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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맛이야" 미원·미풍 금반지 전쟁 그시절 올까

중앙일보 2018.01.06 01:00 종합 14면 지면보기
[이슈 속으로] 유해 ‘화학조미료’ 오명 벗은 MSG
 

1956년부터 나온 ‘미원’ 입맛 평정
‘미풍’과 과열 경쟁, 정부가 개입도

1993년 ‘MSG 넣지 않았습니다’
조미료 과장 광고가 불신 더 키워

2010년 식약처 “평생 먹어도 안전”
올해부터 ‘향미증진제’로 표기 바꿔

소비자들 식품 첨가물 불안 여전
인식 바뀌기까지는 시간 걸릴 듯

처음엔 ‘뱀가루’로 불렸다. 소고기 한 근을 넣고 끓여야 겨우 낼 법한 맛을 가루 한 숟갈로 해결할 수 있다니 정체가 의심스러웠던 게다. 맛의 기원(味元)이라 스스로를 내세운 이 하얀 가루는 능글맞은 뱀처럼 이런저런 음식에 스며들어 사람들의 혀를 깨웠다. L-글루탐산나트륨, 바로 MSG(Mono sodium Glutamate) 이야기다.
 
언제부턴가 MSG는 밥상에서 조금씩 사라졌다. 자연과 천연이 건강함의 상징이 되면서 화학조미료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MSG는 내 몸을 망치는, 피해야 할 가루가 됐다. MSG를 쓰지 않아야 ‘착한’ 음식이 될 수 있었다.
 
일본의 MSG 아지노모토 광고. [사진 현대사연구소]

일본의 MSG 아지노모토 광고. [사진 현대사연구소]

그랬던 MSG가 20여 년 만에 오명을 벗었다. 올해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MSG의 정식 표기를 ‘화학적 합성품’이 아닌 ‘향미증진제’로 바꾼 것이다. 첨가물을 합성과 천연으로 구별 지어 생긴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자는 뜻에서다. 그동안 MSG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MSG의 고향은 일본이다. 1908년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池田菊苗)는 다시마가 어떻게 국물 맛을 좋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연구 끝에 다시마에 들어있는 ‘글루탐산’ 성분이 비결임을 알아냈다. 다시마에서 이 성분을 뽑아 음식에 넣기엔 양이 적었다. 연구를 거듭해 밀(소맥)에서 이를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글루탐산을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과 결합해 만든 것이 MSG다. 지금의 MSG는 사탕수수의 당밀을 발효시켜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국내 최초의 MSG인 미원에 이어 출시된 제일제당의 조미료 미풍. [사진 현대사연구소]

국내 최초의 MSG인 미원에 이어 출시된 제일제당의 조미료 미풍. [사진 현대사연구소]

이케다는 MSG의 신기한 맛을 ‘우마미(うま味:감칠맛)’라 불렀다. 단맛도 짠맛도 아닌, 신맛과 쓴맛을 넘어선 제5의 맛이 됐다. 이듬해 아지노모토(味の素:맛의 정수)라는 이름을 붙인 이 조미료는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퍼졌다. 이 제품을 파는 회사도 아지노모토로 이름 붙였다. 아지노모토는 당시 최고의 무용가인 최승희를 모델로 내세우고 이 씨 왕가도 사용한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냉면을 비롯한 육수 요리가 많은 평양 식당가엔 공짜로 상품을 나눠주며 단골로 만들었다. 해방 후에도 감칠맛을 잊지 못한 사람들은 일본에서 밀수된 MSG를 사 먹었다.
 
1970년 미풍이 스웨터를 경품으로 내놓자 미원은 순금반지를 주겠다며 맞불을 놨다. [사진 현대사연구소]

1970년 미풍이 스웨터를 경품으로 내놓자 미원은 순금반지를 주겠다며 맞불을 놨다. [사진 현대사연구소]

국내에선 1956년, 지금의 대상그룹인 동아화성공업이 최초의 MSG인 미원(味元)을 내놨다. 선풍적 인기 속에 맛의 비결이 뱀가루란 소문까지 돌자 회사에선 주요 소비층이 될 당시 여고 졸업반 학생들에게 ‘오늘의 가사상식’이라는 해명서와 제품 견본을 나눠주기도 했다. 63년엔 제일제당이 ‘미풍’ 을 내놓으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사용한 다섯 봉지를 가져오면 순금반지와 스웨터를 주겠다며 두 회사가 경쟁하다 정부에서 중단시킬 정도였다.
 
