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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알바 미화원' 고용, 경비원은 해고…최저임금 역설

중앙일보 2018.01.06 02:30 종합 1면 지면보기
연세대 노천극장을 10년째 지키고 있는 경비원 김모(66)씨는 최근 정년을 맞은 동료들을 떠나보냈다. 매일 오후 6시에 맞교대를 하던 동료 대신 이제 무인 자동화 기계가 그를 맞는다. 연세대는 지난달부터 산학협동관·노천극장 등 경비 초소를 폐쇄하고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했다. 
경비 노동자들이 떠난 자리를 자동화 기계로 채운 것이다. 김씨는 "지금은 일을 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 가고 있지만 언제 자리를 빼앗길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정년퇴직 직원 자리 알바 인력·자동화 기계로
노동자들 "학교가 나쁜 일자리 만든다" 비판
학교 "인건비 상승으로 풀타임 채용은 부담"

압구정 현대APT 경비원들은 해고 통보 받아
편의점·패스트푸드점은 알바·영업시간 축소
"노동 환경, 비정규직→알바→기계로 밀려"

 4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본관에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홍익대분회 소속 비정규직 청소·경비노동자들이 홍익대의 청소노동자 해고 통지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본관에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홍익대분회 소속 비정규직 청소·경비노동자들이 홍익대의 청소노동자 해고 통지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연세대에서는 714명의 청소·경비인력 중 32명이 정년 퇴임했다. 학교는 32명 중 5명을 제외한 27명의 자리를 하루 3시간 근무하는 파트타임 인력, 자동화 기계 등으로 채웠다. 학교 방침에 반대하는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연일 교내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5일 오후 연세대 신촌 캠퍼스 곳곳에는 '돈이 없어서 알바를 쓴다는 연세대' '존경하고 존중받는 대학 만드신다던 총장님 이중인격이십니까?'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제작해 배포한 최저임금 안내문. [사진 최저임금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제작해 배포한 최저임금 안내문. [사진 최저임금위원회]

 
올해 최저시급이 기존 6470원에서 7530원으로 역대 최고 인상률(16.4%)로 오르면서 노동시장 곳곳에선 크고 작은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대학가에서는 전일제 비정규직 노동자를 줄이고 이 자리를 시간제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대체하려는 학교와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들 간의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비정규직 풀타임→아르바이트 인력→자동화 기계 순으로 한 단계씩 내밀리며 노동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셈이다. 
 
 
고려대·연세대·홍익대 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분회를 둔 서울 시내 대학 10여 곳은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올해 학내 비정규직 시급을 청소 직군 기준 6950원에서 7780원으로 올렸다. 이후 고려대는 지난달 청소노동자 10명이 정년퇴직한 자리를 파트타임 근무자들을 고용해 채울 계획을 세웠다. 홍익대는 미화 용역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기존 청소노동자 4명을 해고했다.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난이 계속되고 있다'며 인건비가 오른 만큼 풀타임 근로자를 채용하는 건 부담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기존 청소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변하지 않았고 자연 감소 인력만을 단시간 근로자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자들의 반발은 거세다. 5일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은 교내에서 집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 들어 전국민적 염원인 최저임금이 인상됐지만 적립금을 수천억원씩 쌓아놓는 대학 자본들이 임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청소노동자와 학생들도 이날 오후 학교 중앙광장에서 "비정규직을 없애지는 못할망정 학교가 나쁜 일자리만 만들고 있다"며 규탄대회를 열었다.
 
한 아파트 경비원이 아파트 입구 길가에 버려진 담배 꽁초와 휴지 등을 청소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 아파트 경비원이 아파트 입구 길가에 버려진 담배 꽁초와 휴지 등을 청소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아파트 경비원들은 해고 위기
서울 압구정동 구 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경비원 전원에게 지난달 28일 해고 예고 통지서를 보냈다. 경비원 94명 전원을 오는 31일부로 해고한다는 내용이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2일 주민 공고를 통해 "주민 서비스 향상을 도모하고자 경비원·관리원·미화원 등 업무를 세분화해 각 업무에 대한 외부 용역을 맡기기로 했다"고 전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른 점, 지난해 정부가 '경비원에게 택배·분리수거 등 부가적 업무를 과도하게 시키는 행위'를 규제하겠다고 밝힌 점 등이 외부 위탁 결정의 주된 이유였다.
 
입주자대표회의는 해고된 경비원들을 용역회사를 통해 재고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아파트의 한 경비원은 "아직 어떤 식으로 고용 승계가 이뤄질지 몰라 속수무책으로 회사 측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경비원 노조는 "노동부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 강남의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의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연합뉴스]

 
◇알바생 줄이고 직접 일하는 사장님
12년째 서울 신촌 인근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문석현(42)씨는 새해부터 주말에 직접 나가 일을 하고 있다. 문씨는 "원래 주말에는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려고 알바생을 썼는데 시급이 인상되면서 지출이 늘어 금·토 6시간씩 일하게 됐다. 지출을 줄이려면 어쩔 수 없다"며 "매년 매출은 그대로인데 월세는 오르고 시급은 껑충 뛰어 걱정이 크다"고 털어놓았다. 하나금융투자는 매출·임대료·관리비 등이 동일한 경우 최저임금 인상분이 적용된 편의점 가맹점주의 순수익이 14.3%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서 '24시간 운영' 햄버거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는 박모(47·여)씨는 지난달 가게 앞에 '점포 사정으로 인해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는 알림문을 내 걸었다. 그동안 박씨는 낮 시간에는 점장 역할을 하면서 주방 인력과 서빙 인력 등 총 3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왔다.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까지는 아르바이트생 2명이 매장을 지켰다. 하지만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박씨는 "점포를 열 때 24시간 운영한다는 조건으로 본사와 계약했지만 새벽 시간 손님이 별로 없는 데다 최저임금까지 오르는 마당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24시간 문을 열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패스트푸드 음식점 이용객들이 사람 대신 주문을 받는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패스트푸드 음식점 이용객들이 사람 대신 주문을 받는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해 12월 15일부터 20일까지 전국 기업 회원 1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고용주의 22.5%가 올해 아르바이트생을 10~20%가량 줄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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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동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풀타임으로 근무했던 노동자들이 초단기 근로자로 대체되거나 더 심각한 경우 무인화되면서 노동자들의 환경이 오히려 한 단계씩 후퇴하는 최저임금의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며 "최저임금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업체일수록 저항 현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상지·홍지유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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