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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소리의 길은 인생의 길과 같다

중앙일보 2018.01.06 00:01 종합 17면 지면보기
판소리 명창 안숙선 선생이 지난해 12월 13일 서울시 강남구 헌릉로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신인섭 기자

판소리 명창 안숙선 선생이 지난해 12월 13일 서울시 강남구 헌릉로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신인섭 기자

남원의 ‘애기명창’이 세계의 ‘프리마돈나’가 되었다. 안숙선(68)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9세에 집안 피 내림으로 소리의 길에 들어선 뒤 60년을 국악을 받들며 살아왔다. 국악계가 인정하는 발품과 인품으로 이 판의 큰 누이이자 스승으로 자리매김한 그의 시선은 내일의 국악을 바라보고 있다. “젊은이들이 판소리 한 대목이나 단가를 흥얼거리며 놀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는 안 명창 얼굴이 열정으로 발그레 물든다.    

 
2015년 삼성행복대상 ‘여성창조상’ 수상 때 뵙고 2년 만인데 여전히 고우시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뭔가.
요즘엔 좀 생각이 바뀌어서 누구든 편하게 만나고, 편하게 음악도 하고, 만사 편하게 한 덕인 것 같다. 나이 든 사람은 깜짝 놀라거나 충격에 흔들리는 게 위험하다. 차라리 둔한 게 좋다.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려 하니까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  
 
12월 31일 밤 8시 국립극장 제야 판소리 무대에서 ‘만정제 흥보가’를 부른다. 만정(晩汀) 김소희(1917~1995) 하면 참 잊을 수 없는 스승의 이름인데.
올해는 만정 탄신 100주년이라 선배들이 기념비적인 행사를 많이 치르셨다. 저는 이제 제야 판소리 공연에서 ‘만정제 흥보가’를 하면서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음악에 대한 개념을 돌이켜보며 고인을 추모하려 한다. 나이가 들어서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까 ‘이래서 그때 선생님께서 그런 당부를 하셨구나’ 깨닫고 있다.
스승인 만정 김소희(왼쪽) 선생과 함께한 안숙선 명창. [사진 안숙선]

스승인 만정 김소희(왼쪽) 선생과 함께한 안숙선 명창. [사진 안숙선]

 
만정과의 특별한 기억이나 남기신 가르침이 있다면.
만정 선생님은 1995년 4월, 서울 제일병원에 입원하신 불과 며칠 뒤에 78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는데 병상에서도 내게 편지를 한 장 건네셨다. ‘내가 누워서 너 출연하는 방송국 영상을 봤는데 꼭 전하지 않고서는 안 될 말이 있어서 몇 자 쓴다. 많은 사람이 다 너의 소리를 듣고 좋다고 추임새를 해도 그중에 몇 사람은 아니다 라고 하는 그 말을 참 중요하게 깨달아야 될 것이다.’ 선생님이 보신 건 KBS국악관현악단과 저의 협연 무대였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내가 지휘자하고 재담을 나누느라 노래를 잘 못 불렀다. 선생님은 ‘노래는 잘 못하면서 그런 잔재주로 관객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안 된다. 판소리 속에 담긴 원리, 진리 안에서 웃고 울려야지 그걸 뛰어넘지 말라. 잘 모르면 나에게 꼭 물어봐 달라’ 간곡히 타이르셨다. 선생님이 아니면 누가 저런 이야기를 해주실까 가슴이 먹먹했다. 왜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많이 남아있다.
  

“잔재주 피우지 말고 판소리 속에 담긴 진리에 충실 하라던 만정 김소희 선생의 유언이 지금도 귀에 쟁쟁”  

 
내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선생님의 일대기를 소재로 한 모노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이와 세월에 의미를 두고 싶지 않은데도 주변에서 데뷔 60주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롯데 콘서트홀’ 개관 뒤 처음 국악 공연이 올라가는 영광을 내가 누리게 됐고, 그쪽에서 ‘60주년’을 홍보 내용으로 잡으면서 알려지게 됐다. 많은 선생님들에게 소리공부를 하면서 그분들이 제게 당부했던 말씀들, 소리의 중요성을 어떻게 하면 후진들에게나 우리 소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알려드릴 수 있을까 준비하고 있다. 제 이야기보다는 선생님들과의 만남에서 제가 차차 우리음악의 중요성을 깨달아가는 그런 내용으로 꾸며보려 한다.  
 
안숙선(오른쪽) 선생 어린시절 남원국악원에서 수학할 때의 모습. [사진 안숙선]

안숙선(오른쪽) 선생 어린시절 남원국악원에서 수학할 때의 모습. [사진 안숙선]

1997년 중요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로 인정받으신 지 20년이 됐다. 이 분야 외에도 국악 전반에 걸쳐 두루 통하는 실력자인데.
내가 어릴 적에 국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소리하는 사람이 소리만 한 게 아니다. 그 소리 장단에 맞춰서 발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춤이 필요하고, 소리를 좀 더 극적으로 전달하려 창극도 했다. 가야금이야 이모(강순영)에게 가야금을 배우면서부터 국악에 입문을 했으니까 더 말할 것이 없다. 농악, 검무, 한국무용까지 다 했다. 그러다가 스무 살이 넘어서니 그 많은 것들을 다 할 수가 없더라.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서 다 접고 소리, 창극, 가야금병창 세 가지에 집중했다.  
 