MSG의 유해성 논란은 이미 이 무렵부터 시작됐다. 68년 한 중국계 미국인 의사가 MSG가 든 음식을 먹었더니 뒷목에 마비가 오고 어지럼증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고 미국 학술지에 밝히면서부터다. 중국 음식을 먹은 뒤 많이 나타난다며 ‘중국음식점 증후군(Chinese Restaurant Syndrome)’이라는 이름까지 생겼다. 논란이 불거지면서 73년 세계보건기구 (WHO)와 식량농업기구(FAO)는 MSG의 유해성을 인정해 하루 섭취량을 체중 1kg당 120mg 이하로 제한했다.
 
MSG

MSG

결론은 다시 뒤집어졌다. 후속 연구들이 MSG의 유해성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 은 78년과 80년 두 차례에 걸쳐 “현재 사용 수준에서 MSG가 인체에 해를 준다는 증거나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87년 WHO와 FAO의 국제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JECFA) 역시 MSG가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독성이 약하고 섭취량도 매우 적은 수준이라며 하루 허용량 기준도 없앴다.
 
1996년 MSG 무첨가를 강조한 라면 광고. [중앙포토]

1996년 MSG 무첨가를 강조한 라면 광고. [중앙포토]

하지만 국내에선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93년 한 대형식품회사가 내놓은 조미료가 발단이 됐다. ‘화학적 합성품인 MSG를 넣지 않았습니다’ 라는 문구를 내세우며 MSG가 뇌세포를 손상하거나 천식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광고한 것이다. 정부가 해당 광고가 잘못됐다며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소비자들의 MSG에 대한 불신은 이미 커진 상태였다. 이후 기업들은 너도나도 자신의 제품이 MSG를 넣지 않았음을 내세우며 이 불신을 더욱 키웠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정부도 나섰다. 2010년 식약처는 MSG를 평생 먹어도 안전하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2013년엔 MSG를 소금과 함께 사용하면 전체 나트륨 섭취량을 20~40%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소금엔 나트륨 성분이 40% 정도 들어있지만, MSG는 12% 수준이라 저염식단에 유리하단 설명이다. MSG의 기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지난해 국제아미노산과학연구회(ICAAS)는 MSG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의한 위 손상으로부터 점막을 보호해 준다고 밝히기도 했다.
 
1993년 조미료 광고. 이후 국내에서 MSG 유해 논란이 뜨거워졌다. [사진 현대사연구소]

1993년 조미료 광고. 이후 국내에서 MSG 유해 논란이 뜨거워졌다. [사진 현대사연구소]

학계에서도 MSG는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오상석 이화여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FDA에선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합리적 확신’을 안전의 기준으로 삼는다”며 “이 기준에서 본다면 MSG는 안전하다”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에 비춰볼 때 MSG가 위험하다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구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먹어도 안전하다는 의미가 한없이 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설탕이나 녹말 등 대부분의 음식이 그렇듯 적정량 이상을 먹으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몸에 해롭다며 무조건 멀리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기까진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2013년 식약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소비자의 식품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을 묻는 말에 식품 첨가물(34.5%) 을 가장 많이 꼽았다. 환경호르몬(26.4%)이나 유해 미생물(12.2%)보다 위험하다고 보는 거다. 정부가 나서 권장할 필요는 없지만, 그동안 잘못된 정보로 인해 발생한 불필요한 불안감은 줄여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나현 기자 kang.nahyun@joongang.co.kr
[S BOX] 설탕보다 300배 달달한 사카린도 40년 넘게 발암물질 누명
MSG 논란은 또 다른 식품첨가물인 사카린과 닮아있다. 발암물질로 알려졌던 사카린은 40년 넘게 외면받다 최근에야 오명을 벗었다. 사카린은 1879년 미국의 한 대학 실험실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설탕보다 300배 달지만 열량은 없어 설탕을 대신해 인기를 끌었다. 1977년 캐나다 국립보건연구소가 “쥐에게 사카린을 투여했더니 방광에서 종양이 생겼다”고 밝히면서 각국에서 사용을 막기 시작했다. 한국은 90년부터 사용을 규제해 92년엔 대부분의 식품에 사용을 막았다.
 
이후 사카린의 유해성이 증명되지 않으면서 98년 국제암연구소(IARC)가 사카린을 발암 물질 분류에서 제외했다. 미 식품의약국(FDA)도 2001년 사카린의 사용 규제를 취소했다. 국내에서도 허용 범위를 조금씩 넓혀온 가운데, 지난해 식약처는 떡이나 마요네즈 등에도 사카린을 쓸 수 있게 했다. 기존 29개에서 35개 품목으로 허용 범위를 넓혀 사실상 대부분의 식품에 사카린 사용을 허락한 셈이다.
 
열량과 혈당지수가 제로라 최근엔 당뇨나 비만 환자에게 설탕 대용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외 연구에선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항암효과가 발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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