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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오십이 되며 다짐 … 까진 아니고 생각해본 것들

중앙일보 2018.01.02 02:09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해가 바뀌며 오십이 되었다. 당해보시면 알겠지만 마흔이 되는 것과는 다른 충격이 있다. 내게는 영원히 저런 숫자가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아직도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 가슴이 시린데 정작 서른 살짜리들을 보면 아이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그다지 현명해지지도 못했다. 불경스럽지만 오십에 지천명(知天命)했다는 공자님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나이 먹을수록 현명해진다는 이치보다는 나이 먹을수록 뻔뻔해진다는 팩트 아닐까.
 
일상有感 1/2

일상有感 1/2

아직도 철없고 갈 길을 모르겠는데 오십이 되어 불혹은커녕 당혹스럽지만, 그래도 해가 바뀔 때마다 생각해보는 것들이 있다. 먼저, 무해(無害)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다. 감히 훌륭한 사람이 되길 원하진 않는다. 되기도 힘들지만, 인생이 피곤해진다. 안성기, 유재석을 보면 알 수 있잖는가? 하지만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케이크 먹고 몸만 커진 앨리스처럼 철없고 이기적인 채 가진 힘만 커진 중년이 되었다. 나이 먹을수록 권한이 커지는 건 냉정한 능력평가의 결과라기보다 그저 인간사회의 관습이다. 순번제로 때가 되어 잠시 맡은 힘에 불과하지만 여하튼 힘은 힘이다. 손윗사람, 상급자는 악의 없이도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악의가 없었다는 말은 변명이 못 된다. 어떻게 악의도 없이 사람한테 그러는 걸까? 무해한 사람이 되려면 끊임없이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옛 선사는 산중을 걸을 때 생명을 밟을까 봐 조심스레 지팡이를 콩콩 짚어 알렸다고 한다. 그게 싫으면 힘을 반납하고 속편히 살든지.
 
또 한 가지는 ‘알고 보면 나도 힘들다’ 소리 하지 말기다. 당연히 알고 보면 누구나 힘들다. 50대 재벌은 10대 재벌에 못 들어 힘들고, 차관은 장관에게 깨져서 힘들다. 건물주는 세금 걱정에 힘들고 강남 학부모는 내신 성적 손해 본다는 생각에 힘들다. 인간은 누구나 제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지만(아프긴 진짜 아프다), 그걸 남들 앞에서 입에 담는 건 염치의 문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이서진이 하지원에게 할 때나 멋져 보이는 대사다. 모르고 그냥 봐도 힘든 분들이 많은 세상이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나은 처지면 최소한 입을 다물 때는 다물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나이 먹을수록 더 되뇌어보게 된다.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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