 
중국은 ‘착한 한국보다는 말 안 듣는 못된 북한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중국이 잘못 본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중국이 북한을 보는 눈이 서서히 바뀌고는 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지정학적으로 북한이라는 영토적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21세기에 지리적 완충지대에 집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냉전기 미·소 관계와 오늘의 미·중 관계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중국이 다시 북한을 편들고 한·미 동맹을 상대로 전쟁까지 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지금 중국과 미국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맞물려 있다.”
 
주미대사로서 점수를 스스로 준다면.
“그건 안 하겠다. 저 스스로 F를 줄 수 있고 A를 줄 수도 있겠지만, 점수는 언론인들이나 역사가에게 맡기겠다. ‘햇볕정책 전도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 도시 100여 군데를 다니며 열심히 설득했다.”
 
외교·안보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엘리트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한 개인이건 국가의 지도자건 오만이나 자만은 정말 금기다. 또 지나치게 자신을 비하해도 안 된다.”
 
정치계·관계로 안 갔다면 학자로서 더 많은 업적을 쌓을 수도 있었는데 아쉬움은 없는지.
“그게 왜 안 되냐면···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세 살 때 그리스어를 배우고 여섯 살 때 라틴어를 배웠다. 독일어·프랑스어를 10대 때 끝냈다. 공리주의자였던 아버지 제임스 밀(1773~1836)은 에든버러대학을 나왔지만 아들을 학교로 보내지 않았다. 저는 한문도 모른다. 우리 작은 형만 해도 여섯 살 때 천자문을 뗐다. 제 할아버지께서 ‘너는 왜 공부도 안 하고 뭐하느냐’고 하셨다. 제가 좀 안다는 게 영어밖에 없으니 한계가 있다.”
 
노력하면 머리가 나쁘거나 흑수저라도 미래가 있을까.
“저는 국회의원 할 때도 책을 썼다. 열심히 살았다. 저는 머리가 안 좋기 때문에 열심히 했다. 지나고 보니까 머리가 좋은 것보다는 열심히 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 좋지만 게으른 사람은 잘 안 되던가.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중학교 때 공부 잘하던 애가 고등학교 때 못하고,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하던 애가 대학 가서 못하고. 대학에서 별 볼 일 없었는데 사회에 가서 잘하고··· 인생은 마라톤이다.”
 
대략 몇 살 때 ‘나는 머리가 나쁘니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가.
“글쎄. 집에서도 형제 중에 저를 제일 못났다고 했다. 저는 고등학교도 한 번 떨어졌다. 떨어지고 한나절 운 게 생각난다. 지금 서울에서 고향 곡성까지 가는데 2시간 15분 걸린다. 그때는 전주에서 곡성까지도 반나절이 걸렸다. 그 길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울고 갔다.”
 
형제 중 세속적으로는 양 대사께서 가장 출세한 게 아닌가.
“출세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업적이 없으면 출세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한다. 21세기 전자인간 시대에 출세가 무슨 소용 있는가.”
 
학문이나 정치의 세계에 진출하려는 청소년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제가 ‘터’와 ‘틀’이 들어가는 방정식을 하나 만들었다. ‘터’는 쉽게 안 바뀐다. 문화·풍습·풍속 같은 것들이 틀이다. 예컨대 ‘기독교를 믿는다’ ‘불교를 믿는다’가 틀이다. 청소년들은 열린 마음으로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인공지능(AI)에 익숙한 사람이 돼야 한다. 소위 명문대나 대기업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시대다. 케케묵은 얘기다. 처음에는 고생하더라도 창업을 해야 한다.”
 
일반 독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학자들은 신문을 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신문은 그냥 한번 읽고 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신문이 가장 빠르다. 학자나 전문가도 신문보다는 느리다. 오죽하면 ‘데드라인(deadline)’이라고 하겠는가. 데드라인 못 맞추면 죽는다는 이야기 아닌가.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이 신문이고 방송이다. 저는 매일 신문 4개를 보고 스크랩한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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