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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당방위와 과잉방어 사이···안타까운 옥살이 많다

중앙일보 2018.01.06 02:30 종합 16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기자]

[일러스트=김회룡기자]

뉴스 속으로 │ '동거녀 살해' 중국인 감형으로 본 정당방위 
 
“그녀가 먼저 제 복부를 두 차례 찔렀습니다. 살아야겠다는 절박함에 화까지 뒤섞여서 그만….” 살인 혐의로 기소된 중국 국적의 김모(40)씨는 2012년 12월 한 지방법원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이렇게 호소했다. 김씨는 “동거까지 했던 여자친구가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데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살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사망에 이르게 한 점은 인정하지만 예상치 못한 비극이었다는 주장이었다.

복부 두 차례 찔리자 상대 살해
과잉방위 살인죄로 8년형 받아

여동생 성폭행 막으려다 감방행
드라마 ‘슬감’ 제혁 같은 현실 많아

미국 “개인 집은 절대적인 성역”
칩입자 총으로 사살해도 무죄

“가정폭력 등 정당방위 폭 넓혀야”
정춘숙 의원 특례법 개정안 발의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유죄라며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통상적인 살인죄 양형 기준(징역 9~13년)이 그대로 적용됐다. 2심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징역 2년을 감형하는 데 그쳤다. 김씨는 상고를 포기해 징역 8년형이 확정됐다.
 
판결문에 적힌 김씨의 범죄 사실엔 딱한 사연과 참혹함이 뒤섞여 있었다. 같이 살다가 헤어진 20대 여자친구의 집을 찾은 그는 “다시 함께 살자”고 매달렸다. 실랑이가 벌어졌다. 상대방이 휘두른 흉기에 먼저 찔린 김씨가 반격에 나섰다. 범행 후 112에 신고한뒤 자살 을 시도했다. 그 와중에 여자친구가 경찰과 소방 구조대원에게 빨리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생과 사가 엇갈렸다. 김씨는 4시간의 응급 수술 끝에 혈액 20봉지(약 8000cc)를 수혈받고 홀로 목숨을 건졌다. 
 
정당방위 인정 안 됐지만 사면대상 포함
정당방위

정당방위

수감 생활 5년 3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29일 김씨는 법무부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접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특별사면에 포함돼 남은 형기(2년 9개월) 중 절반을 감형받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사면 대상자(6444명)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이자 강력범이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당방위적 측면이 있고 사연이 딱해 불우수형자로 선정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김씨의 특별사면을 놓고 “이례적”이라고 평했다. 국내 형법에서 인정받기 힘든 ‘정당방위’가 사면의 참작 사유로 고려됐다는 이유에서다.
 
형법 21조는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라고 규정한다. 명료해보이는 이 한 문장은 실제 범죄 현장에선 상당히 까다롭게 적용된다. 부당침해 행위의 시점을 ‘현재의’로 적은 표현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폭행 피해자가 정당방위를 인정 받으려면 가해자의 폭행을 멈추게 할 정도의 반격만 해야 한다. 추가 폭행(미래의 위협)을 우려해 확실히 제압하려다 상대방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히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탁경국 변호사는 “범행 현장에서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하려다 되레 ‘과잉방위’로 처벌받는 경우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현행 형법이 규정한 정당방위 요건이 까다롭고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심야에 침입한 도둑을 잡다가 집 주인이 되레 상해치사로 처벌받는 경우도 있다. 2014년 3월 강원도 원주시 한 주택가에서 벌어진 이른바 ‘도둑 뇌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집주인 최모(24)씨는 2층 거실에서 서랍장을 뒤지던 김모(당시 55세)씨를 발견했다. 격투를 벌이다 뇌사상태에 빠뜨렸다. 김씨는 그해 12월에 사망했다. 최씨의 행위는 재판 과정에서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씨가 술에 취해 있었고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는데 최씨가 과잉 대응을 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최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최종 선고했다.
 