지난해에는 국립창극단에서 ‘트로이의 여인들’ 작창도 맡았다.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는 피가 마를 정도로 아픔이 따른다. 꽉 막혀가지고 음악이 되질 않는 날을 무수히 보내면서 작창이라고 내놨는데 나중에 들어보니까 정말 부끄럽더라. 왜 저렇게 했을까, 하는 창작의 괴로움이 밀려왔다.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등 유럽 축제 여러 곳에서 이미 초청을 받은 지라 내친 김에 ‘트로이의 여인들’을 통해서 판소리가 잘 알려지도록 보완할 생각이다.
 

“작창의 어려움 잘 알지만 판소리의 세계화를 위해 앞으로도 새로운 판소리 창조에 애쓸 것”

 
파리축제 쇼케이스에서 공연 중인 안숙선 선생. [사진 안숙선]

파리축제 쇼케이스에서 공연 중인 안숙선 선생. [사진 안숙선]

‘파리 가을 축제’에서 입체창을 하셨을 때 기립박수 받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입체창은 옛날 선생님들께서 많이 했던 장르다. 판소리는 소리꾼 혼자 장단 치는 고수와 하는 1인 무대라면 입체창은 서로 주고받는 2중창, 즉 듀엣이다. 대여섯 시간씩 걸리는 완창 판소리를 대중화하는 현식의 변화할까. 토끼와 자라의 성격 차이를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으면 어떨까 해서 ‘수궁가’의 한 대목을 입체창으로 만들었다. 잘 될까 굉장히 걱정했는데 음향이 좋아서 800여 명 들어가는 극장 뒤까지 소리가 뻥 터졌다. 자막을 이용했더니 토끼와 자라의 계략과 기 싸움이 관객에게 잘 전달됐다. 우리 판소리의 우수성을 인정해서 그런지 객석에서 계속 재청을 청하고 기립박수를 해줬다.  
 
그런 열기를 여기 대학로나 홍대 앞에서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소원을 여러 번 토로했다. 판소리 전문극장 건립의 꿈은 익어가고 있는지.
기업이나 기관이 해준다기보다는 내 스스로 노력해서 그런 일들을 해야 되고 그런 공간도 마련을 해야 되지 않나 내심 궁리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뜻있는 분들이 동참해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 전통음악의 장래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 하는 논의를 60주년도 됐으니 좀 더 본격적으로 생각해야 될 때가 된 듯하다.
 
그 극장에서 우리 시대의 젊은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라면.
우리 젊은이들이 팝이나 록, 힙합이나 랩에 심취하듯 우리 소리에도 관심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판소리가 사실 창하는 우리에게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알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요즘처럼 빠른 시대에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찾아서 이해하면서 소리 들으라하겠는가. 내가 나이는 먹어가고 할 일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우리 판소리음악을 대중화하지 못한 데에 나의 책임도 있구나 싶다. 요즘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판소리로 만들어내서 공감을 할 수 있게 했었을 것을 후회된다. 저는 제소리에 공력을 들이느라고 그런 시기를 놓쳤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춘향이나 토끼 입을 빌려 했던 우리 조상처럼, 빨리 만들어야 되지 않나 조바심이 난다.
 
전주소리축에서 어린이 관객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 [사진 안숙선]

전주소리축에서 어린이 관객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 [사진 안숙선]

“대학로나 홍대 앞 등 젊은이들의 거리에 판소리 전용극장 세워 시대의 소리 만들고파”

 
선생님께서 이 방에서 많은 제자, 후학을 양성하며 그런 노력을 기울이신 것 아닌가.
이 공간을 만든 것도 사실은 그런 아카데미를 하려는 의도도 있고, 우리 소리를 통한 사랑방 구실을 하도록 꾸민 것이다. 이 시설을 이용해서 앞으로는 초등학생들이나 유치원에 갈 수 있는 아이부터 찾아내서 하다못해 소고라도 뚜드리며 우리장단을 알 수 있게 한다거나 아리랑을 가르쳐 본다거나 그렇게 시작을 해야 되지 않을까 내심 작정하고 있다.  
 
