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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 음악] 편지로 본 음악과 삶

중앙일보 2018.01.06 01:36 종합 25면 지면보기
정경영 한양대 교수·음악학자

정경영 한양대 교수·음악학자

‘산울림 편지 콘서트’는 한 작곡가가 주고받은 편지로 그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음악을 들려주는 콘서트다. 2013년 베토벤을 시작으로 슈만과 클라라(2014), 슈베르트(2015), 모차르트(2016)를 거쳐 이번 시즌에는 브람스를 주인공으로 콘서트가 진행 중이다(소극장 산울림, 2017년 12월 15일-2018년 1월 7일7일). 이 콘서트는 배우들의 연기와 연주자들의 연주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는 것, 100여석밖에 안 되는 소규모 극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그리고 여느 클래시컬 음악 연주회와는 달리 오랜 기간 동안 공연을 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번 시즌의 제목은 ‘브람스, 앱솔루트 로맨틱(Absolute Romantic)’이다.
 

"브람스, 앱솔루트 로맨틱"

잘, 정성스레 준비한 공연이었다.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사이의 편지를 꼼꼼히 읽어 그들의 관계를 담담하게 전하려는 노력이 잘 드러났다. 흔히 그들의 사랑을 과장하여 스캔들처럼 이야기하는 세간의 관습과는 달리 이 공연은 그들의 헌신과 배려, 그리고 음악가로서의 역경, 고민, 성취를 과장 없이 그리고 있었다.
 
‘브람스, 앱솔루트 로맨틱’. [사진 산울림소극장]

‘브람스, 앱솔루트 로맨틱’. [사진 산울림소극장]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편지의 내용과 이 공연에서 연주된 음악이 적절히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적절히 거리를 두고 있음’은 공연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극적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공연에서 이 적절한 거리는 브람스의 음악이 갖는 독특한 향취를 클라라 슈만과의 관계로만 과장하거나 환원해 버릴 위험을 방지해 주었다. 음악가로서의 브람스의 삶이 그의 중요한 작품들과 병행하여 흐르면서 음악은 음악대로 삶은 삶대로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편지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삶의 여정은 또 다른 음악처럼 그렇게 흘렀다. 그래서 ‘부라보’를 외치면 벅찬 감동을 안고 나오는 음악회는 아니었을지언정, 가슴 깊이 스며드는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그러니 이 공연의 제목은 절묘하다. ‘앱솔루트’라는 말은 브람스가 음악에 대해 취했던 입장을 잘 요약해 주는 말이다. 리스트나 바그너 같은 당대의 다른 작곡가들이 음악은 문학, 미술과 같은 다른 예술들과 어울릴 때 더욱 빛난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순수한 음의 울림, 그리고 그 울림이 만들어가는 형식이 음악의 본령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용했던 말이 바로 앱솔루트 뮤직, 즉 ‘절대음악’이다. 편지를 음악에 덧붙여 자칫 브람스의 ‘앱솔루트’의 이념에 길항할 수 있었던 이 공연은 삶과 음악을 억지로 결합시켜 그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만드는 대신 편지를 또 다른 시간의 흐름, 음악으로 만들어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전달했다.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중요하다. 특히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이즈음에 더욱 그렇다. 새해니까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시간에 나를 담담히, 거리를 두고, 과장하지 않은 채 조망하는 일은 어렵지만 더 성숙한 일이다.
 
정경영 한양대 교수·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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