37년 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한 김모(62·여)씨도 역시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재판 도중 김씨는 “사건 당일에도 남편의 폭력을 이기지 못해 그를 돌로 내리쳤다고 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남편이 쓰러져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음에도 가해 행위가 계속됐다”고 판단해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사안은 당장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소극적 방어 행위’가 대부분이다. 사이가 좋지않은 이웃이 문 앞에 찾아와 자신을 끌어내려 하자 그를 걷어차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 사건(2014년)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됐다. 문 뒤에 임신 중인 아내와 4세 쌍둥이가 있었던 점이 고려됐다. 2011년 자신보다 열 살 어린 아파트 부녀회장과 시비가 붙어 멱살을 잡히자 머리채를 붙잡고 싸운 50대 주부도 처벌받지 않았다.
 
정당방위를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은 TV 드라마 소재로도 등장했다. tvN에서 방영 중인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주인공 제혁(박해수 분)은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범인을 추격해 몸싸움을 벌이다 그를 혼수상태로 만들었다. 그로 인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제혁이 인정 받은 정당방위의 범위는 성폭행하려던 범인이 제압당해 범행을 멈춘 순간까지였다. 범의(犯意)를 잃은 성폭행 미수자를 쫓아가 때린 것은 과잉방위가 됐다.
 
배우 이태곤(41)씨는 지난해 폭행 사건에 휘말렸다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지난해 1월 수원의 한 호프집에서 반말로 악수를 청한 일반인에게 일방적으로 맞아 코뼈가 부러졌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이씨가 저항하며 몸싸움을 벌인 것이 쌍방 폭행인지를 조사했다. 이씨는 이 사건 4개월 뒤 TV 토크쇼에 출연해 “맞은 사람이 한참 후라도 반격을 시도하면 쌍방폭행이라고 하더라”며 정당방위의 맹점을 지적했다.
  
정당방위 관련 주요 판례

정당방위 관련 주요 판례

미국은 정당방위 인정 요건 관대
한국 법 체계가 정당방위를 까다롭게 규정한 것은 독일·일본 등 대륙법의 영향 때문이다. 대륙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 원칙에 따른 무한보복을 막도록 고안됐다. 반면 미국에선 정당방위의 범위를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정당방위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영미권의 문화적 풍토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특히 주거 침입에 대해선 어떠한 방어행위도 허용된다. “집은 자신만의 성(castle)이며, 그 영역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17세기 영국 판사인 에드워드 코크의 주장에 입각해서다. 이른바 ‘캐슬 독트린’으로 사적 공간에 침입한 자에 대해선 사살해도 기소가 불가능하다는 미국의 관습법으로 자리잡았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총기 사용이 자유로워 정당방위의 범위를 넓게 해석하는 측면이 있다”며 “경찰이 범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총기 사용을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범죄 상황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왕따’ 피해 학생이 가해자를 죽인 사건이 정당방위로 판단돼 무죄 판결을 받은 경우도 있다. 조지 서베이드라(당시 14세)가 같은 학교에 다니며 자신을 따돌림한 딜런 누노(당시 16세)를 버스 정류장에서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2011년)이다. 당시 미 플로리다주 법원은 서베이드라에게 정당방위를 적용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서베이드라가 사건 당일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딜런에게 괴롭힘과 구타를 당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에선 가정폭력 피해를 중심으로 정당방위 인정 폭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 5일 ‘가정폭력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제출했다. 정 의원은 “지속적이거나 위협적인 가정폭력 상황을 피하기 위해 발생하는 정당방위 행위에 대해서는 그 인정의 범위를 좀 더 넓혀줘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선 47년 간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자클린 소바주(70)가 2016년 말에 영구사면됐다. 2014년 10월 프랑스 법정에서 살인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지 2년만이다. 소바주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자신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음날 남편을 살해했다. 딸 3명과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성적 학대도 살해 동기가 됐다.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면 촉구 운동이 견인해 낸 결과다.
 
김영민·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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