소리 인생 60년에서 ‘이것만은 내가 꼭 지켜야 되겠다’ 고수해오신 원칙이 있다면.
첫째는 거짓 소리를 하지 말아야 되겠다. 만정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말로 관객을 속여서는 안 되겠다, 소리를 진정성 있게 해야 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하루라도 소리를 쉬지 않는다. 안 하면 제대로 된 소리가 안 나온다. 목이 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올렸다가 툭 떨어뜨릴 때 착지를 잘 시켜야 하는데 잘 못 시키면 미끄러져버린다. 소리는 그냥 ‘아’ 이렇게 벌렸다고 해서 소리가 되는 게 아니라 올라갔다가 내릴 때 제일 중요하다. 안정적으로 탁 내려야지 안 그러면 ‘쟤 소리 미끄러졌다’ 그러거든. 그게 연습 부족이다. 셋째는 큰마음 훈련이다. 조선시대에는 소리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조선말에 들어서야 겨우 여성이 남장을 하고서야 소리를 할 수 있었다. 판소리의 대부분이 극적인 대목이 많아서 소리꾼의 성량이 관객을 폭풍을 불어내서 날려 보낼 정도는 돼야한다. 이런 점에서 여자로서의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힘을 보여주고 싶어서 산에도 가보고 좋다는 거 많이 먹어보고 하면서 호연지기를 기른다.  
 
모노드라마 페스티벌 무대에서 열창하는 안숙선 선생의 모습. [사진 안숙선]

모노드라마 페스티벌 무대에서 열창하는 안숙선 선생의 모습. [사진 안숙선]

선생님께 소리란 무엇인가.
쉬운 말로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음악에 담아 표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속에 희로애락만 들어있는 게 아니다. 인간이 저마다 원하는 것들이 조금씩은 다 다르듯이 소리도 그렇다. 소리가 갖고 있는 구조를 들어가서 뜯어보면 그 사설이 추구하는 것, 뜻하는 바가 무궁무진하다. 내가 부르는 판소리를 들으면서 나하고 똑같은 상황을 만나는 이런 걸 관객은 경험하게 된다. 그럴 때 판소리의 그 한 대목은 때로 철학 교과서가 되고, 때로는 절절한 사랑의 연가가 되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자기가 사랑하는 방향의 길을 이거 아닌가 하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인생은 이거야 하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소리는 내게 그런 인생의 수많은 길을 보여주는 만화경이다.
 
김덕수(오른쪽) 사물놀이패와 2010년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함께한 '공감' 공연 모습.

김덕수(오른쪽) 사물놀이패와 2010년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함께한 '공감' 공연 모습.

시대상이 드러나고, 철학과 인생관이 있는 우리 당대의 현대판 판소리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선생님께서 조금 더 이끌어주시면 좋은 판소리가 나올 것 같은데.
제가 이끈다고 될 일은 아니다. 소리를 ‘득음의 세계’라고 한다. 음을 얻는 것만이 득음이 아니다. ‘이러한 일들을 이렇게 소리가 표현 했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이 득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미처 다 깨닫지 못하고 마감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거하고 똑같다. 인생살이에서 겪는 일들을 작게는 작게, 또 크게는 크게, 아니면 그냥 무념하게 또는 즐겁게 들려줘야 되겠다 하는 여러 차원의 소리가 하는 사람들 따라 천차만별로 있는 것이다.  그냥 ‘지금 이 소리’ 하고 거기서 적당히 만족할 수도 있다. 나는 소리 하고 돌아서고 나면 찝찝하고, ‘저기 좀 더 이렇게 갔었어야 되는 건데 왜 그렇게 못했을까’ 늘 되짚으며 반성한다. 욕심이 너무 많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소리의 길’인 것 같다.  
소리꾼 장사익(왼쪽)과 함께 2008년 '희망의 소리 콘서트'에서 '아리랑'을 열창하는 안숙선 선생. [사진 안숙선]

소리꾼 장사익(왼쪽)과 함께 2008년 '희망의 소리 콘서트'에서 '아리랑'을 열창하는 안숙선 선생. [사진 안숙선]

 

“득음이란 소리꾼 뿐 아니라 듣는 이가 깨닫는 과정까지를 아우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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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길 60년인데 감회가 어떠신지.
저는 60년 이거 좀 안 따졌으면 좋겠다. 그냥 제가 소리의 끈을 놓지 않고 그 소리의 끈을 끝까지 잡고 갈 수 있도록 제 소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그걸로 감사한다. 제가 소리할 때 잘하는 것 보다 오히려 잘못한 부분을 지적해주시고 어떻게 걸어가라고 방향을 알려주는 그런 소리 애호가들이 더 많아지셨으면 좋겠다. 소리의 길은 창자(唱者)와 청자(聽者)가 함께 걷는 인생의 길이다.  
 
 
▶안숙선 프로필
1949년 전북 남원 출생
8세에 이모 강순영에게 가야금을 배우며 국악에 입문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남원국악원에서 수업
19세에 서울로 이주 만정 김소희 문하에서 판소리 공부
1986년부터 1990년까지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
2013~2015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옥관문화훈장, 프랑스 문화부 예술문화훈장, 제2회 허규 예술상 등 수상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글 정재숙 기자
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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