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세종대왕이라면 제천 참사 막았다

중앙일보 2018.01.06 01:35 종합 25면 지면보기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2014년 2월 경주 마우나 리조트, 강당 지붕에 70㎝ 두께로 쌓인 눈을 모두 솜이불 정도라고 생각했던 게다. 교수, 학생, 관리자 500명 중 그것을 ‘초과하중’이라고 지적한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결국 10명이 죽고 100여명이 다쳤다. 같은 해 10월 판교 테크노밸리, 축제 공연을 보기 위해 환풍구 덮개 위로 사람들이 올라갔다. 덮개의 지지 볼트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며 제지한 사람이 군중 가운데 하나도 없었다. 16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2017년 12월 제천-. 배연창과 스프링클러가 망가졌는데도 신고한 이가 하나 없었고, 목욕탕의 비상구를 미리 보아두거나 알리는 사람 또한 한명이 없었다. 29명이 숨졌다. 단순 사고와 대형 참사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한 사람만 사전에 위험 알렸다면 …
참사로 또 처벌과 규제 반복될 것
정부는 ‘통치’보다 ‘심판’ 역할을
시민 학습시켜 현장 파수꾼 삼자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큰 사고 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징조가 있다고 한다. 손으로 둑을 막은 네덜란드 소년같이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전조 중 하나를 읽어내면 기사 댓 줄짜리 사고나 미담으로 끝난다. 그렇지 못할 때 그 사고는 온 국민을 비통케 하는 참사가 된다. 세월호 이후 달라진 것이 뭐냐는 제천 유가족들의 오열에 할 말이 없는 것은 우리 사회는 ‘그 한 사람’을 얻는 것을 아직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 사고에서는 PEB(사전 제작 철골 시스템)공법을 책망했고 판교 때에는 행사 담당자가 목숨을 끊었다. 이번에도 건축주, 필로티, 드라이비트, 골목 주차 등 수많은 요인들이 거론되고 있다. 곧 나올 정부의 대책은 늘 그랬듯 규제와 처벌 위주가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건축주 처벌 말고는 대책 없는 대책일 것임을 대개들 짐작한다. 열거된 원인들을 전부 교정할 수단과 비용을 우리는 감당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거듭 일벌백계와 규제강화에 의존하게 된다.
 
시론 1/6

시론 1/6

이 악순환을 멈출 지혜는 세종대왕에게 배움직 하다. 곡물상이 무게를 속인다는 민원이 많았나 보다. 엄한 처벌을 주장하는 신료들에게 세종은 엉뚱한 해법을 내놓는다. 저울을 많이 만들어 보급하라는 것이었다. 과연! 저울의 독점을 깨니 속임수가 저절로 없어졌다. 푸코는 체벌에서 감금(감시)으로의 전환을 근대의 시작으로 본다. 국가의 처벌이 아닌 백성들의 상호감시를 통해 범죄를 없앨 수 있다고 여긴 세종이야말로 근대군주이다. 세종은 일찍이 근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하였다. 그가 창제한 글자, 시계, 악보, 도량형, 활자, 천체측각기, 측우기 등은 모두 계측(measurement)과 기준(standard)에 관한 것이다. 즉 국가는 ‘통치’가 아니라 ‘심판’을 보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국가의 기본 책무인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일에도 적용된다.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면 사고는 줄지라도 엄청난 행정비용과 경찰국가의 위험을 안아야 한다. 결국 ‘정의와 비용의 딜레마’를 풀 길은 국가는 기준을 만들고 감시와 예방의 의무는 시민사회와 나누는 방법 말고는 없다. 눈 뜬 ‘한 사람’이 모든 곳에 있게 하기 위해서는 아직은 불편한 두 가지가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안전에 대한 일상적인 ‘학습’과 ‘시스템’ 구축이다. 노벨상의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삶의 질 개선은 분배의 효율성보다는 그 사회의 학습능력과 더 관계가 있다고 본다. 학습사회는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켜 지식경제를 촉진시킴은 물론 더욱 안전한 세상이 되게도 할 것이다. 정부는 소방대원을 늘리기 이전에 국민안전 교육 프로그램과 플랫폼부터 개발, 보급해야 한다.
 
대형 참사가 날 때마다 나오는 ‘안전 불감증’, ‘국민 안전의식’ 타령은 이제 진부하다. 문제는 의식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기능중심형 행정체계를 장소중심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제천 소방대는 건물도면도 없이 투입되었다. 건축행정 따로 소방행정 따로의 결과이다. 평소 위생, 주차, 도시정비 등 관련 공무원은 평소 건물에 와서 자기 볼 것만 보고 갔을 것이다. 내게 주치의가 필요하듯 건물에도 많은 전문의가 아닌 하나의 가정의가 필요하다.
 
미국 소방대원 115만명 중 의용소방대원이 80여만 명이며 95%가 소규모 지역에 속해있다. 이들은 지역 내 모든 시설에 정통한 가정의다. 평소에는 감시와 예방을 하며 사고 시 전문 소방대와 협업한다. 날로 복잡·복합화 되는 현대건축을 칸막이 행정으로 다룰 시대는 지났다. 시민들을 학습시켜 장소중심형 파수꾼으로 파송하라. 키에르케고르는 “건축은 비극이 허용되지 않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했다. 건축미는 예술로 수용할지라도 생명과 직결된 건축공학은 근대적 합리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뜻이다.
 
함인선 건축가·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