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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미지의 세계 탐험하는 풍자소설 … "기계의 인간 지배" 150년 전 경고

중앙일보 2018.01.06 01:00 종합 20면 지면보기
문학이 있는 주말
 
에레혼

에레혼

에레혼
새뮤얼 버틀러 지음
한은경 옮김
이인식 해제, 김영사
 
쥘 베른, 스티븐슨 같은 모험소설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1835~1902)의 대표 장편이다. ‘에레혼’이라는 가상 세상을 배경으로 한 풍자모험 소설인데, 이번이 초역인 건 아무래도 내용이 무거워서인 것 같다. 전형적인 모험소설이다. 갖은 고난 끝에 미지의 세계에 도착한 주인공이 충격적인 문물을 접한 끝에 뭔가 얻어 돌아온다. 『에레혼』의 주인공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나’, 그가 모험에서 얻는 건 완벽한 아내, 다녀온 미지의 세계가 바로 에레혼이다.
 
에레혼(erehwon)은 영어단어 ‘노웨어(nowhere)’의 철자를 거꾸로 표기한 지명. 세상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게 거꾸로인 세상이다. 가장 충격적인 건 질병이나 개인의 불운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행이나 불운은 위로할 일일 뿐 아니라 공적 부조의 대상이다. 에레혼에서는 반대다. 발병은 건강 챙기기를 게을리한 개인의 100% 과실이다. 에레혼은 방역이나 의학연구 지원 대신 환자를 철저히 억압하는 방식으로 ‘시민건강’을 유지하려 한다. 졸지에 아내를 잃은 남편도 처벌 대상이다. 불운도 죄다.
 
반면 파렴치범이나 흉악범은 정상사회에서의 환자 취급을 받는다.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를 기미를 느끼는 사람은 환자가 의사 찾듯 교정관을 찾아 이실직고해야 한다. 죄질이 나쁜 경우 고문 수준의 교정행위를 처방받지만, 사회의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 양심이나 도덕적 책임감 같은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아서다. 사람들은 병문안 가듯 범죄자를 방문해 교정경과를 물어보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저자가 가장 공들인 부분은 책 후반 기계문명 파괴 대목이다. 에레혼은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 비슷한 혁명을 겪은 적이 있다. 러다이트가 인간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에레혼의 혁명은 기계가 언젠가 사람을 지배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소설은 묻는다.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뭐냐고. 지능이나 후손 재생산 능력이라고 답한다면 틀렸다. 기계도 지능과 재생산 능력이 있다는 논리가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펼쳐진다. 현대의 AI 공포를 150년 전 비슷하게 예견한 선구적인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쓰일 당시의 영국사회, 21세기 현대사회에 대한 통짜 풍자로 읽힌다. 더디게 읽히지만 시간이 아깝지 않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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