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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경의 한류탐사] 케이팝 세계시민주의

중앙일보 2018.01.06 01:33 종합 24면 지면보기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류를 연구하며 가장 행복할 때는, 한류 경험이 팬들의 가슴을 보다 넓은 세상으로 열게 함을 확인할 때이다. 특히 케이팝의 젊은 수용자들은 자신이 ‘이토록’ 남다른 문화를 ‘이처럼’ 사랑할 수 있음을 처음 발견했다고 토로한다. 이로부터 또 다른 문화도 이만큼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것, 자신이 아직 모르는 사랑할 가치가 있는 문화가 세계 도처에 있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마음이야말로 이상적 세계시민주의가 자랄 수 있는 기본 태도 아니겠는가.
 
이것은 한국사회와 대중문화물 속에 녹아있는 과도한 민족주의나 위험한 인종주의와 대조되어 사뭇 신기하기도 하고 상당히 감동적이다. 연습생들의 과도한 노동이 우려되고, 누적된 스트레스의 비극이 발생하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세계의 케이팝 팬들도 그들의 사랑하는 스타들이 겪은 희생과 삶의 결핍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이돌을 통해, 무한경쟁이 기다리는 학교 밖 세계에 미리 나가 앞서 노력해 성과를 거둔 동시대 청년의 모습을 보며 동병상련지정을 느낀다.
 
한류탐사 1/6

한류탐사 1/6

케이팝이 이처럼 마음을 여는 힘이 있기에 발생하는 감동적인 순간은 이러한 것들이다. 지척에 살아도 평생 만나거나 대화할 기회가 없는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학생과 팔레스타인 학생이 한국어 수업에서 만나 케이팝에 대해 기쁘게 대화할 수 있을 때. 이들은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케이팝의 한국을 꿈꾼다. 지구 상에서 가장 분쟁적인 곳의 청년들이 가장 큰 분쟁위험을 지닌 곳의 청년들을 보며 평화를 꿈꾸다니! 북미의 흑인 청소년이 흑인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힙합 아티스트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케이팝 스타들을 통해 흑인문화의 인정과 자존감 상승을 경험할 때, 이들은 흑인문화의 잘못된 차용과 소외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케이팝의 진정성을 읽어내려고 한다. 서구의 지배적 남성문화 속에서 위축되었던 소수자들이 케이팝 속에서 정체성의 해방을 느끼고 구석에서 광장으로 나올 때, 이들은 케이팝 속에서 과도한 성애화보다는 대안적 남성성의 자료를 발견한다.
 
꿈꿀 수 있는 것은 큰 능력이고, 청년들이 지닌 우월한 힘이다. 케이팝의 감동적인 이 순간들을 세계의 케이팝 팬들이 새해에도 계속 경험하게 되기를 바란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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